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문화’를 상징하는 카페 H. 문이 열릴 때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새로운 ‘침입자’의 얼굴에 꽂힌다.
‘내가 아는 사람? 연예인? 디자이너?’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시선은 빠르게 옷과 가방, 신발을 훑고 지나간다. 청담동의 트렌디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프라다나 구치를 입지 않고도 기가 죽지 않는 사람은 얼굴로 신분증명이 되는 연예인 혹은 예술가들뿐이다. 그리고 손님들로부터 얼마나 많이, 얼마나 호들갑스런 인사를 받는지에 따라 청담동에서 그 사람의 등급이 결정된다. 덕분에 카페 여기 저기에서 서양에서처럼 껴안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카페 안의 손님 절반 정도가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좀 불편하죠.”
사진작가 김용호씨는 씁쓸하게 말한다. 패션지 ‘보그’의 에디터 이충걸씨는 “청담동에 있으면 신경이 칼날처럼 선다”고도 했다. 청담동 카페들은 낯선 이들이 머물렀다 가는 일반적인 커피숍들과는 달리 아는 이들과 교제하는 공간으로 카페의 본래적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청담동 카페나 레스토랑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안에선 누구도 마음 편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H같은 카페들은 청담동의 축소판이다. 여기서 청담동은 행정구역상의 동이 아니라 갤러리아 사거리와 청담 사거리, 학동 사거리를 잇는 삼각형 안과 그 둘레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전세계의 유행이 가장 빨리 수입되고, 대한민국의 모든 트렌드들이 처음 생겨나는 곳, 제재하는 이는 없지만 평범한 이들이 결코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곳을 ‘청담 공화국’ 혹은 ‘청담 삼각지’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권력이란 두 가지죠. 돈이 많든가, 연예인 뺨치게 잘 생기든가.”
청담동에서 활동하는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말이다.
한적한 고급주택가였던 청담동이 독특한 아이콘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압구정동이 오렌지족으로 시끌벅적하던 90년대 중반부터다. 압구정동의 소란함을 피해온 30대 이상이 조용한 청담동의 카페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구정동의 고급 소비 트렌드를 창출하는 일에 종사한다. 패션 디자이너, 연예 매니지먼트, 광고 제작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등은 청담동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군이다.
여기에 88년 이후 떠났다가 30대가 되어 돌아온 유학생들을 빼놓을 수 없다. 대개 70년대에 돈을 번 부동산 재벌 2세들인 그들 중 일부가 취미삼아 트렌디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열었다. 청담동 음식점들이 묘하게 배타적인 것도 주인과 손님들이 하나의 사교클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담동이 압구정동과 분명히 차이나는 부분은 바로 유학 경험자들의 것이다.
“외국에서 놀았건 공부했건, 유학경험만 있으면 성공한 인물로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이 청담동입니다.”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최모씨의 말이다. 미국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 ‘쳐주는 것도’ 파리지앵이 아니라 뉴요커다. 예술가들이 뉴욕의 최신 유행을 수입하면 유학생들과 여피들은 향수와 동경 때문에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는 곳이 청담동이다. 그래서 청담동에는 언제나 눈이 팽팽 돌 만큼 빠르게 새로운 유행이 흘러간다.
4년전 ‘하루에’ ‘카페 드 플로라’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카페가 생겨나 성공한 이후 국화빵 같은 카페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겨났다. ‘궁’ ‘시안’으로 시작한 퓨전레스토랑들은 지금도 한 달에 10~20개 정도가 문을 열고 5개 정도는 폐업한다. 미니멀과 젠으로 유행을 바꾸며 레스토랑의 물결은 청담동에서 삼성동으로 진격을 계속해가고 있다. 파스타, 쌀국수, 스시바 바람이 차례로 불었고 지금은 차이니스 레스토랑 개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한 레스토랑에서 연봉 1억원에 외국인 주방장을 데려와 화제가 됐는데 상대적으로 인력 조달이 쉬운 차이니스 스타일이 꽤 오래 붐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이다.
