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현대자동차는 한 소비자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작년 12월 초 트라제XG를 인도받은 윤희성씨가 만든 안티 현대자동차 사이트(www. antihyundai.pe.kr)가 네티즌들뿐 아니라 언론의 관심을 끌면서 직접적으로 트라제XG 판매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한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은 채 “최근 트라제XG 판매고가 뚝 떨어졌다”면서 “높아진 고객들의 요구 수준을 맞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윤씨가 안티 현대자동차 사이트를 만든 것은 작년 12월16일. 사이트 개설 석 달도 안된 3월4일 현재 접속 건수 5만건을 돌파하는 등 인기 사이트로 자리잡고 있다. 네티즌들은 서비스센터의 불친절, 트라제XG 자체의 문제점 등을 담은 글을 윤씨의 사이트에 올려놓으며 회사측의 맹성을 촉구하고 있다.
작년 11월 부산에 살고 있는 신원진씨는 인터넷 전용망 두루넷에 두 번째로 가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서비스 속도는 엉망이었다. ‘빛보다 빠르다’는 광고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느려터진 서비스 속도에 갑작스런 서비스 중단 사태까지 겹치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신씨는 또 두루넷측의 가입 축하 전자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1년 전 신씨의 가입 당시 신상 정보가 그대로 적혀 있었기 때문. 가입 해지 후 1년이 지나도록 고객의 신상정보를 지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약 두루넷이 해킹당해 자신의 신상정보가 엉뚱한 사람들 손에 들어간다면…. 신씨는 등골이 오싹했다.
신씨를 더욱 불쾌하게 한 것은 작년 11월 중순 날아온 연체요금 납입 요청 편지였다. 1년 전 가입했을 때 2개월간 서비스요금 5만7950원을 연체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회사측에 강력히 항의, 미납 요금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신씨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측과 전화 접촉을 할 때마다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두루넷의 이런 문제를 네티즌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작년 12월2일 ‘안티 두루넷’ 사이트(www. pusizen.com/thrunet-x)를 오픈했다.
이 사이트 역시 3월4일 현재 8만명의 네티즌이 방문했다. 이들은 “속도도 그렇지만 소비자를 무시하는 회사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허인씨. 그는 98년 1월 4만4000원을 내고 한국후지제록스(대리점 코리아랜드)와 제록스 330ET 모델 복사기 유지보수 관리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복사기 소모품인 토너를 교체해주며 5만2000원 하는 제록스 순정품 토너값을 받아가면서도 실제로는 2만원 선에 불과한 다른 회사의 비정품을 넣어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것. 허씨는 이런 주장의 근거 자료로 그동안 교체된 비정품 토너 사진과 정품 토너비 구입 대장을 홈페이지(antifuji.org)에 공개해놓고 있다.
허씨는 “98년 11월 한국후지제록스측에 피해 보상을 요구했으나 ‘소비자와 대리점간 문제’라고 무시하는 후지제록스측 태도에 실망, 이 문제를 여론화시키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이어 “처음에는 무시하던 회사측이 인터넷을 통해 여론화된 이후에야 움직이는 것을 보고 더욱 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현재 후지제록스측에 언론을 통한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은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제5의 권력기관’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이 기존 대중매체와 크게 다른 점은 시공간을 초월해 쌍방향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인종과 국경의 인위적 장막을 허물고 네티즌들의 의견을 신속히 상호 전달해준다. 이에 따라 인터넷을 매개로 한 새로운 형태의 압력단체가 등장,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네티즌 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네티즌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
특히 기업들이 느끼는 네티즌 파워는 엄청나다. 앞에서 예로 든 윤씨나 신씨, 허씨는 개인적으로 보면 한 사람의 힘없는 소비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의 힘을 빌리면서 이들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현실세계에서는 소비자들이 거대한 조직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기업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역학관계가 역전된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소비자 단체도 사이버 공간의 위력을 인식, 이를 소비자운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3월2일 정부의 요금인가 대상인 SK텔레콤(011)의 통화료와 기본요금을 인하하기로 결정한 것도 네티즌 파워를 앞세운 시민단체의 ‘압력’이 주효했기 때문. 여기에 4·13 총선을 앞두고 2000만 이동전화 가입자들을 의식한 여당이 요금 인하를 밀어붙임으로써 당초 요금 인하에 반대하던 정통부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이동전화 요금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YMCA 주도로 녹색소비자연대 등 13개 시민단체들이 ‘이동전화요금 인하 소비자 행동 네트워크’(con.ymca. or.kr)를 발족한 것은 작년 12월16일. 이후 이들은 △온라인 서명 운동 △정통부에 항의 메일 보내기 △매일 정오에 이동전화 114로 항의전화 하기 등을 펼쳐왔다.
