미국 9·11 테러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 문화산업의 블록버스터는 영화 ‘무사’와 조성모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이다. 개봉 직전까지 숱한 화제를 뿌린 ‘무사’는 온갖 ‘조폭’ 영화들이 가볍게 뛰어넘은 전국 관객 300만명의 ‘대박 커트라인’조차 돌파하지 못했으며, 작년 한 해에만 40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액을 올린 ‘마이다스의 손’ 조성모의 신작은 발매 후 3개월이 넘도록 밀리언셀러조차 기록하지 못함으로써 1년 내내 지속된 극심한 음반시장의 불황을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인 방점을 찍었다.
그나마 영화는 ‘조폭 마누라’와 ‘달마야 놀자’로 호황을 회복했으나 음반산업의 경우 최고의 빅카드 god조차 출시 시점을 미루다 11월 중순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12월을 마감하지 않았다 해도 2001년 한국 대중음악은 여름 시즌의 김건모와 겨울 시즌의 god 이렇게 달랑 두 장의 밀리언셀러만 남기고 달력을 넘길 전망이다.
시선을 좀더 깊숙이 옮기면 지금 한국 대중음악 문화의 본질적 위기는 무너진 밀리언셀러의 신화에 있지 않다. 랩, 힙합, 리듬 앤드 블루스에 이르도록 모든 서구 음악 문법이 상륙해 더 이상 새로운 수입 신상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음악적 저변의 참호가 붕괴한 것, 시장의 이윤 동기를 견제할 수 있는 음악적 독창성의 질적 진화가 벽에 부딪힌 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다. 시장은 날로 위축되어 가는데 조성모의 ‘투 헤븐’ 신드롬 이후 팽창해 온 뮤직비디오 마케팅은 가뜩이나 영세한 음반제작 상황에서 손익분기점만 살인적으로 올려놓았다. 결국 제작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승자독식’의 도박적 확률에 목을 매게 되었다.
따라서 음악 관련 매스미디어의 권력 이동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근원적 음악 매체인 FM 라디오가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한 것과 일간지를 비롯한 활자 매체들이 거의 힘을 상실한 것은 한국 음반산업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징후다. 반짝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정현이나 채정안, 베이비복스 같은 요정들이 순식간에 시들고 있는 것은 음악 외적 마케팅이 필연적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는 수순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이와 같은 주류의 답보는 비주류의 처참한 패배에 비하면 간신히 한숨을 내쉴 만하다. 안치환의 일곱 번째 앨범과 권진원의 다섯 번째 앨범 등이 동시대 청중들의 야멸찬 외면을 받았다. 윤도현 밴드와 크라잉넛만이 각각 10만장 내외의 판매액을 올리며 간신히 방어하는 데 그쳤다. 인디를 비롯한 개성 있는 아방가르드들이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한 것도 2001년 시즌이 얼마나 황폐하게 진행되었는지 간접적으로 알려 주는 지표가 된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 열풍에 취해 마치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 시장 진출이 목전에 달한 것처럼 허망한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토록 스포츠 신문 연예면을 장식한 ‘한류’ 열풍도 약속되지 않은 어음에 불과한 거품이었음을 목격하고 아연해질지도 모른다.
음악은 트렌드로 결정되지 않는, 의외로 보수적인 장르 문법을 가진 예술이다. 우리가 서태지와 신해철 이후의 새로운 주류 아티스트들을 만나지 못할 때, 들국화와 동물원, 혹은 어어부프로젝트 같은 비주류 개성들을 다시 해후하지 못할 때 어쩌면 우리에겐 ‘바보상자’의 현란한 조명 파티 이외엔 누릴 음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나마 영화는 ‘조폭 마누라’와 ‘달마야 놀자’로 호황을 회복했으나 음반산업의 경우 최고의 빅카드 god조차 출시 시점을 미루다 11월 중순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12월을 마감하지 않았다 해도 2001년 한국 대중음악은 여름 시즌의 김건모와 겨울 시즌의 god 이렇게 달랑 두 장의 밀리언셀러만 남기고 달력을 넘길 전망이다.
시선을 좀더 깊숙이 옮기면 지금 한국 대중음악 문화의 본질적 위기는 무너진 밀리언셀러의 신화에 있지 않다. 랩, 힙합, 리듬 앤드 블루스에 이르도록 모든 서구 음악 문법이 상륙해 더 이상 새로운 수입 신상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양한 음악적 저변의 참호가 붕괴한 것, 시장의 이윤 동기를 견제할 수 있는 음악적 독창성의 질적 진화가 벽에 부딪힌 것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다. 시장은 날로 위축되어 가는데 조성모의 ‘투 헤븐’ 신드롬 이후 팽창해 온 뮤직비디오 마케팅은 가뜩이나 영세한 음반제작 상황에서 손익분기점만 살인적으로 올려놓았다. 결국 제작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승자독식’의 도박적 확률에 목을 매게 되었다.
따라서 음악 관련 매스미디어의 권력 이동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근원적 음악 매체인 FM 라디오가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한 것과 일간지를 비롯한 활자 매체들이 거의 힘을 상실한 것은 한국 음반산업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징후다. 반짝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정현이나 채정안, 베이비복스 같은 요정들이 순식간에 시들고 있는 것은 음악 외적 마케팅이 필연적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는 수순이라 할 것이다.
그래도 이와 같은 주류의 답보는 비주류의 처참한 패배에 비하면 간신히 한숨을 내쉴 만하다. 안치환의 일곱 번째 앨범과 권진원의 다섯 번째 앨범 등이 동시대 청중들의 야멸찬 외면을 받았다. 윤도현 밴드와 크라잉넛만이 각각 10만장 내외의 판매액을 올리며 간신히 방어하는 데 그쳤다. 인디를 비롯한 개성 있는 아방가르드들이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한 것도 2001년 시즌이 얼마나 황폐하게 진행되었는지 간접적으로 알려 주는 지표가 된다.
그동안 우리는 ‘한류’ 열풍에 취해 마치 한국 대중음악의 세계 시장 진출이 목전에 달한 것처럼 허망한 샴페인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토록 스포츠 신문 연예면을 장식한 ‘한류’ 열풍도 약속되지 않은 어음에 불과한 거품이었음을 목격하고 아연해질지도 모른다.
음악은 트렌드로 결정되지 않는, 의외로 보수적인 장르 문법을 가진 예술이다. 우리가 서태지와 신해철 이후의 새로운 주류 아티스트들을 만나지 못할 때, 들국화와 동물원, 혹은 어어부프로젝트 같은 비주류 개성들을 다시 해후하지 못할 때 어쩌면 우리에겐 ‘바보상자’의 현란한 조명 파티 이외엔 누릴 음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