요즈은 ‘틈’ ‘바바’ ‘젠’ ‘부다바’ ‘물바’ 같은 바(bar)에 모여 새벽까지 진을 마시는 것이 유행이어서 건물 전체가 바로 채워진 대형 빌딩도 신축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식에 대한 유행을 처음 만들어낸 청담동 레스토랑들은 일식과 중식, 심지어 한식조차도 정통이 아니라 웨스터나이스한 형태다. 그래서 가게는 바 스타일이 많고 차이니스 레스토랑엔 대개 자장면이 없다. 평일 낮시간엔 이런 레스토랑이 학부형 모임으로 채워지고 골목마다 파킹 요원들(대개 팁으로 1000원을 받는다)로 북새통을 이룬다. 외국에서 직장 여성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을 전업 주부들이 제복처럼 똑같이 입고 모여앉아 있는 것도 흥미로운 풍경이다.
자칭 ‘청담동 아줌마’라는 주부 윤모씨(38)는 삼성동에 살지만 “매일 청담동으로 출근해 새로 생긴 레스토랑을 순례하며 인테리어 감각도 배우고 가라오케에도 간다”고 한다. “안가면 불안하고, 가면 내게 없는 것이 눈에 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가끔 디자이너나 화랑 주인의 접대도 받는 ‘객관적 상류층’이다.
IMF사태 이후 철수했던 패션 명품점들이 속속 되돌아오면서 갤러리아에서 청담사거리까지는 뉴욕의 5번가와 점점 더 흡사해지고 있다. 그 외곽에 한국 디자이너들의 숍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장사가 잘되는 편은 아니다. “아르마니나 에르메스처럼 명품을 지향하는 상징적 의미로 무리해서라도 청담동에 본점을 낸다”는 게 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요즘 정구호 윤원정 홍은주 등 외국 유학을 마친 젊은 디자이너들의 활동 기반이 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고집센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그들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은 청담동뿐이에요.” ‘앤디 앤 뎁’의 디자이너 윤원정씨의 말이다. 그러나 청담동은 결코 혁신적인 취향을 가진 동네는 아니다. 96년에 아예 청담동으로 옮겨와 ‘현장 교육’을 하고 있는 동덕여대 디자인대의 최현숙교수는 “청담동에 가게를 내고 슬쩍 카피한 디자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디자이너들을 종종 본다”며 “개성적인 디자이너들은 결국 실패했다”고 평한다.
“손님들이 제각기 독특한 취향이 있는 듯 까다롭게 굴지만 알고 보면 똑같아요. 모두 외국의 유행에 똑같이 맞춰가고 있거든요.”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한 뷰틱매니저 김모씨의 말이다.
최고급품을 선택하지만 몰개성한 청담동의 취향은 이곳에 몰려 있는 30여개의 화랑에서도 드러난다. 한 화랑의 관계자는 “모든 손님이 박수근, 김환기만을 찾는다”면서 “최근 백남준 작품이 상한가인 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말한다. IMF사태 이후 이곳 화랑들은 생활 도예품 가게나 패션쇼 장소로 성격을 혼합해가는 중이다.
압구정 문화에 대해 그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담동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을 하지 않는다. 청담동의 대표적인 문화가 “가장 쉽게 허영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이충걸) 미식이란 것이 단적인 이유다. 한동안 ‘살롱 드 플로라’(카페 드 플로라 지하에 위치)에서 ‘터키 돕기 자선공연’을 여는 등 운영에 참여했던 연극인 박정자씨는 “우리나라에선 술 마시면 소리 지르고 떠드는 게 전부여서 제대로 된 음주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젊은 사람들의 유행이 빠르게 스쳐가는 곳이 됐다”고 아쉬워한다. 문화평론가 백지숙씨는 청담동 ‘문화’가 “상류사회란 계급적 특징은 있지만 내용물이나 자생성,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청담동처럼 문화적이고 유희적이며 장식적인 일에 정열을 불태우는 동네도 없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패션지 ‘마담 피가로’의 에디터 김은영씨는 “우리나라의 패션에서 창조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동대문이 아니라 청담동”이라고 말한다.
처음 청담동에 모여들어 나름의 문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철새들이 몰려다니는’ 청담동의 트렌디함에 진력을 내면서 ‘강북의 구질구질함, 복잡한 골목의 매력에 새삼 끌리고 있다’고들 했다. 요즘 뜨는 ‘물바’에서 느껴지는 것도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다.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것이 청담동 피플들의 새로운 유행이 되지는 않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확실히 청담동은 밖에서 구경할 때 재미있는 동네다.