YMCA 나혜숙간사는 “그동안 사이버 상에서 소비자들을 상대로 상담 활동을 주로 했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부가 추가로 요금을 인하할 때까지 온라인 서명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현재 기본요금과 통화요금을 각각 50%와 40%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인하 폭은 기본요금 11.1%, 통화요금 15.4%였다.
기업들의 무책임한 서비스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 안티(anti) 사이트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반(反) 닉스 사이트(www. ihateifree.com)부터였다. 작년 10월11일 전북 정읍고 황용수교사가 청바지로 유명한 ㈜닉스의 ‘인터넷 도메인 공모 사기 의혹’에 항의하기 위해 만든 이 사이트가 네티즌 운동에 불을 지피게 된 것.
이 사이트의 등장으로 상금 3억원을 걸고 도메인을 공모,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아보려 했던 닉스측은 오히려 네티즌들의 항의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결국 네티즌의 ‘위력’에 놀란 닉스측은 한달여만인 11월23일 황교사에게 △선정 과정의 부적절한 행위 △운영상의 미숙 등을 담은 사과문을 보냈다. 상금 3억원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 맡겨 ‘북한 어린이에게 컴퓨터보내기 운동’에 사용하기로 했다. 황씨는 현재 대중매체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문제를 놓고 닉스측과 논란을 벌이고 있다.
당초 닉스측의 도메인 공모에 응한 네티즌은 12만여명. 이들은 모두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이들 네티즌은 반 닉스 운동을 계기로 안티 사이트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하게 됐던 것. 이들은 반 닉스 사이트가 개설된 지 2주후에 오픈한 반 후지 사이트에서 다시 한번 이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네티즌들이 기존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이버상에서 자신들의 힘을 모을 수 있고 소비자단체 이상의 파워를 행사할 수 있다는 데 눈을 뜬 것이다.
그 뒤 인터넷상에 안티 사이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사이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안티 두루넷을 비롯해 두루넷의 또다른 안티 사이트인 쓰루넷(my. dreamwiz.com/durunet), 드림라인 서비스 질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안티 드림라인(user.netpark .co.kr/~sila99/main. htm), 한국통신 ADSL 서비스의 문제점을 지적한 안티 코넷(go.to/ antikornet)과 한국통신 ADSL 사용자모임(sig.kornet.net/adsl), 하나로통신의 단점을 지적하는 안티 하나로(myhome.hananet.net/~dannie)와 하나X(my.netian.com/~hanax) 등이 그런 사이트들이다.
이밖에 학습지 피해에 항의하는 안티 구몬(www.antikumon.or.kr), 불법 다단계 판매회사에 의한 피해 사례를 담은 안티 피라미드(antipyramid. org), 자동차 결함이나 사고로 인한 피해에 항의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수사모 안티 중앙병원은 의료사고에 항의하는 사이트다.
물론 이런 사이트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이트 운영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안티 사이트가 표적으로 삼는 기업의 경쟁사가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사실을 일방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기아자동차 엄성룡이사는 “안티 기아 사이트에 객관적인 검증 절차 없이 주관적인 입장의 글을 올려놓아 곤혹스러운 때가 있다”고 말했다. 두루넷 이상규 고객지원실장도 “극히 일부의 네티즌이 분위기에 휩싸여 격한 말을 늘어놓으며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 회사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사이트 운영자들도 이런 부작용을 인식, 성숙된 사이버 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안티 사이트 홈페이지에 경쟁사를 광고하는 듯한 글은 아예 삭제해 버린다는 경고 문구가 기본으로 올라와 있다. 안티 현대 운영자 윤희성씨는 “일방적인 비방 내용이나 상업적 목적이 엿보이는 글은 아예 사이트에 올리지 않기 때문에 더 호응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최근 이들 안티 사이트는 단순한 항의나 불만을 쏟아내는 공간에서 이제는 직접 압력을 가하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올 1월에는 초고속 인터넷 품질 시연회를 통해 접속 속도 순위를 발표, 관련 회사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또 안티 사이트 운영자들이 네티즌들의 불만 사항을 정리해 회사측에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들어 네티즌들의 대응력이 갈수록 신속해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 올 1월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내부 비리 의혹을 제기한 안티 사이트(www.antikrnic.com)의 경우 사건 발생 하루만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등록 취소로 주인이 없어진 고가(高價) 도메인을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과정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시험등록을 했다가 반나절이 지나도록 삭제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네티즌들은 ‘내부 비리가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했고, 센터측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될 듯하자 10여개의 도메인 관련 동호인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해명과 사과문을 올렸다.
