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불어온 바람이 대한민국을 휘감고 있다. 바람의 이름은 ‘한류’(漢流). ‘화풍’(華風)으로도 불리는 이 열풍은 좀처럼 잠잠해질 낌새가 없다.
풍속(風速) 또한 빠르다. 중국에서 국지적으로 부는 한류(韓流)에 비하면 전방위적이기까지 하다. 한류의 정중앙에 자리한 것은 한껏 달아오른 중국어 학습 붐. 국내 최대 중국어전문학원인 고려중국센터. 1999년 7월 서울 종로에 문을 연 이 학원의 수강생은 20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동기 대비 25% 증가한 수치. 강좌 수만도 154개. 10층 건물의 8개 층을 강의실로 쓰지만 곧 수강생이 25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돼 내년 1월부터는 자습실로 사용중인 나머지 1개 층도 강의실로 쓸 계획이다.
“비수기인 지난 2월부터 수강생 수가 수직 상승했다.” 김진호 교무부장(45)은 “99년까지는 수강생의 절대 다수가 대학생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직장인과 초ㆍ중ㆍ고생, 퇴직자 등으로 중국어 수학계층이 다변화했다”고 귀띔한다. 지난달 1주일간 중국연수를 다녀온 뒤 중국어 초급과정에 입문했다는 회사원 K씨(35)는 “남편과 아버지의 중국지사 파견으로 중국어를 배우려는 아내와 자녀, 개인사업을 위해 중국시장을 탐색하려는 명퇴자, 조기유학 적성을 타진하는 중고생 등 연령대별로 다양한 수강생들이 섞여 있는 데 놀랐다”고 했다. 수강생이 최근 1년 새 급증한 것은 서울의 5개 중국어전문학원은 물론 전국의 다른 학원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공직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행정자치부 교육훈련과 박환기 사무관은 “중앙ㆍ과천ㆍ대전 등 3개 정부청사에서 실시하는 외국어교육에서 중국어를 택한 공무원은 지난해 324명에서 올해 402명으로 늘어난 반면, 일본어를 희망한 공무원은 지난해 497명에서 올해 397명으로 줄었다”며 “현행 중국어교육은 5개월 과정이지만 희망자가 쇄도해 내년엔 10주 과정도 개설할 방침”이라 밝혔다. 미국유학 경험을 가진 한 중앙부처 사무관(35)은 “공무원의 이점 중 하나가 국비유학제도”라며 “당장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혹시 찾아올지 모를 중국유학 기회에 대비해 미리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배우기’ 열풍은 중국어능력평가시험인 HSK(한어수평고시) 응시자 증가에서도 두드러진다. 인원이 해마다 500~600명씩 늘어나 올해 두 차례 치른 HSK엔 6500여명이 응시, 지난해 5000여명에서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 11월15일(부산)과 18일(서울) 열린 제2회 중국유학박람회도 대성황이었다. 세계 10위권 대학인 칭화(淸華)대학을 비롯해 베이징대학, 인민대학, 베이징중의약대학 등 46개 대학이 참가한 이 행사엔 한국학생 2900여명이 몰려 중국유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주한 중국 총영사관과 함께 행사를 주관한 한중교육개발원 김정준 이사는 “지난해 10월 제1회 박람회 때의 1000여명에 비해 참가 학생이 크게 늘었다”며 “최근 중국에 유학중인 외국인 학생 중 한국 유학생 수가 일본을 앞지르고 1위에 올라선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 말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이 99년 9200여명에서 올해는 1만5000여명 선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한다.
