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88년까지 마이너리그에 머물다 89년 풀타임 선발에 올랐다. 96시즌엔 17승에 방어율 1.89로 최고 성적을 올렸지만 사이영상(1956년부터 미국 야구기자협회에서 그해 최고 투수에 수여하는 상)을 존 스몰츠(애틀랜타)에게 양보해야 했다. 그러나 97시즌 플로리다 말린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 샌디에이고로 이적해 팀의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또 다른 선수. 직구 구속 100마일에 제구력이 형편없던 이 왼손 투수는 전설의 투수 놀란 라이언의 도움을 받아 최정상급 투수로 변신했다. 95년 다승·방어율·탈삼진 부문에서 1위를 차지, 50여 년 만에 투수부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관심있는 야구팬이라면 금세 눈치챘겠지만 앞의 선수는 ‘우승 청부사’로 불리는 케빈 브라운(LA 다저스)이고, 두 번째 선수는 ML 최장신(2m7cm) 랜디 존슨이다. 편의상 이들을 승수로 분류해 말하면 20승 투수라 할 수 있다. 20승의 위력을 갖춘, 그야말로 에이스 중 에이스라는 뜻이다.
현역 최고 케빈 브라운·랜디 존슨
구단이 30개팀으로 늘어난 미국 상황에서 쓸 만한 투수는 가치가 날로 치솟는다. 한국의 유망주까지 싹쓸이해야 할 만큼 다급한 전 세계적 마운드 기근은, 역설적으로 앞서 열거한 투수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다. 랜디 존슨의 데뷔 연도는 88년. 63년 9월10일 캘리포니아 출신. 올해로 14년째인데도 전성기를 구가한다는 평가다. 99년 휴스턴에서 애리조나로 팀을 옮겨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랜디 존슨보다 2년 먼저 데뷔한 케빈 브라운은 150km대의 빠른 직구와 싱커를 주무기삼아 마운드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다승왕을 달리는 로저 클레멘스(뉴욕 양키스)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현재 19승1패로 15연승을 달리고 있다. 메이저리그 18년째 최고 베테랑 투수인 클레멘스는 지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지나간 곳마다 기록을 경신해 왔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현역 최다 수상(5회)이 이를 대변해 준다. 올 시즌 종료 후 사이영상을 수상한다면 역사상 최초 6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다.
브라운·존슨·클레멘스. 세 투수는 투수의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에이스의 기본 덕목은 일반적으로 구위, 컨트롤, 투구요령, 배짱 등의 네 가지(레너드 코페트 저, 이종남 역, ‘야구란 무엇인가 2’)로 꼽힌다. 이 순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열거한 순서는 20승 투수와 19승 또는 15승 투수 등의 준에이스급을 나누는데 결정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구속과 변화구의 예리함 등을 총칭하는 구위는 선천적 재능이다. 현역 투수코치들 역시 구위는 향상시키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대신 구위를 잃지 않은 채 던지고자 하는 곳에 찔러넣는 컨트롤은 훈련을 통해, 그것도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연마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위와 컨트롤을 갖췄다면 그 선수는 20승 투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초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기초자격’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박찬호의 성장 과정을 보면 20승 투수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알 수 있다. 데뷔 때 들쭉날쭉 컨트롤로 애먹은 그는 지난 4년 간 선발 로테이션에서 꾸준히 제몫을 해왔다. 그는 지난 겨울 출국 때 “내 최고 목표는 원하는 곳에 공을 찔러 넣는 것과 6이닝 3실점 이내의 퀄리티 스타트를 유지하는 것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두 가지 소망을 어느 정도 이룬 듯하지만 아직까지 준에이스 딱지는 떼지 못했다.
또 한 예를 들어보자. 뉴욕 양키스의 우완 데이비드 콘은 케빈 브라운과 같은 해인 86년 데뷔한 수준급 투수다. 99년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결코 뒤지지 않은 구위와 컨트롤로 각광을 받았으나 로저 클레멘스, 케빈 브라운의 반열에 놓고 취급하는 감독과 칼럼니스트는 아무도 없다. 데이비드 콘은 싱커, 컷 패스트볼, 두 종류의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지만 투구수가 많고 주자가 누상에 있을 때 구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와 많이 닮은 모습 아닌가. 박찬호와 데이비드 콘이 수준급 투수인데도, 종이 한 장 차이가 이들을 20승 투수의 반열에 올리는 데 주저케 한다. 결국 20승과 15승을 가르는 가장 주요 변수는 투구 요령과 배짱이라는 것이다.
