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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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고 성공을 논할 테냐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5-01-12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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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를 모르고 성공을 논할 테냐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엄청난 사고가 터진 후 담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직한 대답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실패를 반복하면 결국 치명적 실패가 된다.

    과학 칼럼니스트 이인식씨(과학문화연구소 소장)는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두 차례나 ‘실패학’(失敗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실패를 연구해야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며, ‘창조적 실패’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일본의 실패학 연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사회에 ‘실패학’이라는 말이 도입된 것은 99년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 우라늄 연료처리회사에서 일어난 방사능 누출사고 때문이었다. 1945년 원폭피해 이래 최대의 피폭사고에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고, 이듬해 1월 일본 과학기술청 장관 자문기관인 ‘21세기 과학기술간담회’에서 ‘실패학을 구축하자’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거기에는 실패를 덮어 버리지 말고 ‘사고’의 시행착오 사례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실패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각종 사고와 시행착오에서 우리는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다. 당장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붕괴가 떠오르고 산업재해, 무더기 기업도산과 정리해고가 우리를 위협한다. 이인식 소장은 이런 한국을 ‘위험공화국’이라 했다.

    도쿄대 대학원 공학연구과 교수인 하타무라 요타로의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은 일반인을 위한 실패학 강의다. 특히 자신의 실험실에서 경험한 실패를 가감없이 예로 든 덕분에 강의가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고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타무라 교수는 “우리 인생의 80%는 실패의 연속이다”고 했다. 성공은 그만큼 귀하고 좋은 것이기에 우리는 성공에 집착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80%의 실패가 없었다면 성공이 가능했느냐고 묻는다.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타무라 교수의 강의록에서 ‘꺼리기 때문에 실패는 더욱 커진다’를 펼쳐보자. 실패는 갑작스럽게 닥치는 법이 거의 없다. 영화 예고편처럼 전조가 따른다. 그런데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으려는’ 본성 때문에 큰 실패에 대비하지 못한다. ‘하인리히 법칙’이 이것을 증명하는데, 큰 재해 속에 경미한 부상을 입을 정도로 가벼운 재해가 29건 있으며, 또 그 속에 인명 피해는 없지만 깜짝 놀랄 만한 300건의 사건이 존재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칙을 다른 곳에도 적용해 보자. 어느 기업의 제품에 대해 신문이 다룰 만큼 큰 결함이 나타났다면, 이면에는 반드시 경미한 클레임(고객의 불만)이 29건 존재하고, 29건 뒤에는 클레임 정도는 아니지만 ‘좋지 않다’고 느낄 정도의 잠재적 실패가 300건 정도는 있다. 이것을 1:29:300의 법칙이라 한다. 이것은 ‘방치한 실패는 성장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하타무라 교수의 강의록에는 한국의 삼풍백화점 사고가 1970년 와우 아파트의 실패를 잊었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하타무라 교수의 제안 중 상식을 깨는 것은 실패를 연습하라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실험실에서 맨손으로 불화수소산을 만지는 바람에 손가락을 다쳐 곤혹을 치렀다. 이 실패체험은 실험실 안전교육용으로 그만이다.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른 학생은 마치 자신이 그 일을 겪은 듯 얼굴을 찡그린다. 이것이 가상 실패체험의 효과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실패학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난 해 말 일본에서 출간해 열띤 반응을 얻은 이 책의 원제목은 ‘실패학의 권유’다. 일본이 실패학에 눈뜬 것은 ‘잃어버린 10년’을 지나면서 일본인이 국가와 기업의 시스템 관리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에서 한걸음 나아가기를 원하면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권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이 평상적 지각범위를 벗어나고 산업의 논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산하면서 현대 산업사회는 위험사회로 이행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86년.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적 부를 추구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경제적 부를 희생하더라도 위험을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는 것이 위험사회에서 인류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발전경로라고 했다. 이미 5년 전에 번역 출판했다. ‘실패학’은 입에는 쓰고 몸에는 좋은 약과 같다.

    ㆍ 실패를 감추는 사람 실패를 살리는 사람/ 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정택상 옮김/ 세종서적 펴냄/ 295쪽/ 9000원

    ㆍ 위험사회/ 울리히 벡 지음/ 홍성태 옮김/ 새물결 펴냄/ 384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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