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 통과 환영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경영자에겐 방어권이 없다.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고, 파업 시 대체 인력도 투입할 수 없다. 안 그래도 미국 관세 이슈로 해외 이전을 검토하는 업체가 많았는데, 이번 법 개정으로 불씨가 당겨졌다고 본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 시행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국내 자동차부품업계 관계자들이 쏟아낸 하소연이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업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많게는 수천 개 협력업체가 산업 생태계를 이룬다. 노란봉투법 통과로 노사관계는 물론, 국내 경제·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취재에 응한 제조업체 경영진 등 관계자들은 “정부와 노조 눈치가 보여 언론에 얘기하는 것도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기자에게 “새 노조법에 따른 ‘사용자’ 정의는 구체적으로 뭔가” “사업 영역을 확대하거나 사내 조직을 개편했다가 파업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건가”라고 역으로 묻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노란봉투법 시행 6개월을 앞두고 노동계의 집단행동이 현실화되면서 재계 긴장감은 커지고 있다. 현대제철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조는 8월 27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현대제철 경영진을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고, 같은 날 네이버 6개 자회사 노조도 본사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노란봉투법 ‘사용자’는 누구인가”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사용자 범위 확대’(노조법 제2조 2호)와 ‘노동쟁의 요건 완화’(제2조 5호),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 제한’(제3조 1항)이다. 각각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아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사용자로서 단체교섭 의무를 부과하고 △기업의 사업 및 조직 개편 등 근로조건 변화를 쟁의 대상에 포함하며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맞서는 과정에서 노조가 끼친 손해는 배상 책임을 지우지 않는 게 뼈대다.기업들의 고심이 큰 이유는 노란봉투법에 ‘디테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령 ‘사용자’ 개념이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됐는데, 여기서 ‘실질적’ ‘구체적’ 지위라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세부 규정이 없다. 그렇다고 구체적 사항을 대통령령 등 하위법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하는 내용도 없다. 노란봉투법 시행 후 노사 교섭의 기본 원칙인 ‘창구 단일화’를 어떻게 할지도 물음표가 붙는다.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가 교섭 창구를 단일화해야 하는지, 혹은 하청 노조끼리 창구를 합치면 되는지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곳의 협력업체와 거래하는 대기업 입장에선 자칫 노조와의 교섭 자체는 물론, 교섭 창구를 정하는 것부터 부담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자동차, 조선 등 업계에선 “지금도 노조와의 교섭에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데, 협력업체 노조까지 저마다 교섭을 요구하고 나서면 기업으로선 1년 내내 교섭만 해야 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선 노란봉투법이 기존 다른 법률과 상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노란봉투법에 따라 원청 기업이 하청기업 노조와 직접 교섭해 구체적인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게 된 점이 대표적이다. 자칫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이 금지하는 하청기업에 대한 ‘부당한 경영 간섭’이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따른 ‘불법 파견’ 행위가 될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노동사건 수임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각종 우려는 결국 실제 노사 갈등이 발생하고, 이것이 대법원까지 가서 판례가 쌓여야 최종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에 통과된 노조법에 따르면 원청부터 모기업, 고객사까지 쉽게 말해 힘센 물주(物主)는 모두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사용자로 규정될 수 있다”며 “사용자 개념은 물론, 교섭 창구 단일화 방식이나 기존 법률과의 상충 우려를 어떻게 해소할지 모두 모호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사용자가 교섭 의무를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모호한 내용의 노조법 개정은 죄형법정주의에 저촉되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제철 하청업체 직원들로 구성된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8월 27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 3명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뉴시스
“기존 법률과 상충 우려”
노란봉투법 통과로 외국계 기업과 자본의 한국 이탈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노란봉투법에 대해 각각 “한국의 아시아 지역 허브로서 위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모호한 사용자 정의는 기업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 활동을 위축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가 최근 외국인 투자기업 100곳의 한국지사 대표와 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 35.6%가 “노란봉투법 통과로 한국 내 투자 축소나 지사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의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노조법 개정에 따른 규제의 ‘예측 불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전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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