한류 열풍에 편승, 대만에서 교재를 가져와 중국어로 수업하는 화교소학교(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열성 학부모도 등장했다. 인천 중산소학 관계자는 “지난 신학기(8월)에 임박해 입학 가능 여부를 묻는 한국인들의 문의전화가 매일 10여통쯤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 지방교육기획과 관계자는 “중국인이거나 외국에서 5년 이상 거주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화교학교 입학을 불허하는 교육부 지침상 현재 재학중인 한국인 학생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한다. 그런데도 전국 31개 화교학교(중ㆍ고교 4개 포함)엔 한국인들의 입학 문의가 빗발친다. 실제 부산 화교유아원 관계자는 “원생 30여명 중 한국 어린이가 10여명”이라며 “그러나 개인차가 커 아동들의 중국어 조기습득 효과 유무를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들의 ‘중국통(通) 모시기’도 한창이다. 중국 보험당국이 조만간 외국보험사(합작사 포함)에 개방하는 도시를 대폭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삼성생명이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정보수집, 인맥확보 등 제반업무 수행을 위해 기획팀 내 중국 칭화대학 졸업자 및 현지 LG 계열사 근무경력을 가진 조선족 2명을 충원한 데 이어 외환은행, 현대자동차 등 유수 민간기업들도 중국 내 영업활동 강화를 위해 업무능력과 중국어 능력을 겸비한 중국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임원급 200여명이 참가한 인터넷 온라인 중국어교육 프로그램인 ‘러닝넷 차이나’를 운영중이다.
한류 열풍엔 지방자치단체들도 빠지지 않는다. 대구시는 월드컵을 계기로 중국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관광호텔 내 ‘마작방’(중국인들이 마작을 즐길 수 있게 한 일종의 놀이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문화관광부에 건의할 것을 내부 검토중이다.
이런 친중(親中) 열기에 화교들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다. 한국화교경제인협회 장치무 이사(35)는 “솔직히 한국 내 중국 열풍은 지나치리만큼 뜨겁다. 물론 2만5000여 화교들도 향후 한ㆍ중 교류에서 담당할 역할에 큰 기대를 갖지만, 15만명을 웃도는 한국 내 조선족을 의식하면 위기의식을 느낄 때도 많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협회 역시 중국 본토 내 자매결연 기업들의 월드컵 입장권 예매를 대행하기로 하는 등 한류 열풍을 호재로 적극 이용할 계획이다.
한국을 휩쓸고 있는 위력적인 한류의 근원은 과연 어디일까. 두말할 것 없이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이다. 서울대 주우진 교수(41ㆍ경영학)는 “21세기는 고객이 만족 가능한 체험을 제공하는 데 마케팅 전략의 중점을 둬야 하는 ‘체험의 경제’ 시대다. 우리 문화가 중국에 한류(韓流)로 어필하는 호기를 놓치지 않은 채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선 단순한 상품의 한계를 넘어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특별한 마케팅 대안이 필요하다. 한류(漢流)는 바로 중국인들이 만족할 만한 체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이 필연적으로 먼저 체득해야 할 일종의 비즈니스 인프라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한ㆍ중 교류 규모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집계에 따르면 중국행 한국인 관광객 수는 99년 82만120명, 지난해 103만3250명, 올해 1∼9월엔 96만7675명으로 급증하는 등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9월 말 현재까지 한국을 찾은 중국인도 35만명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6.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사측은 월드컵 기간 중 방한할 중국인이 무려 6만여명에 이를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류 열풍이, 남들이 조금 앞서가면 자신도 ‘어떤’ 기대감을 갖고 동참하지 않으면 뒤처지기 십상이란 조급증에 곧잘 빠지는 한국인 특유의 막연한 정서로 더 급속히 확산된다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2 월드컵 중국팀 경기의 한국 배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로 이어지는 일련의 호재들이 줄을 잇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열풍이 고스란히 중국 특수로 이어질지 낙관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것. 한류가 한국에 난류(暖流)일지, 한류(寒流)일지는 더 신중히 지켜볼 문제라는 것이다.
