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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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간판보다 실리’ 합격 반납 신입생 급증…잘나가는 벤처세계도 非서울대 수두룩

  • 입력2006-02-21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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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초부터 교육개혁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지만 입시 광풍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초등학생까지도 과외와 학원으로 내몰리는 한국사회에서 입시 경쟁은 ‘숙명’과도 같다. 그런 맹목적인 경쟁의 목표는 과연 어디일까. 그토록 치열한 경쟁의 끄트머리에는 ‘국립 서울대학교’가 있다.

    올 서울대 합격 3백여명 他大로

    서울대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대학이다. 수많은 엘리트를 배출, 우리 사회의 지배계층을 공급해온 ‘파워그룹’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같은 서울대의 파워에도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부터 서울대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지난 96년 입시사상 처음으로 서울대 지원자가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사립대학에 복수지원이 가능해지면서 나타난 현상. 거의 모든 합격자가 차질없이 입학했던 서울대에서 96학년도 1차합격자 중 4.4%인 230명이 등록하지 않고 타대학으로 이탈했다. 이전까지 서울대 1차합격자 중 미등록자는 91학년도 19명, 92학년도 17명, 93학년도 20명, 94학년도 15명, 95학년도 36명에 불과했다.

    입학 대상자의 대거 이탈은 서울대가 사상 최초로 추가합격자를 발표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탈 서울대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97학년도 356명, 98학년도 329명, 99학년도 339명, 2000학년도 329명이 서울대 1차시험에 합격하고도 다른 대학을 택한 것. 비록 입시제도의 변화 때문이긴 하지만 ‘서울대’ 배지를 달기 위해 적성조차 무시하고 달려들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양상이다.



    서울대가 이처럼 ‘외면’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합격자들에게 통보업무를 담당했던 서울대의 한 관계자는 “미등록 학생 대부분이 타대학 의대나 한의대를 가겠다거나 합격한 학과가 마음에 안들어 다른 대학을 선택한 경우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 서울대를 포기한 합격자 몇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간판보다 실리’를 택했더라도 나름의 철학이 깔려 있거나 윗사람들의 권유보다 본인의 뜻을 고집한 소신파들이 주류를 이뤘다.

    서울대 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에 합격한 이대회씨(18)는 등록하지 않고 인하대 영어교육과를 선택했다. 석사과정과 유학까지 전액장학금을 보장받는다는 조건. 학교측은 교수직 우선임용권까지 얘기했지만 “고등학교 졸업성적 가지고 교수직을 보장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게 이군의 얘기. “후회요?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디서든 열심히 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약대 약학과에 합격했지만 대전대 한의대를 선택한 이순영씨(22)는 적성 때문에 서울대를 마다한 경우. “선배들의 조언을 많이 들어봤는데, 분석적인 공부가 주종인 약대보다는 음양오행 등 고전공부를 많이 하는 한의대쪽에 끌렸어요.”

    “처음부터 서울대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대전대나 서울대나 열심히 공부해야 성공한다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고 되묻는다.

    강혁주씨(19)는 서울대 공대 산업공학과에 합격했지만 평소 소망이던 의사가 되기 위해 고려대 의대를 택했다. 그는 지난해 연세대 의대에 지원해 낙방한 뒤 공대를 다니다 의대에 가고 싶어 재수를 불사한 터였다. “기왕이면 서울대로 가라며 부모님이 서운해 하셨지만 내 선택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대부분은 ‘하고 싶은 것 하며 살겠다’는 의지들이 강하다”고 소개한다.

    서울대 공대 응용화학과에 합격했지만 한양대 의대를 택한 이모군(18)은 선택의 이유를 “서울대는 학교에서, 한양대는 내 소신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서울대 모든 과에 특차로 합격할 수 있는 친구 한명은 서울대보다 포항공대 생명공학과를 선택했다”며 “학교 시설과 연구 환경을 비교해 본 뒤 내린 결정이었다”고 소개한다.

    아직 10대 후반에 불과한 이들이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그런 생각이 평생 흔들림없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요즘 젊은 세대가 간판보다는 실리를 중시하고 남의 눈보다는 소신을 중시한다는 점만은 분명한 듯하다.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면모다.

