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은행권 최대 화두는 디지털 혁신이다.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사활이 걸린 핵심 과제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하나·KB국민·신한·우리 등 4대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가 일제히 신년사에서 디지털 금융 활성화를 강조했을 정도다. 한국금융연구원이 1월 22일 발표한 정기간행물 ‘금융브리프’의 ‘2022년 은행산업 전망 및 주요 경영과제’ 보고서에도 디지털 전환은 2022년 주요 경영 과제로 제시돼 있다. 이 보고서는 올해 은행과 은행, 은행과 비은행권, 은행과 비금융권 간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부터 마이데이터(MyData: 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자와 정보 제공 기관 간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를 통한 데이터 제공이 의무화되면서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게 큰 이유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를 대비한 은행권의 핵심 과제로 △플랫폼을 통한 금융서비스 제공 역량 강화 △AI 도입 등 프로세스 자동화를 토대로 한 효율성 제고 △디지털자산(암호화폐와 게임 재화 등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된 모든 자산) 시대 대비를 제시했다.
‘디지털 퍼스트’에 전력투구하는 하나은행
최근 은행권에서는 하나은행의 적극적인 디지털 금융 전략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하나은행은 스마트 금융, 핀테크 활성화 등 새로운 금융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해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 뱅킹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4년 태블릿PC 기반의 방문영업 시스템인 ‘태블릿 브랜치(Tablet Branch)’ 서비스, 2016년 2월부터는 비대면 실명 확인 서비스를 시행했다. 2017년에는 모든 영업점에서 온라인 가상채널인 ‘모바일 브랜치’와 AI 금융서비스 ‘HAI(하이)’를 제공하며 비대면 스마트 금융을 이끌었다. 현재 하나은행의 비대면 거래는 예적금 등 수신상품 가입, 대출상품, 외화송금 등 은행 업무 대부분이 가능하도록 구축돼 있다. 지난해 9월 말 개인 고객 기준으로 예적금 중 디지털 채널 판매 비중은 58.1%, 신용대출 중 디지털 채널 취급 비중은 92.2%에 이른다. 근래에는 생활 밀접 서비스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최근 하나은행이 공들이는 디지털 금융 분야는 ‘자산관리’다. 은행권은 그간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 비용을 제외한 이자 수익)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 탈피하고자 비(非)이자이익(신탁, 방카슈랑스(은행 판매 보험), 펀드, 카드 등을 통한 수수료와 주식·채권 투자로 얻은 수익) 다각화에 매진해왔다. 새로운 수익원으로 펀드·신탁 같은 투자상품 중심의 자산관리가 주목받으며,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은행권에서는 하나은행이 10년 넘게 쌓아온 디지털 금융 노하우를 디지털 자산관리에 똑똑하게 쏟아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비자의 시간과 노력을 아껴주는 편리미엄(편리함+프리미엄), 참여형 플랫폼, 데이터 기반의 자산관리, 현재부터 미래까지 펀드투자 여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기능을 접목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하나원큐에 접속하면 AI가 쉽고 간단하게 투자 목적에 맞는 펀드 포트폴리오를 추천하고, 소소한 잔돈으로 재미있게 소액 투자 체험도 가능하다. AI 알고리즘이 적용된 입출금 거래 분석도 해볼 수 있다. 연령별, 성별 소비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활용해 특정 소비 대신 투자했을 경우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 값을 제공해 투자 흥미를 키워준다.
하나은행의 쉽고 재미있는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12월 하나은행 금융소비자보호섹션이 주관한 ‘소비자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하나은행 펀드 앱은 다른 은행의 앱과 비교해 전반적인 만족도, 펀드 가입 시 이용 의향, 메뉴 이용 편리성, 펀드 가입 절차 편의성 등 다양한 항목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하나은행은 디지털 자산관리 연구에도 열심이다. 2월 7일에는 디지털 자산관리 트렌드를 분석하고 온라인 전용 펀드 전망을 담은 ‘2022 대한민국 디지털 자산관리’ 보고서를 발간했다.