고려대 장동천 교수(36ㆍ중문학)는 “한류 열풍에 ‘거품’은 없는지 국가적 차원에서 냉철히 점검하고 경계해야 할 시점이 됐다. 한류는 하나의 트렌드인 만큼 그 트렌드를 어떻게 대중(對中) 비즈니스 전략으로 이어갈지가 한류 자체보다 더 절실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한류 열풍이 불어닥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면서 중국어 가능인력의 수요가 급증한 때문임은 자명하다. 인터넷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www.incruit. com)가 기업 및 개인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어 가능인력 채용 공고 수는 올 들어 11월 말까지 27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건보다 435.3%나 늘었다. 인크루트 이민희 매체운영팀장은 “기업에서 실무에 바로 투입 가능한 HSK 9급 이상 고급인력이 희소해 ‘풍요 속 빈곤’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어 수학인구가 있는데도 기업들이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고급인력에 목말라하는 현실은 아이러니컬하다. 한류 열풍이 적잖이 낭비적 요소를 지녔다는 방증인 셈. 무분별한 한류 열풍이 지속될수록 한ㆍ중 교류에서 거둘 수 있는 과실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쨌든 엇갈린 두 갈래 시각에도 아랑곳없이 한류 열기가 쉽사리 식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산업은행이 지난 12월3일 내놓은 연구보고서는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중국의 개혁전략과 성과’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1978년 12월 중국의 개혁ㆍ개방 선언 이후 20여년에 걸친 중국 개혁전략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중국의 개혁과 발전이 인접국인 한국에 양면적 영향을 끼칠 것이며, 한국은 경제교류 및 무역흑자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과 경쟁심화에 따른 시장잠식 우려를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중국이 상당기간 고도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열도에서 휘몰아치는 한류의 파장 역시 침체된 세계경제의 ‘넘버 투’를 향해 약진하는 중국에 대한 매력과 경계해야 할 경쟁대상의 의미로까지 스펙트럼화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최대 위협은 북한의 군사력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력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한류(漢流)와 한류(韓流). 반도와 대륙에서 마주 부는 두 바람을 타고 비상(飛翔)하기 위해 풍속과 풍량을 조절할 필요성은 이제 한국의 새 과제로 떠올랐다.
풍속(風速) 또한 빠르다. 중국에서 국지적으로 부는 한류(韓流)에 비하면 전방위적이기까지 하다. 한류의 정중앙에 자리한 것은 한껏 달아오른 중국어 학습 붐. 국내 최대 중국어전문학원인 고려중국센터. 1999년 7월 서울 종로에 문을 연 이 학원의 수강생은 2000여명에 달한다. 지난해 동기 대비 25% 증가한 수치. 강좌 수만도 154개. 10층 건물의 8개 층을 강의실로 쓰지만 곧 수강생이 2500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돼 내년 1월부터는 자습실로 사용중인 나머지 1개 층도 강의실로 쓸 계획이다.
“비수기인 지난 2월부터 수강생 수가 수직 상승했다.” 김진호 교무부장(45)은 “99년까지는 수강생의 절대 다수가 대학생이었지만 지난해부터 직장인과 초ㆍ중ㆍ고생, 퇴직자 등으로 중국어 수학계층이 다변화했다”고 귀띔한다. 지난달 1주일간 중국연수를 다녀온 뒤 중국어 초급과정에 입문했다는 회사원 K씨(35)는 “남편과 아버지의 중국지사 파견으로 중국어를 배우려는 아내와 자녀, 개인사업을 위해 중국시장을 탐색하려는 명퇴자, 조기유학 적성을 타진하는 중고생 등 연령대별로 다양한 수강생들이 섞여 있는 데 놀랐다”고 했다. 수강생이 최근 1년 새 급증한 것은 서울의 5개 중국어전문학원은 물론 전국의 다른 학원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이다.
공직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행정자치부 교육훈련과 박환기 사무관은 “중앙ㆍ과천ㆍ대전 등 3개 정부청사에서 실시하는 외국어교육에서 중국어를 택한 공무원은 지난해 324명에서 올해 402명으로 늘어난 반면, 일본어를 희망한 공무원은 지난해 497명에서 올해 397명으로 줄었다”며 “현행 중국어교육은 5개월 과정이지만 희망자가 쇄도해 내년엔 10주 과정도 개설할 방침”이라 밝혔다. 미국유학 경험을 가진 한 중앙부처 사무관(35)은 “공무원의 이점 중 하나가 국비유학제도”라며 “당장 뚜렷한 목적은 없지만, 혹시 찾아올지 모를 중국유학 기회에 대비해 미리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배우기’ 열풍은 중국어능력평가시험인 HSK(한어수평고시) 응시자 증가에서도 두드러진다. 인원이 해마다 500~600명씩 늘어나 올해 두 차례 치른 HSK엔 6500여명이 응시, 지난해 5000여명에서 큰 폭으로 늘었다.