최근 안티 사이트들 사이에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의미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 반 닉스 사이트 운영진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사이버 행동 네트워크(n119.org)가 대표적이다. 이 네트워크 임시 운영진이기도 한 반 후지 사이트 운영자 허인씨는 “반 닉스 사이트가 초기에 내걸었던 목표를 거의 달성해 가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사이트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사이버 행동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네트워크는 △네티즌 권리의 신장과 보호 △미래 기업활동의 주요 공간이 될 사이버상에서 소비자의 권리 보호 △사이버 마케팅 활동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 감시 등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이와 함께 이 네트워크 운영진은 다른 안티 사이트에 대한 상담 및 자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처럼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커가는 데 대해 당연한 추세라는 반응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기업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 기업 홍보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수렴해가다 보면 회사도 함께 발전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아직도 상당수의 기업들이 과거 개발연대의 공급자 위주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네티즌들은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만을 조금만 털어놓아도 이를 참지 못하고 삭제해 버리거나 아예 게시판을 폐쇄해 버리는 경우마저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티 현대 사이트가 네티즌의 관심을 끈 것은 현대자동차가 초기에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팔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객의 건전한 요구를 무시하다 큰 코 다친 격이라는 설명. 이 관계자는 이어 “현대자동차의 이런 태도는 기이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국내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고 콧대를 세운 현대자동차의 ‘오만’ 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대우자동차 홈페이지는 돋보인다. 대우자동차는 96년 11월 홈페이지를 개설할 때부터 자유게시판을 마련하고 누구나 접근해서 말 그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게시판에 올라오는 고객들의 불만 내용에 대해 친절히 답하고 있다.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안티 사이트를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객만족’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시민파워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이제 네티즌으로부터 외면받는 기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씨가 안티 현대자동차 사이트를 만든 것은 작년 12월16일. 사이트 개설 석 달도 안된 3월4일 현재 접속 건수 5만건을 돌파하는 등 인기 사이트로 자리잡고 있다. 네티즌들은 서비스센터의 불친절, 트라제XG 자체의 문제점 등을 담은 글을 윤씨의 사이트에 올려놓으며 회사측의 맹성을 촉구하고 있다.
작년 11월 부산에 살고 있는 신원진씨는 인터넷 전용망 두루넷에 두 번째로 가입했다. 그러나 여전히 서비스 속도는 엉망이었다. ‘빛보다 빠르다’는 광고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느려터진 서비스 속도에 갑작스런 서비스 중단 사태까지 겹치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신씨는 또 두루넷측의 가입 축하 전자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1년 전 신씨의 가입 당시 신상 정보가 그대로 적혀 있었기 때문. 가입 해지 후 1년이 지나도록 고객의 신상정보를 지우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약 두루넷이 해킹당해 자신의 신상정보가 엉뚱한 사람들 손에 들어간다면…. 신씨는 등골이 오싹했다.
신씨를 더욱 불쾌하게 한 것은 작년 11월 중순 날아온 연체요금 납입 요청 편지였다. 1년 전 가입했을 때 2개월간 서비스요금 5만7950원을 연체했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회사측에 강력히 항의, 미납 요금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신씨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측과 전화 접촉을 할 때마다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두루넷의 이런 문제를 네티즌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작년 12월2일 ‘안티 두루넷’ 사이트(www. pusizen.com/thrunet-x)를 오픈했다.
이 사이트 역시 3월4일 현재 8만명의 네티즌이 방문했다. 이들은 “속도도 그렇지만 소비자를 무시하는 회사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 서초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허인씨. 그는 98년 1월 4만4000원을 내고 한국후지제록스(대리점 코리아랜드)와 제록스 330ET 모델 복사기 유지보수 관리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복사기 소모품인 토너를 교체해주며 5만2000원 하는 제록스 순정품 토너값을 받아가면서도 실제로는 2만원 선에 불과한 다른 회사의 비정품을 넣어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것. 허씨는 이런 주장의 근거 자료로 그동안 교체된 비정품 토너 사진과 정품 토너비 구입 대장을 홈페이지(antifuji.org)에 공개해놓고 있다.