하나은행의 디지털 금융을 포함한 혁신적인 활동상은 지난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글로벌 금융 전문지 ‘더 뱅커’가 온라인으로 개최한 ‘올해의 은행상’ 시상식에서 ‘2021 대한민국 최우수 은행상’을 수상한 것이다. 데이터 중심의 혁신적이고 지속적인 금융서비스 개발 노력과 더불어 국내외에서 이용할 수 있는 해외 송금 특화 앱 ‘Hana EZ’, GLN(Global loyalty Network: 글로벌 지급 결제망) 서비스의 독창성이 높게 평가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적시성 있는 금융 지원과 포용 금융 실천, 선제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금융 활동도 주목받았다. 금융계의 오스카상으로 일컬어지는 올해의 은행상은 전 세계 149개국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심사가 이뤄진다.
FUN한 펀드투자에 집중
하나은행은 디지털 자산관리 분야 중 ‘온라인 전용 펀드’(온라인 펀드)에 집중하고 있다. 온라인 펀드는 지난해 말 잔액이 23조7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2016년 비대면 계좌 개설이 허용되고, 2017년 국내 금융사의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투자자가 입력한 투자 성향 정보를 토대로 알고리즘을 활용해 개인의 자산 운용을 자문하고 관리해주는 프로그램)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특히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안착된 비대면 문화가 온라인 펀드 확장에 기여했다. 4대 은행 펀드 판매 건수 기준으로 온라인 전환이 급격히 진행 중이며, 최근 개설된 펀드의 80% 이상이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업계는 2025년 온라인 펀드 잔액이 100조 원을 돌파하고, 전체 공모펀드 규모 대비 온라인 펀드 비율이 약 3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하나은행의 온라인 펀드 가입률 역시 최근 3년간 괄목할 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은행 펀드 신규 가입 중 온라인 펀드 비중은 2019년 37%에서 2020년 68%, 지난해 93%로 확연히 늘었다. 판매금액을 기준으로 보면 2019년 5.9%에서 지난해 11월 46.1%로 40% 넘게 증가했다. 누적 잔액 기준으로는 2019년 5.8%에서 지난해 11월 23.9%로, 18% 이상 늘어났다.
쉽고 재미있는 서비스가 가득한 디지털 펀드 플랫폼 ‘펀샵’. [사진 제공 · 하나은행]
쓸 때마다 남는 잔돈(체크카드를 사용하고 남은 잔돈 투자), 내 통장에 노는 잔돈(통장 잔액 중 잔돈 투자), 달성하고 쌓는 잔돈(미션 수행 후 남은 잔돈 투자)으로 재미있게 소액 투자를 하는 ‘잔돈투자’도 인기다. 카드 결제와 통장 거래에 기반한 소액투자로, 선택한 미션을 달성하는 과정과 투자를 결합해 투자(미션 달성) 욕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달성하고 쌓는 잔돈’은 ‘셀프 칭찬하기’처럼 간단한 미션을 달성하면 잔돈이 적립되고, 이를 투자에 활용할 수 있어 참여도가 높은 편이다.
‘초개인화’ 트렌드 예의주시
지난해 11월에는 은행권 최초로 ‘퇴직연금 ETF’를 출시했다.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할 수 있는데, 그동안은 증권사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하나원큐를 통해 퇴직연금 자산을 ETF, 예금, 펀드 등으로 손쉽게 리밸런싱(자산 재분배)할 수 있다. 영업점 전화 상담, 대면 컨설팅도 병행해 편의성을 높였다.트렌드를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하나은행은 디지털 자산관리의 해답을 트렌드에서 찾고 있다. ‘2022 대한민국 디지털 자산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디지털 자산관리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초개인화’다. 개인 맞춤화를 통해 고객에게 최적의 자문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나 올해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시행되면서 초개인화 트렌드는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자산관리 시장의 주요 고객층은 2개 축으로 나뉜다. 우선 금융상품을 적극적으로 공부하며 ‘스마트 개미’로 불리는 MZ세대다. 여기에 일정 수준 자산을 보유한 일명 클래식(PB·영업점 등 대면 채널 위주로 금융 거래를 해오다 최근 디지털 채널 경험 및 활용이 증가) 세대가 또 다른 한 축을 이룬다. 이 때문에 디지털 자산관리는 두 집단을 아우르는 서비스가 혼합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하나은행은 이런 시장 특성을 적극 반영해 소비자 성향에 맞춘 폭넓은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서 설명한 펀샵 서비스 가운데 ‘코기맨의 펀드교실’ ‘잔돈투자’ 등은 MZ세대를, ‘하이로보’ ‘버킷리스트’는 클래식 세대를 주로 겨냥한다. ‘펀드신호등’과 ‘DIY포트폴리오’는 두 세대 모두에게 적합한 서비스다.