올 시즌 로저 클레멘스보다 먼저 20승을 달성했지만 그다지 훌륭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커트 실링(애리조나) 역시 마찬가지 약점을 안고 있다. 타선의 폭발력이 강해 승수 쌓기 유리한 팀을 만난 것이 주효했을 뿐, 지난해까지의 승수를 보더라도 아직 20승급 투수라는 말을 듣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스태츠사 발간 메이저리그 스카우팅 노트북 2001개정판에 나온 로저 클레멘스의 투구 평가를 살펴보자. 스카우팅 노트북은 “로저 클레멘스는 위기에 빠졌을 때 최고 피칭을 하는 투수다. 특히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 같은 포스트시즌 때 그의 구속은 최고 97마일(156km, 참고로 그의 나이는 39세)까지 나왔다”고 기술했다. 자신의 구위와 컨트롤을 언제,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 클레멘스는 잘 알고 있고, 그게 바로 투구 요령인 것이다.
클레멘스는 지난해 시즌 도중 뉴욕 메츠의 슬러거 마이크 피아자와의 빈볼 시비로 인해 사무국의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한술 더 떠 “돈을 낼 테니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바란다”는 말로 역공을 취했다. 로저 클레멘스는 여전히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도 변함없이 활약했음은 물론 피아자와의 승부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게 바로 배짱이다.
구위를 제외하고, 컨트롤과 투구 요령, 배짱 등의 요소는 분명 후천적 요소다. 그러나 무작정 노력만 한다고 습득할 수 있는 항목도 아니다. 놀라운 스피드와 컨트롤을 갖추는 데 몇 년이 걸리고, 또 경험을 통한 요령과 배짱이 몇 년 걸려야 쌓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요령을 습득했다 싶으면 어깨는 이미 노쇠해 있게 마련이다. ‘20승 투수는 신이 내린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또 다른 선수. 직구 구속 100마일에 제구력이 형편없던 이 왼손 투수는 전설의 투수 놀란 라이언의 도움을 받아 최정상급 투수로 변신했다. 95년 다승·방어율·탈삼진 부문에서 1위를 차지, 50여 년 만에 투수부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관심있는 야구팬이라면 금세 눈치챘겠지만 앞의 선수는 ‘우승 청부사’로 불리는 케빈 브라운(LA 다저스)이고, 두 번째 선수는 ML 최장신(2m7cm) 랜디 존슨이다. 편의상 이들을 승수로 분류해 말하면 20승 투수라 할 수 있다. 20승의 위력을 갖춘, 그야말로 에이스 중 에이스라는 뜻이다.
현역 최고 케빈 브라운·랜디 존슨
구단이 30개팀으로 늘어난 미국 상황에서 쓸 만한 투수는 가치가 날로 치솟는다. 한국의 유망주까지 싹쓸이해야 할 만큼 다급한 전 세계적 마운드 기근은, 역설적으로 앞서 열거한 투수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했다. 랜디 존슨의 데뷔 연도는 88년. 63년 9월10일 캘리포니아 출신. 올해로 14년째인데도 전성기를 구가한다는 평가다. 99년 휴스턴에서 애리조나로 팀을 옮겨 지난해까지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랜디 존슨보다 2년 먼저 데뷔한 케빈 브라운은 150km대의 빠른 직구와 싱커를 주무기삼아 마운드의 제왕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다승왕을 달리는 로저 클레멘스(뉴욕 양키스)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현재 19승1패로 15연승을 달리고 있다. 메이저리그 18년째 최고 베테랑 투수인 클레멘스는 지금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지나간 곳마다 기록을 경신해 왔다.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현역 최다 수상(5회)이 이를 대변해 준다. 올 시즌 종료 후 사이영상을 수상한다면 역사상 최초 6회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한다.