허씨는 “98년 11월 한국후지제록스측에 피해 보상을 요구했으나 ‘소비자와 대리점간 문제’라고 무시하는 후지제록스측 태도에 실망, 이 문제를 여론화시키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허씨는 이어 “처음에는 무시하던 회사측이 인터넷을 통해 여론화된 이후에야 움직이는 것을 보고 더욱 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허씨는 현재 후지제록스측에 언론을 통한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 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인터넷은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제5의 권력기관’으로도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이 기존 대중매체와 크게 다른 점은 시공간을 초월해 쌍방향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인종과 국경의 인위적 장막을 허물고 네티즌들의 의견을 신속히 상호 전달해준다. 이에 따라 인터넷을 매개로 한 새로운 형태의 압력단체가 등장,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네티즌 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네티즌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
특히 기업들이 느끼는 네티즌 파워는 엄청나다. 앞에서 예로 든 윤씨나 신씨, 허씨는 개인적으로 보면 한 사람의 힘없는 소비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의 힘을 빌리면서 이들의 파워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현실세계에서는 소비자들이 거대한 조직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기업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런 역학관계가 역전된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소비자 단체도 사이버 공간의 위력을 인식, 이를 소비자운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3월2일 정부의 요금인가 대상인 SK텔레콤(011)의 통화료와 기본요금을 인하하기로 결정한 것도 네티즌 파워를 앞세운 시민단체의 ‘압력’이 주효했기 때문. 여기에 4·13 총선을 앞두고 2000만 이동전화 가입자들을 의식한 여당이 요금 인하를 밀어붙임으로써 당초 요금 인하에 반대하던 정통부가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민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이동전화 요금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YMCA 주도로 녹색소비자연대 등 13개 시민단체들이 ‘이동전화요금 인하 소비자 행동 네트워크’(con.ymca. or.kr)를 발족한 것은 작년 12월16일. 이후 이들은 △온라인 서명 운동 △정통부에 항의 메일 보내기 △매일 정오에 이동전화 114로 항의전화 하기 등을 펼쳐왔다.
YMCA 나혜숙간사는 “그동안 사이버 상에서 소비자들을 상대로 상담 활동을 주로 했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정부가 추가로 요금을 인하할 때까지 온라인 서명운동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들은 현재 기본요금과 통화요금을 각각 50%와 40%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인하 폭은 기본요금 11.1%, 통화요금 15.4%였다.
기업들의 무책임한 서비스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대항 수단으로 안티(anti) 사이트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반(反) 닉스 사이트(www. ihateifree.com)부터였다. 작년 10월11일 전북 정읍고 황용수교사가 청바지로 유명한 ㈜닉스의 ‘인터넷 도메인 공모 사기 의혹’에 항의하기 위해 만든 이 사이트가 네티즌 운동에 불을 지피게 된 것.
이 사이트의 등장으로 상금 3억원을 걸고 도메인을 공모,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아보려 했던 닉스측은 오히려 네티즌들의 항의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결국 네티즌의 ‘위력’에 놀란 닉스측은 한달여만인 11월23일 황교사에게 △선정 과정의 부적절한 행위 △운영상의 미숙 등을 담은 사과문을 보냈다. 상금 3억원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에 맡겨 ‘북한 어린이에게 컴퓨터보내기 운동’에 사용하기로 했다. 황씨는 현재 대중매체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문제를 놓고 닉스측과 논란을 벌이고 있다.
당초 닉스측의 도메인 공모에 응한 네티즌은 12만여명. 이들은 모두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이들 네티즌은 반 닉스 운동을 계기로 안티 사이트의 가능성을 새삼 확인하게 됐던 것. 이들은 반 닉스 사이트가 개설된 지 2주후에 오픈한 반 후지 사이트에서 다시 한번 이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네티즌들이 기존 언론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이버상에서 자신들의 힘을 모을 수 있고 소비자단체 이상의 파워를 행사할 수 있다는 데 눈을 뜬 것이다.
그 뒤 인터넷상에 안티 사이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사이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안티 두루넷을 비롯해 두루넷의 또다른 안티 사이트인 쓰루넷(my. dreamwiz.com/durunet), 드림라인 서비스 질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안티 드림라인(user.netpark .co.kr/~sila99/main. htm), 한국통신 ADSL 서비스의 문제점을 지적한 안티 코넷(go.to/ antikornet)과 한국통신 ADSL 사용자모임(sig.kornet.net/adsl), 하나로통신의 단점을 지적하는 안티 하나로(myhome.hananet.net/~dannie)와 하나X(my.netian.com/~hanax) 등이 그런 사이트들이다.
