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노래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들에게는 완전히 낯선 언어를 사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어에는 영어나 독일어에 없는 ‘으’나 ‘를’ 같은 발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국 성악가들이 내한공연 무대에서 한국 가곡을 부르거나 아예 한국 가곡을 녹음한 음반을 내놓는 경우가 늘고 있다.

외국 성악가들이 한국 노래를 녹음하는 이유는 음반 판매 때문이다. 보통 한두 곡의 한국 노래가 들어가면 한국 시장에서 이 음반의 판매량은 20% 정도 상승한다. 킹스 싱어즈의 ‘마법의 성’은 애당초 판매 목표를 3만장으로 정했으나 4만장 이상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발매되는 로컬 버전(Local Version)에만 한국 곡이 수록되었지만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 발매되는 인터내셔널 버전에도 한국 곡이 들어가는 사례가 종종 있다. 호세 카레라스의 ‘어라운드 더 월드’에 수록된 ‘사랑으로’는 ‘With Love’란 영어 제목으로 전 세계에서 출반되었다.

이 문제는 우리 가곡의 정체성과도 연관이 있다. “이탈리아 가곡은 이탈리아 민요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한국 가곡은 적잖은 수가 민요 등에서 파생된 것이 아니라 서양 음악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작곡한 곡들입니다. 서양 음악에 가까운 정서에 한국 가곡이라는 이름만 덧입고 있는 곡들을 세계적인 성악가들이 더 잘 부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음악칼럼니스트 유형종씨(40)의 설명이다.
한국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이탈리아 가곡이나 독일 가곡처럼 부르는 것도 외국 성악가의 한국 가곡 음반을 택하게 만드는 한 원인이다. 그런데 성악가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항변한다. ‘명색이 성악가지만 한국 가곡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성악과에는 한국 가곡 시간이나 한국어 딕션 시간이 없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해도 한국어 발음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인지, 또 한국 가곡의 정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러시아에서 성악을 전공한 음악평론가 장일범씨(34)는 ‘러시아나 독일, 이탈리아 등의 음악원에는 모두 자국어 딕션 시간과 자국 가곡을 배우는 과정이 마련되어 있다’면서 우리나라 성악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양 음악의 한국화에 힘써온 북한은 이미 나름대로의 딕션 체계를 확립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 평양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 북한 성악가들은 분명 한국 성악가들보다 또렷한 발음으로 노래불렀다. 당시 내한했던 북한 성악가 한 사람이 “조수미씨는 노래는 잘하는데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겠다”고 말했던 것이 한동안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약간은 어색한 발음과 색다른 감성이 실린 외국 성악가들의 한국 노래를 듣는 것은 확실히 독특한 경험이다. 우리 정서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가 하면, 놀라울 정도의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는 경우까지 이들의 노래가 주는 인상은 다양하다.
“이들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어 발음에 더 신경 씁니다. 반면, 우리는 우리말이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노래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음악대학 입시나 콩쿠르 등 어디서도 한국 가곡을 부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한 음반사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성악가가 부른 것보다 훨씬 낫네’ 하면서 즐기기에는 외국 성악가들이 부른 한국 가곡은 우리 음악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