브라운·존슨·클레멘스. 세 투수는 투수의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에이스의 기본 덕목은 일반적으로 구위, 컨트롤, 투구요령, 배짱 등의 네 가지(레너드 코페트 저, 이종남 역, ‘야구란 무엇인가 2’)로 꼽힌다. 이 순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열거한 순서는 20승 투수와 19승 또는 15승 투수 등의 준에이스급을 나누는데 결정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구속과 변화구의 예리함 등을 총칭하는 구위는 선천적 재능이다. 현역 투수코치들 역시 구위는 향상시키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대신 구위를 잃지 않은 채 던지고자 하는 곳에 찔러넣는 컨트롤은 훈련을 통해, 그것도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연마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구위와 컨트롤을 갖췄다면 그 선수는 20승 투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초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기초자격’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박찬호의 성장 과정을 보면 20승 투수로 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잘 알 수 있다. 데뷔 때 들쭉날쭉 컨트롤로 애먹은 그는 지난 4년 간 선발 로테이션에서 꾸준히 제몫을 해왔다. 그는 지난 겨울 출국 때 “내 최고 목표는 원하는 곳에 공을 찔러 넣는 것과 6이닝 3실점 이내의 퀄리티 스타트를 유지하는 것뿐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제는 두 가지 소망을 어느 정도 이룬 듯하지만 아직까지 준에이스 딱지는 떼지 못했다.
또 한 예를 들어보자. 뉴욕 양키스의 우완 데이비드 콘은 케빈 브라운과 같은 해인 86년 데뷔한 수준급 투수다. 99년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는 등 결코 뒤지지 않은 구위와 컨트롤로 각광을 받았으나 로저 클레멘스, 케빈 브라운의 반열에 놓고 취급하는 감독과 칼럼니스트는 아무도 없다. 데이비드 콘은 싱커, 컷 패스트볼, 두 종류의 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지만 투구수가 많고 주자가 누상에 있을 때 구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와 많이 닮은 모습 아닌가. 박찬호와 데이비드 콘이 수준급 투수인데도, 종이 한 장 차이가 이들을 20승 투수의 반열에 올리는 데 주저케 한다. 결국 20승과 15승을 가르는 가장 주요 변수는 투구 요령과 배짱이라는 것이다.
올 시즌 로저 클레멘스보다 먼저 20승을 달성했지만 그다지 훌륭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커트 실링(애리조나) 역시 마찬가지 약점을 안고 있다. 타선의 폭발력이 강해 승수 쌓기 유리한 팀을 만난 것이 주효했을 뿐, 지난해까지의 승수를 보더라도 아직 20승급 투수라는 말을 듣기에는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스태츠사 발간 메이저리그 스카우팅 노트북 2001개정판에 나온 로저 클레멘스의 투구 평가를 살펴보자. 스카우팅 노트북은 “로저 클레멘스는 위기에 빠졌을 때 최고 피칭을 하는 투수다. 특히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 같은 포스트시즌 때 그의 구속은 최고 97마일(156km, 참고로 그의 나이는 39세)까지 나왔다”고 기술했다. 자신의 구위와 컨트롤을 언제,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 클레멘스는 잘 알고 있고, 그게 바로 투구 요령인 것이다.
클레멘스는 지난해 시즌 도중 뉴욕 메츠의 슬러거 마이크 피아자와의 빈볼 시비로 인해 사무국의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그러자 한술 더 떠 “돈을 낼 테니 자선단체에 기부하기 바란다”는 말로 역공을 취했다. 로저 클레멘스는 여전히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도 변함없이 활약했음은 물론 피아자와의 승부에서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게 바로 배짱이다.
구위를 제외하고, 컨트롤과 투구 요령, 배짱 등의 요소는 분명 후천적 요소다. 그러나 무작정 노력만 한다고 습득할 수 있는 항목도 아니다. 놀라운 스피드와 컨트롤을 갖추는 데 몇 년이 걸리고, 또 경험을 통한 요령과 배짱이 몇 년 걸려야 쌓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요령을 습득했다 싶으면 어깨는 이미 노쇠해 있게 마련이다. ‘20승 투수는 신이 내린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