‘내가 아는 사람? 연예인? 디자이너?’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시선은 빠르게 옷과 가방, 신발을 훑고 지나간다. 청담동의 트렌디한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프라다나 구치를 입지 않고도 기가 죽지 않는 사람은 얼굴로 신분증명이 되는 연예인 혹은 예술가들뿐이다. 그리고 손님들로부터 얼마나 많이, 얼마나 호들갑스런 인사를 받는지에 따라 청담동에서 그 사람의 등급이 결정된다. 덕분에 카페 여기 저기에서 서양에서처럼 껴안고 인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카페 안의 손님 절반 정도가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좀 불편하죠.”
사진작가 김용호씨는 씁쓸하게 말한다. 패션지 ‘보그’의 에디터 이충걸씨는 “청담동에 있으면 신경이 칼날처럼 선다”고도 했다. 청담동 카페들은 낯선 이들이 머물렀다 가는 일반적인 커피숍들과는 달리 아는 이들과 교제하는 공간으로 카페의 본래적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청담동 카페나 레스토랑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안에선 누구도 마음 편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H같은 카페들은 청담동의 축소판이다. 여기서 청담동은 행정구역상의 동이 아니라 갤러리아 사거리와 청담 사거리, 학동 사거리를 잇는 삼각형 안과 그 둘레를 의미한다. 대한민국에서 전세계의 유행이 가장 빨리 수입되고, 대한민국의 모든 트렌드들이 처음 생겨나는 곳, 제재하는 이는 없지만 평범한 이들이 결코 진입할 수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곳을 ‘청담 공화국’ 혹은 ‘청담 삼각지’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권력이란 두 가지죠. 돈이 많든가, 연예인 뺨치게 잘 생기든가.”
청담동에서 활동하는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말이다.
한적한 고급주택가였던 청담동이 독특한 아이콘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압구정동이 오렌지족으로 시끌벅적하던 90년대 중반부터다. 압구정동의 소란함을 피해온 30대 이상이 조용한 청담동의 카페에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구정동의 고급 소비 트렌드를 창출하는 일에 종사한다. 패션 디자이너, 연예 매니지먼트, 광고 제작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건축가 등은 청담동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직업군이다.
여기에 88년 이후 떠났다가 30대가 되어 돌아온 유학생들을 빼놓을 수 없다. 대개 70년대에 돈을 번 부동산 재벌 2세들인 그들 중 일부가 취미삼아 트렌디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열었다. 청담동 음식점들이 묘하게 배타적인 것도 주인과 손님들이 하나의 사교클럽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담동이 압구정동과 분명히 차이나는 부분은 바로 유학 경험자들의 것이다.
“외국에서 놀았건 공부했건, 유학경험만 있으면 성공한 인물로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이 청담동입니다.”
이곳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최모씨의 말이다. 미국 유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 ‘쳐주는 것도’ 파리지앵이 아니라 뉴요커다. 예술가들이 뉴욕의 최신 유행을 수입하면 유학생들과 여피들은 향수와 동경 때문에 아낌없이 돈을 지불하는 곳이 청담동이다. 그래서 청담동에는 언제나 눈이 팽팽 돌 만큼 빠르게 새로운 유행이 흘러간다.
4년전 ‘하루에’ ‘카페 드 플로라’처럼 새로운 스타일의 카페가 생겨나 성공한 이후 국화빵 같은 카페들이 한 집 건너 하나씩 생겨났다. ‘궁’ ‘시안’으로 시작한 퓨전레스토랑들은 지금도 한 달에 10~20개 정도가 문을 열고 5개 정도는 폐업한다. 미니멀과 젠으로 유행을 바꾸며 레스토랑의 물결은 청담동에서 삼성동으로 진격을 계속해가고 있다. 파스타, 쌀국수, 스시바 바람이 차례로 불었고 지금은 차이니스 레스토랑 개업이 붐을 이루고 있다. 한 레스토랑에서 연봉 1억원에 외국인 주방장을 데려와 화제가 됐는데 상대적으로 인력 조달이 쉬운 차이니스 스타일이 꽤 오래 붐을 이루고 있다는 분석이다.