하나원큐에서 ‘내자산연구소’에 접속하면 소비자 중심의 자산관리 및 지출 분석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이 서비스에는 은행 내부 빅데이터 전문 조직인 ‘AI Lab’이 자체 개발한 AI 알고리즘이 적용됐다. 정확도와 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소비자의 하나은행 거래뿐 아니라 오픈뱅킹 및 소비 성향 데이터까지 분석해 정보를 알려준다. 금융자산을 연결한 경우에는 내 펀드/주식 수익률 확인, 대출 관리, 카드 결제금액 확인, 보험 및 연금 챙기기, 부동산 시세 보기 같은 자산관리 정보를 쉽고 간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그룹 통합 마이데이터 서비스 브랜드 ‘하나 합’을 론칭했다. 은행과 증권, 카드 등 다양하게 흩어진 소비자의 금융 데이터를 하나로 ‘합’해 맞춤형 최적화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기존 소수의 고액 자산가에게만 제공되던 자산관리 및 외환 투자 전문 컨설팅을 디지털을 통해 모든 소비자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하나은행 디지털 자산관리 관계자는 “향후 ‘펀샵’과 ‘하나 합’을 결합해 한층 더 풍성하고 편리한 디지털 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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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마블’에 매료된 MZ세대
하나은행은 디지털 자산관리 시장의 핵심 고객으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 유입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경험을 중시하는 이들을 겨냥한 모의투자 게임 서비스 ‘투자의 마블’이 대표적이다. 게임업체 넷마블과 손잡고 선보인 이 서비스는 하나원큐 앱에서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올해 1월 20일까지 석 달간 오픈됐다. 게임 방식은 우선 넷마블 게임 ‘모두의마블’ 형태의 보드에 금융상품을 배열하고 주사위를 굴려 도착하는 칸에서 투자 여부 및 투자금액을 결정한다. 투자한 상품의 과거 2년 실제 데이터에 기반한 투자수익에 따라 자산의 증감을 경험해볼 수 있다. 보드는 주식, 채권, 주요 지수, 해외주식 등 11가지 대표적인 금융 투자상품 외에 OX 금융퀴즈, 랜덤카드, 금융위기, 하나원큐(원하는 칸으로 이동 가능)로 구성돼 흥미를 더한다.투자의 마블은 오픈 기간 총 140만 회 플레이됐고, 누적 이용자 수는 35만 명에 달했다. 게임 인기가 한창 치솟던 지난해 12월 중순에는 하루 플레이 건수가 약 3만 건에 도달했다. 유튜브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마케팅을 통해 160만 명이 투자의 마블 홈페이지를 방문해 하나은행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시즌2도 선보일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Allied Market Research)’는 글로벌 오픈뱅킹 산업이 2018년 72억9000만 달러(약 8조6969억 원)에서 2026년 431억5000만 달러(약 51조 4779억 원)로 커지며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디지털 금융 움직임이 활발해지면 디지털 경쟁 역시 한층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은행들이 디지털 금융의 최종 승자가 되려면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까.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올해 마이데이터 사업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금융 플랫폼 시대가 됐다”며 “고객 로열티 확보를 위해서는 단순한 서비스 연결이 아닌, 소비자 니즈를 융합한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게임, 헬스케어, 부동산 등 소비자의 관심 분야를 한발 앞서 파악한 뒤 이를 금융 플랫폼에 융합한다면 충성 고객 확보는 물론, 글로벌 경쟁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강현숙 기자
life77@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강현숙 기자입니다. 재계, 산업, 생활경제, 부동산, 생활문화 트렌드를 두루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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