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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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독비밀문서 獨정가 ‘회오리’

콜, 前 총리 비자금 도청 자료 공개 발끈…정치가들 “나 지금 떨고 있니?”

  • 입력2005-10-17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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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동독비밀문서 獨정가 ‘회오리’
    슈타지(구동독 국가안전부) 비밀문서 공개가 다시 독일 정가에서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 베를린의 한 일간지가 공개한 슈타지 문건은 독일의 전 연방총리 헬무트 콜의 비자금과 관련된 기민당 회계국 전 사무총장 뤼체와 전 회계국장 킵에 대한 도청자료를 담고 있다. 이미 몇 주일 전부터 관련 자료를 정리해오던 슈타지문서보관청은 이 언론사의 요구에 따라 자료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사가 공개한 자료에는 아직 콜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사실이나 비자금 기부자들의 명단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을 접한 콜은 분노하면서 슈타지자료보관청에 전화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자료의 공개를 금지하라고 요구했지만, 보관청의 가욱(Gauck) 청장은 자료의 공개가 슈타지비밀문서법(StUG)에 어긋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요구를 수락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은 다음날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곧 변호사를 통해 연방헌법재판소에 공개금지 신청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슈타지비밀문서법에 따르더라도 헌법재판소가 문서공개를 금지시킬 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콜의 행동은 오히려 현재 비자금 문제를 조사하고 있는 연방의회 조사위원회가 슈타지 자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콜과 그 관련자들의 진술 거부로 조사 중단 위기를 맞고 있는 연방의회 조사위원회는, 마지막 수단으로 슈타지자료보관청에 콜 비자금 사건에 깊이 관련된 뤼체나 킵의 도청자료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조사위원회에서는 사민당 위원장을 비롯, 대부분의 의원들이 구동독에서 불법으로 획득된 도청자료를 조사에 활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지만, 관련자들이 계속 진술을 거부할 경우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

    1991년 11월 독일 통일(1990년10월3일) 1년 후, 구동독의 슈타지 비밀문서 처리를 위한 법안을 만든 일차적 목적은 슈타지 염탐의 희생자가 된 동독시민들에게 자신에 관한 기록을 들여다볼 권리를 인정하고, 이로써 억압체제 속의 불행했던 삶을 청산하는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 이 법에 따르면 모든 독일 시민은 슈타지자료보관청에서 자신에 관한 모든 기록을 들여다볼 권리를 갖고 있다. 이미 통일협약서에서도 보존된 슈타지의 기록은 특정한 목적에 사용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의회나 관청,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는 기업의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과거자료를 자료보관청에 요청할 수도 있다. 이에 덧붙여 슈타지비밀문서법은 언론인들과 학자들의 사용도 규정하고 있는데, 역사적 사실의 해명을 위해 개인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 한해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헬무트 콜을 포함해서 역사적 인물의 경우는 보호받아야 할 권익이 침해되지 않는 한 실명을 공개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약 445만명의 독일 시민과 기관들이 이 서류를 관람하는 권리를 사용했다.

    이 법안이 만들어질 당시, 원래 슈타지의 모든 서류를 폐기처분하고 싶어했던 콜과 기민당의 정치가들이 구동독 인권보호 위원회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여 자료를 보관하게 한 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배경이 있다. 통일을 눈앞에 둔 1990년 여름, 당시 서독의 총리였던 콜은 서독의 정치가, 기업인, 그리고 중요인사들에 대한 슈타지의 도청 자료를 비밀리에 폐기시켜 버렸던 것이다. 구동독의 슈타지는 1990년의 붕괴까지 수십년 동안 약 2400명의 요원으로 2만5000명의 서독 정치가, 기업가와 중요인사, 그리고 서독정보요원의 전화를 도청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이 경악할 만한 사실에 직면한 콜 정부와 기민당은 당시 구동독의 내무장관이었던 디스텔을 종용하여 서독 정치가들과 특히 기민당의 주요인사들에 대한 모든 자료를 슈타지문서관리국에서 분리하여 서독의 헌법보호청으로 이송하게 했다. 이송된 자료들은 그대로 폐기되었다. 이 폐기처분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던 사람은 당시 서독 내무장관이었던 볼프강 쇼이블레와 직원이었던 에카르트 베르테바하였다. 1990년 5월부터 구동독 내무장관 디스텔의 고문이기도 했던 베르테바하는 슈타지 본부 제3국의 도청자료 외에도 제2국(첩보방어)과 22국(테러방지), 18국(경제분야 계몽과 첩보방어)과 중앙관리국(HVA)에서 화근이 될 만한 모든 자료를 빼냈다. 현재 베를린 시의 내무국장인 베르테바하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1991년 연방의회의 내무위원회 회의기록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1991년 슈타지비밀문서법을 승인한 콜과 기민당은 10년 뒤 당시 폐기처분에서 빠진 뤼체나 킵의 도청자료가 자신들을 겨냥해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 도청자료의 공개위협에 당황해 ‘불법자료의 공개금지’를 주장하는 콜과 기민당의 태도는 동독출신의 정치가들과 동독지역의 시민들로부터 이중적 태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이 슈타지 자료의 공개는 역사적 사실의 해명이라는 구실로 여러 구동독의 정치가들에게 불리한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브란덴부르크주의 총리 슈톨페와 민사당(PDS) 원내총장 기지, 그리고 동독 출신 기민당의 드메지에르 등이 슈타지 자료와 관련해 곤혹을 겪었거나 정치적 생명을 박탈당한 정치가들이다.

    정치가들에 대한 슈타지 문서의 공개 금지를 주장하는 정치가들은 물론 기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례를 통해 완전한 비밀이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났기 때문에, 어딘가에 감춰져 있다 터져나올지 모르는 슈타지 문서들은 정치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현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민-녹색 연정과 야당인 기민당이 앞으로 슈타지 문서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지만, 콜에 대한 자료 사용을 금지할 경우 동서독간의 정서적 괴리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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