요즈은 ‘틈’ ‘바바’ ‘젠’ ‘부다바’ ‘물바’ 같은 바(bar)에 모여 새벽까지 진을 마시는 것이 유행이어서 건물 전체가 바로 채워진 대형 빌딩도 신축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식에 대한 유행을 처음 만들어낸 청담동 레스토랑들은 일식과 중식, 심지어 한식조차도 정통이 아니라 웨스터나이스한 형태다. 그래서 가게는 바 스타일이 많고 차이니스 레스토랑엔 대개 자장면이 없다. 평일 낮시간엔 이런 레스토랑이 학부형 모임으로 채워지고 골목마다 파킹 요원들(대개 팁으로 1000원을 받는다)로 북새통을 이룬다. 외국에서 직장 여성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을 전업 주부들이 제복처럼 똑같이 입고 모여앉아 있는 것도 흥미로운 풍경이다.
자칭 ‘청담동 아줌마’라는 주부 윤모씨(38)는 삼성동에 살지만 “매일 청담동으로 출근해 새로 생긴 레스토랑을 순례하며 인테리어 감각도 배우고 가라오케에도 간다”고 한다. “안가면 불안하고, 가면 내게 없는 것이 눈에 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가끔 디자이너나 화랑 주인의 접대도 받는 ‘객관적 상류층’이다.
IMF사태 이후 철수했던 패션 명품점들이 속속 되돌아오면서 갤러리아에서 청담사거리까지는 뉴욕의 5번가와 점점 더 흡사해지고 있다. 그 외곽에 한국 디자이너들의 숍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장사가 잘되는 편은 아니다. “아르마니나 에르메스처럼 명품을 지향하는 상징적 의미로 무리해서라도 청담동에 본점을 낸다”는 게 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다. 요즘 정구호 윤원정 홍은주 등 외국 유학을 마친 젊은 디자이너들의 활동 기반이 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고집센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그들을 키워줄 수 있는 곳은 청담동뿐이에요.” ‘앤디 앤 뎁’의 디자이너 윤원정씨의 말이다. 그러나 청담동은 결코 혁신적인 취향을 가진 동네는 아니다. 96년에 아예 청담동으로 옮겨와 ‘현장 교육’을 하고 있는 동덕여대 디자인대의 최현숙교수는 “청담동에 가게를 내고 슬쩍 카피한 디자인으로 이름을 날리는 디자이너들을 종종 본다”며 “개성적인 디자이너들은 결국 실패했다”고 평한다.
“손님들이 제각기 독특한 취향이 있는 듯 까다롭게 굴지만 알고 보면 똑같아요. 모두 외국의 유행에 똑같이 맞춰가고 있거든요.”
갤러리아백화점에 입점한 뷰틱매니저 김모씨의 말이다.
최고급품을 선택하지만 몰개성한 청담동의 취향은 이곳에 몰려 있는 30여개의 화랑에서도 드러난다. 한 화랑의 관계자는 “모든 손님이 박수근, 김환기만을 찾는다”면서 “최근 백남준 작품이 상한가인 것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말한다. IMF사태 이후 이곳 화랑들은 생활 도예품 가게나 패션쇼 장소로 성격을 혼합해가는 중이다.
압구정 문화에 대해 그랬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담동에 대해 그다지 좋은 평을 하지 않는다. 청담동의 대표적인 문화가 “가장 쉽게 허영심을 만족시킬 수 있는”(이충걸) 미식이란 것이 단적인 이유다. 한동안 ‘살롱 드 플로라’(카페 드 플로라 지하에 위치)에서 ‘터키 돕기 자선공연’을 여는 등 운영에 참여했던 연극인 박정자씨는 “우리나라에선 술 마시면 소리 지르고 떠드는 게 전부여서 제대로 된 음주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젊은 사람들의 유행이 빠르게 스쳐가는 곳이 됐다”고 아쉬워한다. 문화평론가 백지숙씨는 청담동 ‘문화’가 “상류사회란 계급적 특징은 있지만 내용물이나 자생성, 차별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청담동처럼 문화적이고 유희적이며 장식적인 일에 정열을 불태우는 동네도 없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패션지 ‘마담 피가로’의 에디터 김은영씨는 “우리나라의 패션에서 창조를 이야기할 때 그것은 동대문이 아니라 청담동”이라고 말한다.
처음 청담동에 모여들어 나름의 문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철새들이 몰려다니는’ 청담동의 트렌디함에 진력을 내면서 ‘강북의 구질구질함, 복잡한 골목의 매력에 새삼 끌리고 있다’고들 했다. 요즘 뜨는 ‘물바’에서 느껴지는 것도 오래된 것에 대한 향수다.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것이 청담동 피플들의 새로운 유행이 되지는 않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확실히 청담동은 밖에서 구경할 때 재미있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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