지난 11월15일(부산)과 18일(서울) 열린 제2회 중국유학박람회도 대성황이었다. 세계 10위권 대학인 칭화(淸華)대학을 비롯해 베이징대학, 인민대학, 베이징중의약대학 등 46개 대학이 참가한 이 행사엔 한국학생 2900여명이 몰려 중국유학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주한 중국 총영사관과 함께 행사를 주관한 한중교육개발원 김정준 이사는 “지난해 10월 제1회 박람회 때의 1000여명에 비해 참가 학생이 크게 늘었다”며 “최근 중국에 유학중인 외국인 학생 중 한국 유학생 수가 일본을 앞지르고 1위에 올라선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 말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중국 내 한국 유학생이 99년 9200여명에서 올해는 1만5000여명 선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한다.
한류 열풍에 편승, 대만에서 교재를 가져와 중국어로 수업하는 화교소학교(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열성 학부모도 등장했다. 인천 중산소학 관계자는 “지난 신학기(8월)에 임박해 입학 가능 여부를 묻는 한국인들의 문의전화가 매일 10여통쯤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부 지방교육기획과 관계자는 “중국인이거나 외국에서 5년 이상 거주경험이 있는 한국인이 아니면 원칙적으로 화교학교 입학을 불허하는 교육부 지침상 현재 재학중인 한국인 학생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한다. 그런데도 전국 31개 화교학교(중ㆍ고교 4개 포함)엔 한국인들의 입학 문의가 빗발친다. 실제 부산 화교유아원 관계자는 “원생 30여명 중 한국 어린이가 10여명”이라며 “그러나 개인차가 커 아동들의 중국어 조기습득 효과 유무를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들의 ‘중국통(通) 모시기’도 한창이다. 중국 보험당국이 조만간 외국보험사(합작사 포함)에 개방하는 도시를 대폭 확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삼성생명이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정보수집, 인맥확보 등 제반업무 수행을 위해 기획팀 내 중국 칭화대학 졸업자 및 현지 LG 계열사 근무경력을 가진 조선족 2명을 충원한 데 이어 외환은행, 현대자동차 등 유수 민간기업들도 중국 내 영업활동 강화를 위해 업무능력과 중국어 능력을 겸비한 중국 전문가를 영입하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임원급 200여명이 참가한 인터넷 온라인 중국어교육 프로그램인 ‘러닝넷 차이나’를 운영중이다.
한류 열풍엔 지방자치단체들도 빠지지 않는다. 대구시는 월드컵을 계기로 중국 관광객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관광호텔 내 ‘마작방’(중국인들이 마작을 즐길 수 있게 한 일종의 놀이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문화관광부에 건의할 것을 내부 검토중이다.
이런 친중(親中) 열기에 화교들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다. 한국화교경제인협회 장치무 이사(35)는 “솔직히 한국 내 중국 열풍은 지나치리만큼 뜨겁다. 물론 2만5000여 화교들도 향후 한ㆍ중 교류에서 담당할 역할에 큰 기대를 갖지만, 15만명을 웃도는 한국 내 조선족을 의식하면 위기의식을 느낄 때도 많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나 협회 역시 중국 본토 내 자매결연 기업들의 월드컵 입장권 예매를 대행하기로 하는 등 한류 열풍을 호재로 적극 이용할 계획이다.