이밖에 학습지 피해에 항의하는 안티 구몬(www.antikumon.or.kr), 불법 다단계 판매회사에 의한 피해 사례를 담은 안티 피라미드(antipyramid. org), 자동차 결함이나 사고로 인한 피해에 항의하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수사모 안티 중앙병원은 의료사고에 항의하는 사이트다.
물론 이런 사이트들이라고 해서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이트 운영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안티 사이트가 표적으로 삼는 기업의 경쟁사가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또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사실을 일방적으로 올리는 경우도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기아자동차 엄성룡이사는 “안티 기아 사이트에 객관적인 검증 절차 없이 주관적인 입장의 글을 올려놓아 곤혹스러운 때가 있다”고 말했다. 두루넷 이상규 고객지원실장도 “극히 일부의 네티즌이 분위기에 휩싸여 격한 말을 늘어놓으며 일방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 회사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사이트 운영자들도 이런 부작용을 인식, 성숙된 사이버 운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안티 사이트 홈페이지에 경쟁사를 광고하는 듯한 글은 아예 삭제해 버린다는 경고 문구가 기본으로 올라와 있다. 안티 현대 운영자 윤희성씨는 “일방적인 비방 내용이나 상업적 목적이 엿보이는 글은 아예 사이트에 올리지 않기 때문에 더 호응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최근 이들 안티 사이트는 단순한 항의나 불만을 쏟아내는 공간에서 이제는 직접 압력을 가하는 공간으로 성장했다. 올 1월에는 초고속 인터넷 품질 시연회를 통해 접속 속도 순위를 발표, 관련 회사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또 안티 사이트 운영자들이 네티즌들의 불만 사항을 정리해 회사측에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최근 들어 네티즌들의 대응력이 갈수록 신속해지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 올 1월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내부 비리 의혹을 제기한 안티 사이트(www.antikrnic.com)의 경우 사건 발생 하루만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등록 취소로 주인이 없어진 고가(高價) 도메인을 선착순으로 나눠주는 과정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이름으로 시험등록을 했다가 반나절이 지나도록 삭제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네티즌들은 ‘내부 비리가 아니냐’는 의견을 제기했고, 센터측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비화될 듯하자 10여개의 도메인 관련 동호인 게시판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해명과 사과문을 올렸다.
최근 안티 사이트들 사이에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의미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 반 닉스 사이트 운영진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사이버 행동 네트워크(n119.org)가 대표적이다. 이 네트워크 임시 운영진이기도 한 반 후지 사이트 운영자 허인씨는 “반 닉스 사이트가 초기에 내걸었던 목표를 거의 달성해 가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사이트를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사이버 행동 네트워크를 결성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네트워크는 △네티즌 권리의 신장과 보호 △미래 기업활동의 주요 공간이 될 사이버상에서 소비자의 권리 보호 △사이버 마케팅 활동에 대한 투명성과 공정성 감시 등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이와 함께 이 네트워크 운영진은 다른 안티 사이트에 대한 상담 및 자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처럼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커가는 데 대해 당연한 추세라는 반응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기업들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 또 기업 홍보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의 불만을 수렴해가다 보면 회사도 함께 발전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르다. 아직도 상당수의 기업들이 과거 개발연대의 공급자 위주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네티즌들은 회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그 회사 제품에 대한 불만을 조금만 털어놓아도 이를 참지 못하고 삭제해 버리거나 아예 게시판을 폐쇄해 버리는 경우마저 있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안티 현대 사이트가 네티즌의 관심을 끈 것은 현대자동차가 초기에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팔기만 하면 그만’이었던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객의 건전한 요구를 무시하다 큰 코 다친 격이라는 설명. 이 관계자는 이어 “현대자동차의 이런 태도는 기이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국내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고 콧대를 세운 현대자동차의 ‘오만’ 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점에서 대우자동차 홈페이지는 돋보인다. 대우자동차는 96년 11월 홈페이지를 개설할 때부터 자유게시판을 마련하고 누구나 접근해서 말 그대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게시판에 올라오는 고객들의 불만 내용에 대해 친절히 답하고 있다.
봇물처럼 쏟아져나오는 안티 사이트를 잠재울 수 있는 방안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객만족’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시민파워는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이제 네티즌으로부터 외면받는 기업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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