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독재 ‘인민공화국’
1949년 3월 당시 김일성(오른쪽에서 두 번째 중절모 쓴 인물) 북한 수상이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과 회담하고자 모스크바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동아DB]
광복회 회장이 최근 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해방 이후 들어온 소련군은 해방군, 미군은 점령군”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는 당시 소련군 포고문은 “조선인이 독립과 자유를 되찾은 것을 참 축하드린다. 조선 해방 만세”라고 돼 있던 반면, 미군(맥아더) 포고문은 “우리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다. 앞으로 조선인은 내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내 말을 안 들으면 군법회의에 넘겨 처벌하겠다”는 것이 뼈대라고 말했다. 소련군 포고문은 존댓말로 번역돼 있고 미군 포고문은 명령체로 돼 있다. 미군은 점령군 이미지를, 소련군은 해방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는 ‘식민지 총독’ ‘38선 분단 집행관’으로 서슬 퍼렇게 보인다.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명찰을 달고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북한 주민을 회유했다. 소련군이 양민을 약탈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만행이 빈발하자 여기저기서 반발했다. 소련군 포고문은 이런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낸 것이었다.
1945년 9월 9일자 맥아더 사령관 명의로 된 포고문 제3조는 이렇다. “All persons will obey promptly all my orders and orders issued under my authority. Acts of resistance to the occupying forces or any acts which may disturb public peace and safety will be punished severely.” 해당 내용은 당시 한반도에 “住民은 本官 及 本官의 權限下에서 發布한 命令에 卽速히 服從할 事 占領軍에 對하야 反抗行動을 하거나 또는 秩序保安을 攪亂하는 行爲를 하는 者는 容恕업시 嚴罰에 處함”이라고 번역됐다. 이를 현시점의 우리말로 옮기면 “주민은 나의 명령 및 나의 권한 하에서 발포된 모든 명령에 즉각 복종해야 한다. 점령군에 대한 반항 행위 혹은 공공 안녕을 교란하는 행위는 엄하게 벌한다”는 것이다.
‘will’은 격식 명령체 조동사로 촉구·설득·권유(~합시다) 요소가 강하다. ‘obey’를 ‘준수하다’로 번역했다면 본래 뜻을 더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훌륭한 번역은 원문(source language)과 번역어(target language) 간 조화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타 문화체계를 자문화체계로 적절하게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종합대를 ‘multiversity’가 아닌, ‘university’라고 옮긴다.
“무슨 수 써서라도 막아라”
김원웅 광복회 회장. [동아DB]
‘해방군’이라던 소련군의 지도로 북한은 남침을 했다. 1950년 6월 24일 밤 11시 20분(우리 시각 25일 낮 1시 20분) 당시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북한군이 남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했다”고 보고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즉각 “그 개자식들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고 응답했다. 미국의 즉각 개입이 이뤄졌다. 미 해군과 공군을 6·25전쟁에 투입하는 결정이 전쟁이 일어나고 이틀 만에 이뤄졌다. 6월 30일 트루먼 대통령은 지상 병력 투입도 결정했다. 클레멘트 애틀리 당시 영국 총리(노동당)는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루먼 대통령을 압박했다. 한국을 포기하고 미군을 철수시켜 유럽 방어에 투입하자는 제안이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이렇듯, 사실은 소련군이 점령군, 미군이 해방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