한국을 휩쓸고 있는 위력적인 한류의 근원은 과연 어디일까. 두말할 것 없이 급성장하는 중국의 경제력이다. 서울대 주우진 교수(41ㆍ경영학)는 “21세기는 고객이 만족 가능한 체험을 제공하는 데 마케팅 전략의 중점을 둬야 하는 ‘체험의 경제’ 시대다. 우리 문화가 중국에 한류(韓流)로 어필하는 호기를 놓치지 않은 채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선 단순한 상품의 한계를 넘어 상품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특별한 마케팅 대안이 필요하다. 한류(漢流)는 바로 중국인들이 만족할 만한 체험을 만들어내기 위해 한국이 필연적으로 먼저 체득해야 할 일종의 비즈니스 인프라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 한ㆍ중 교류 규모는 급격히 커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집계에 따르면 중국행 한국인 관광객 수는 99년 82만120명, 지난해 103만3250명, 올해 1∼9월엔 96만7675명으로 급증하는 등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 들어 지난 9월 말 현재까지 한국을 찾은 중국인도 35만명을 넘어 전년 동기 대비 6.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사측은 월드컵 기간 중 방한할 중국인이 무려 6만여명에 이를 것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그러나 일각에선 한류 열풍이, 남들이 조금 앞서가면 자신도 ‘어떤’ 기대감을 갖고 동참하지 않으면 뒤처지기 십상이란 조급증에 곧잘 빠지는 한국인 특유의 막연한 정서로 더 급속히 확산된다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02 월드컵 중국팀 경기의 한국 배정,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로 이어지는 일련의 호재들이 줄을 잇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 열풍이 고스란히 중국 특수로 이어질지 낙관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것. 한류가 한국에 난류(暖流)일지, 한류(寒流)일지는 더 신중히 지켜볼 문제라는 것이다.
고려대 장동천 교수(36ㆍ중문학)는 “한류 열풍에 ‘거품’은 없는지 국가적 차원에서 냉철히 점검하고 경계해야 할 시점이 됐다. 한류는 하나의 트렌드인 만큼 그 트렌드를 어떻게 대중(對中) 비즈니스 전략으로 이어갈지가 한류 자체보다 더 절실한 과제”라고 지적한다.
한류 열풍이 불어닥친 이유 중 하나는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이 늘면서 중국어 가능인력의 수요가 급증한 때문임은 자명하다. 인터넷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www.incruit. com)가 기업 및 개인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국어 가능인력 채용 공고 수는 올 들어 11월 말까지 27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1건보다 435.3%나 늘었다. 인크루트 이민희 매체운영팀장은 “기업에서 실무에 바로 투입 가능한 HSK 9급 이상 고급인력이 희소해 ‘풍요 속 빈곤’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에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어 수학인구가 있는데도 기업들이 중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고급인력에 목말라하는 현실은 아이러니컬하다. 한류 열풍이 적잖이 낭비적 요소를 지녔다는 방증인 셈. 무분별한 한류 열풍이 지속될수록 한ㆍ중 교류에서 거둘 수 있는 과실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쨌든 엇갈린 두 갈래 시각에도 아랑곳없이 한류 열기가 쉽사리 식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산업은행이 지난 12월3일 내놓은 연구보고서는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중국의 개혁전략과 성과’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1978년 12월 중국의 개혁ㆍ개방 선언 이후 20여년에 걸친 중국 개혁전략의 성과를 정리하면서 ‘중국의 개혁과 발전이 인접국인 한국에 양면적 영향을 끼칠 것이며, 한국은 경제교류 및 무역흑자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과 경쟁심화에 따른 시장잠식 우려를 동시에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중국이 상당기간 고도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분석한다. 일본열도에서 휘몰아치는 한류의 파장 역시 침체된 세계경제의 ‘넘버 투’를 향해 약진하는 중국에 대한 매력과 경계해야 할 경쟁대상의 의미로까지 스펙트럼화하고 있다. 얼마 전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최대 위협은 북한의 군사력이 아니라 중국의 경제력이라 지적하기도 했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한류(漢流)와 한류(韓流). 반도와 대륙에서 마주 부는 두 바람을 타고 비상(飛翔)하기 위해 풍속과 풍량을 조절할 필요성은 이제 한국의 새 과제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