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코어 록밴드 ‘나인씬’의 공연 모습. 가운데 보컬이 배 코치다. [나인씬 페이스북]
한때 운동을 좀 했던 이력이 있다. 허구한 날 밤낮을 바꿔 살고 낮은 잠으로, 밤은 술로 채우던 때다. 니코틴과 타르, 일산화탄소를 포함한 4700가지의 유해성분을 산소처럼 마시던 때다. 한심하기 짝이 없고 장래까지 불투명한 아들을 어머니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꽤 큰 헬스장에 강제로 등록시켰다.
시간대도 무려 오전 9시. 그 시간 피트니스센터에는 내 또래 남자가 거의 없다. 아침 9시는 상쾌한 사무실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로의 일과를 교환하는 시간 아닌가. 그런 멀쩡한 삶과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그 시간대의 유일한 젊은 남자 회원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남편 출근시키고 자식 학교 보낸 후 체력 단련을 위해 헬스장을 찾은 아주머니였다. 따라서 즐비한 러닝머신 사이에서 나는 청일점이었다.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다. 사교성을 감추고 과묵하게 운동만 한 뒤 사라지는 생활이 시작됐다. 물론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웠다. 바벨, 덤벨 근처에도 가지 않고 기초적인 기구만 깔짝깔짝거리다 러닝머신에 올라가 ‘무한도전’을 보며 시속 4km 정도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30분가량 걷다 퇴장하기 일쑤였으니까.
남다른 헬스코치와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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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가 20cm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회원님, 혹시 보드 타세요?” “아니요, 안 타는데요.” “그럼 혹시 펑크나 하드코어 좋아하세요?” “헉, 어떻게 알았어요?” 추측의 근거는 간단했다. 스니커도, 러닝화도 아닌 보드화를 신고 오는 품새가 범상치 않았으며, 허리에 매단 체인 또한 짐작의 선명도를 높였다. 게다가 어느 날 아침 머리를 완전히 세우고 들어오는 모습에서 확신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펑크족에 가까운 패션을 하고 다녔는데, 최대한 일반인처럼 보여야 하는 곳에서 그만 정체를 들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배 코치는 내 정체를 알자마자 눈빛을 바꿨다. 자신이 하드코어 밴드의 보컬이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애호가끼리 서로의 정체를 알았을 때 으레 그러하듯, 우리는 어떤 밴드를 좋아하느냐에서부터 요즘 누구 앨범을 들어봤느냐, 요즘 하드코어신의 경향이 이대로 좋겠느냐에 이르기까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러닝머신에서 4km 속도로 걸으며 그 많은 대화를 하자니 숨이 가빠오는 게,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의 하드코어 밴드 보컬이라도 된 듯했다.
그날 밤 배 코치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사회생활하면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은 처음 만나봤어요.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신장 190cm의 헬스트레이너로 주말이면 하드코어 밴드에서 목에 핏줄을 세우며 노래하는 사람과 눈웃음 기호(^^)는 침팬지와 핵버튼의 만남만큼이나 낯설고 깜찍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우정은 나날이 깊어갔다. 문제는 내가 당시 언더그라운드 하드코어까지 챙겨 듣지는 못한 까닭에 그가 침을 튀기며 찬양하는 밴드를 대부분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바닥 ‘짬’이 몇 년인가. “아아, 갸들 죽이지” “어, 진짜. 저번 앨범도 끝장이었잖아” 정도로 응수하면 “그렇죠! 그렇죠! 아, 역시 이 형이 뭘 좀 아신다니까”라며 환한 웃음을 짓곤 했다.
화양연화의 시절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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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배 코치는 선언했다. “형, 제가 형 몸 한번 멋지게 만들어드릴게요.” 그날부터 10여 년 만에 재입대한 듯한 지옥훈련이 시작했다. 배 코치는 내 가슴과 어깨, 등과 이두와 삼두, 하체 구석구석을 번갈아가며 조지고 또 조졌다. 30분도 힘든 근육운동을 매일 한 시간 반씩 시켰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동안 러닝머신에서 인터벌 프로그램을 돌려가며 내 지방을 태웠다. 10km 이상으로 돌아가는 러닝머신에서 나는 계속 듣도 보도 못한 하드코어 밴드의 근황을 듣고, 또 동조해야 했다.
그렇게 석 달이 흘렀을 때 나는 ‘몸짱’ 비스무레한 존재가 됐다. 잡지 화보 촬영을 할 일이 있어 스타일리스트가 준비해온 스키니한 티셔츠를 입었을 때 담당 기자가 “어머, 김작가. 생각보다 몸이 엄청 좋구나”라며 야릇한 눈빛을 짓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칭찬이었다.
그 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왜 그 후에도 듣지 못했느냐. 그때쯤 배 코치가 피트니스센터를 관뒀기 때문이다. 배 코치는 그 뒤 ‘나인씬’이라는 밴드의 보컬로 한동안 하드코어신에서 제법 주목받았으니, 좋은 인연이라면 좋은 인연이었다. 강제에서 자율로 돌아간 운동은 다시 재미없는 일이 됐다. 탄탄하던 근육이 한두 달 만에 서서히 풀려갔다. 술은 근 손실의 적. 나는 매일 밤 그 적과 치열한 일전을 치르곤 했다. 그와 더불어 아주 짧았던 몸짱 시절의 화양연화는 사라졌다.
그때의 추억과 기억을 되살리며 바벨을 든다. 40kg까지는 너끈히 들었던 것 같은데 30kg을 가까스로 든다. 10km로 3분만 달려도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무심히 체육관장을 쳐다보지만 하루 종일 걸그룹 노래만 틀어놓는 관장은 PT(Personal Training) 등록을 하지 않은 중년 남성 회원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바벨을 들고 턱걸이 봉에 매달린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새로 나온 음악을 들으면서. 더 많은 공연을 보고 음악을 들으려면 건강이 필요하다는 걸 지난해에 이미 톡톡히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