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미국에서 개봉된 ‘아메리칸 뷰티’는 미국 언론으로부터 ‘특별한’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아닌 ‘아메리칸 뷰티’가 미국에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아마도 이 영화가 특별히 미국적인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 등장하는 빨간색 파이어버드처럼.
물론 ‘아메리칸 뷰티’는 이 멋진 스포츠카처럼 자기 과시적인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 스포츠카가 남긴 어지러운 바퀴 자국을 보는 듯한 영화다. 단지 우리는 사상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리는 미국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물질적 풍요가 모든 것을 파괴한 뒤 일상의 행복(그것이 바로 ‘아메리칸 뷰티’이다)을 좇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그들만큼 열렬히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다. 20년 전 미국 중산층의 위기를 그린 영화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아메리칸 뷰티’는 그 20년 후 쯤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비디오의 거친 화면에 비춰진 사춘기 소녀다. “난 반듯한 아빠를 원해. 딸의 친구나 넘겨다보는 그런 아빠 말고.” 그리고 42세 된 가장 레스터의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그의 가정은 겉으로 보기엔 말짱하다.
그러나 집은 박살난 지 오래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부인은 바람났고 아이들은 어른과 장사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레스터가 딸의 친구에게 반하면서 파국의 속도는 빨라진다.
‘아메리칸 뷰티’의 매력은 브로드웨이 연출가 출신의 샘 멘데스가 보여주는 완벽한 이야기구조다.
느슨하고 코믹하게 시작된 이야기 갈래들이 중반 이후 하나의 고리로 탄탄하게 얽혀든다. 그래서 일일 드라마처럼 시작한 ‘아메리칸 뷰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끝난다. 장미꽃잎이 날리는 레스터의 환상도 브로드웨이식 소품 사용답다.
일찌감치 ‘벼랑 끝에 걸린 사나이’란 작은 영화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케빈 스페이시(레스터 역)에게 아카데미 수상은 시간문제일 뿐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물로 늙은 40대 여성 캐롤린역을 맡은 아네트 베닝의 변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다.
물론 ‘아메리칸 뷰티’는 이 멋진 스포츠카처럼 자기 과시적인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이 스포츠카가 남긴 어지러운 바퀴 자국을 보는 듯한 영화다. 단지 우리는 사상 최고의 경제 호황을 누리는 미국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물질적 풍요가 모든 것을 파괴한 뒤 일상의 행복(그것이 바로 ‘아메리칸 뷰티’이다)을 좇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그들만큼 열렬히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다. 20년 전 미국 중산층의 위기를 그린 영화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아메리칸 뷰티’는 그 20년 후 쯤이라고 할 만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비디오의 거친 화면에 비춰진 사춘기 소녀다. “난 반듯한 아빠를 원해. 딸의 친구나 넘겨다보는 그런 아빠 말고.” 그리고 42세 된 가장 레스터의 내레이션이 시작된다. 그의 가정은 겉으로 보기엔 말짱하다.
그러나 집은 박살난 지 오래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부인은 바람났고 아이들은 어른과 장사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레스터가 딸의 친구에게 반하면서 파국의 속도는 빨라진다.
‘아메리칸 뷰티’의 매력은 브로드웨이 연출가 출신의 샘 멘데스가 보여주는 완벽한 이야기구조다.
느슨하고 코믹하게 시작된 이야기 갈래들이 중반 이후 하나의 고리로 탄탄하게 얽혀든다. 그래서 일일 드라마처럼 시작한 ‘아메리칸 뷰티’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으로 끝난다. 장미꽃잎이 날리는 레스터의 환상도 브로드웨이식 소품 사용답다.
일찌감치 ‘벼랑 끝에 걸린 사나이’란 작은 영화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던 케빈 스페이시(레스터 역)에게 아카데미 수상은 시간문제일 뿐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물로 늙은 40대 여성 캐롤린역을 맡은 아네트 베닝의 변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