    지난 96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서울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됐다. 논쟁의 불을 지핀 사람은 신문 칼럼에 ‘서울대 폐교론’을 써 화제가 된 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김종철씨. “서울대 인기학과를 나온 사람은 졸업 뒤 20년이 지나면 지방대 출신보다 5억원이 넘는 실질적 혜택을 누린다”는 김씨의 주장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본격적으로 서울대 지상주의에 도전한 사람은 전북대 강준만교수(신문방송학과). 그는 지난 96년 저서 ‘서울대의 나라’를 통해 서울대 망국론을 주장했다. 그는 그 책에서 “우리 사회의 간판제일주의와 학연만능주의에 뿌리를 댄 서울대 패권주의야말로 대학입시 전쟁을 격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라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서울대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도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소수 명문대 출신 엘리트들의 권력 독점현상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 지적하며 서울대 출신들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구조와 권력, 금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부패의 온상이 될 소지가 많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서울대에도 가지 못한 사람들의 콤플렉스’로 치부될 것을 우려한 탓일까. 서울대 지상주의에 대한 논란은 확산되지 않은 채 수그러들고 말았다.

    요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신화의 붕괴 조짐이 보이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속화되는 21세기에는 엘리트의 요건도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인력과 자본이 몰려드는 벤처 돌풍의 현장 테헤란밸리에서 학벌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다음 커뮤니케이션 이재웅사장은 “벤처 기업가로 성공하는 데 서울대 간판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기술력과 아이디어, 창의력만이 필요할 뿐이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요즘 ‘잘 나가는’ 벤처기업가 중에는 비서울대 출신이 적지 않다.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진 한글과컴퓨터 전하진사장이나 비트컴퓨터 조현정사장 등은 모두 인하대 출신이다. 인터넷 채팅업체인 하늘사랑 나종민사장도 인하대 수학과 87학번. ‘웹에디터’라는 홈페이지 저작도구로 유명한 나모인터랙티브 김흥준사장은 한양대 경영학과 출신이고, 국내 최대 포털서비스 업체인 다음 커뮤니케이션 이재웅사장은 연세대 전자과학대학원 출신.

    하늘사랑 김자경마케팅부차장은 “이들은 학맥이나 지연이 아니라 각자 일에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고 힘을 합친다”고 소개한다.

    첨단 정보산업계를 중심으로 채용풍속도도 변하고 있다. 학벌 전공 나이 등 틀에 박힌 조건보다는 실제 능력을 중시하는 풍토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는 것.

    지난 2월14일 ‘학력 전공 불문’을 내건 유니텔의 신입사원 모집이 마감된 결과 고졸 이하 학력자가 전체 지원자의 26%에 달했다. 이 중에는 중고등학교 재학생 20여명이 끼여 있었다. 보안업체 시큐어소프트는 해킹사이트 ‘해커스 랩’에서 13단계를 모두 통과한 해커 출신자를 정식 직원으로 발탁하기도 했다. 대학에 가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연세대 김농주취업담당관은 “이는 사회가 다양화하면서 생겨난 가치 다원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지적하며 “이제 서울대가 문제가 아니고 대학 자체가 부정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 지적한다. 아직 큰 물결은 변함이 없어도 기존 사회가치 체계에 조그만 틈새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96년 김종철위원이 ‘서울대 폐교론’을 주장했을 때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교수는 다른 신문에 ‘서울대 옹호론’을 기고하며 반론을 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도 요즘의 현상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는 입장. “일류학교의 가치를 벗어던지고 또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는다는 것은 학벌을 보완할 기제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런 현상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균열의 조짐은 교육현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 사회를 짓누르는 입시경쟁 시스템에 반발, ‘다른 길’을 택하는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 바로 이 입시경쟁 시스템의 정점에 서울대가 놓여 있음은 물론이다.

    서강대 정유성교수(교양학부)는 이를 “우리 사회를 오래 지배해왔던 학력과 성적 이데올로기가 아래로부터 깨지는 상황”이라 설명한다. 그는 “요즘 교육현장의 학교붕괴 현상도 아이들이 더 이상 ‘공부를 잘해야 성공하고 출세한다’는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을 믿지 않게 된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고 말한다.

    “어? 장관님 사장님도 서울대가 아니네요”

    DJ정부 들어 서울대 출신 국무위원들 줄어… 재계 요직도 감소세


    한국의 파워 엘리트 사회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그러나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변화의 조짐이 조금씩 눈에 보인다.

    가령 장관급 인사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의 정부’가 역대 정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문민정부 이전까지 내각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한 비중의 역대 평균은 약 60%. 이 수치는 문민정부가 출범할 때 65%까지 올라갔다. 95년 서울대총장 출신인 이수성씨가 국무총리를 맡은 직후에 이뤄진 12·20개각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전체 23명의 국무위원 중 16명을 차지, 69.9%나 됐다. 이중 법대 출신이 7명으로 전체 각료의 30%를 차지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 김종필총리서리 체제로 출범한 첫 내각에서 17명의 국무위원 가운데 서울대 출신은 절반이 안되는 8명. 대신 차관급 인사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38명 중 21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99년 5월24일 개각에 따른 ‘국민의 정부’ 제2기 내각에서는 서울대 출신이 7명으로 1기 내각보다 1명 더 줄었다.

    재계 요직에서도 서울대 출신 편중은 미미하지만 조금씩 깨지는 조짐을 보인다. 지난해 한국상장회사협 의회가 상장회사 701개사의 대표이사 현황(99년 6월30일 현재)을 집계해 97, 98년 통계와 비교한 바에 따르면 대표이사 중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34.51%, 98년 31.02%, 99년 30.82%로 해마다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연세대 출신은 97년 10.54%, 98년 11.32%, 99년 12.62%로 늘어났고 고려대 출신도 97년 10.90%, 98년 11.71%, 99년 12.20%로 증가했다. 또 한양대 출신은 6.81%, 8%, 8,07%로, 부산대 출신은 2.00%, 2.34%, 2.79%로 늘었다.

    기업 대표이사들은 어느 대학 나왔나 (단위:명, %) 연도 97년(757개사) 98년(736개사) 99년(701개사)

    구분 인원수 구성비 인원수 구성비 인원수 구성비

    서울대 380 34.51 318 31.02 298 30.82

    연세대 116 10.54 116 11.32 122 12.62

    고려대 120 10.90 120 11.71 118 12.20

    한양대 75 6.81 82 8.00 78 8.07

    성균관대 47 4.27 46 4.49 43 4.45

    부산대 22 2.00 24 2.34 27 2.79

    중앙대 30 2.72 35 3.41 24 2.48

    경희대 17 1.54 24 2.34 22 2.28

    동국대 22 2.00 28 2.73 18 1.86

    건국대 16 1.45 12 1.17 13 1.34

    영남대 34 3.09 12 1.17 13 1.34

    외국대학 64 5.81 68 6.63 57 5.89

    기타 158 14.35 140 13.65 134 13.86

    총계 1,101 100.00 1,025 100.00 967 100.00


    서울대 ‘인력은 일류, 경쟁력은 삼류’

    교육예산 독식 불구 연구업적은 미미… 교수도 서울대 출신끼리 나눠먹어


    서울대 이기주의에 대한 비판은 지난해의 ‘두뇌한국 21’(BK21) 사업 탓에 공론화된 감이 적지 않다. 7년간 1조4000억원의 예산을 ‘될 성싶은 떡잎’에 지원,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교육부의 야심찬 계획이 실상은 서울대 지원을 겨냥한 것임이 드러나면서 사립대와 지방대들의 반발이 거세진 것.

    교수들의 거리시위까지 불러왔던 BK21 사업은 결국 서울대로 갈 예산 중 일부를 지방대와 사립대로 분배하는 형태로 정리됐지만, 서울대가 대학원 육성사업(과학기술분야)을 독식함으로써 연간 사업예산 2000억원 중 950억원을 지원받게 되는 등 서울대 집중현상은 여전했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권위를 인정받고 우수학생을 독식하는 서울대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서울대의 경쟁력은 미미한 수준.

    우선 국제적 학문연구수준을 가늠하는 우수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실린 논문수로 따져본 교수들의 연구업적을 살펴보자. 지난해 10월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98년 SCI에 실린 서울대 논문은 1775편으로 전세계적으로 100위권 밖에 머물고 있다. 국내 다른 대학과 비교해도 실적은 형편없다. 서울대 교수 1인당 SCI에 실린 논문 수는 0.91편에 불과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3.01편), 포항공대(2.15편)보다 뒤졌다.

    교수사회의 폐쇄적 구조도 서울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서울대 교수 사회는 정교수가 전체 교수의 1%, 부교수가 20%, 조교수가 19%인 역피라미드 구조에 전체 교수의 94.7%(99년)가 서울대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지난해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한 미대 김민수전교수건은 서울대의 폐쇄적 학문풍토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학교측이 제시한 재임용 탈락사유는 ‘연구실적 미달’이었지만 “재임용 필요량의 4배인 8편의 논문을 심사위원회에 제출했으며, 연구실적보다는 원로교수들의 친일행각을 비판한 괘씸죄 때문에 심사에서 탈락했다”는 김교수측 주장에 대해 서울대측이 아무런 반박 자료를 제시하지 못한 것.

    역시 연구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교수 1인당 학생수도 서울대는 교수 1인당 13.7명에 이른다. 이는 포항공대 5.8명, KAIST 6.0명보다 훨씬 많은 수. 지난해 8월 서울대 자연과학대 황준묵교수와 물리학과 이기명교수가 ‘연구할 시간이 없다’며 사표를 내고 한국과학기술원 (KAIST) 부설 고등과학원으로 옮긴 일은 서울대의 열악한 연구여건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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