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 스미스의 마지막 정규앨범 ‘Figure 8’.
1990년대 대중음악을 열었던 화두가 시대정신이었다면 90년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말은 ‘취향’이었다.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음악이 그런지로 촉발된 얼터너티브 혁명이었던 반면, 포크는 취향이라는 단어를 리스너들의 입에 붙게 만들었다. 전통적인 포크가 아닌 90년대 감성을 담아낸 새로운 포크 말이다. 벨 앤 세바스찬과 엘리엇 스미스가 선봉에 있었다. 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순진하게 믿었던 90년대 초반의 소년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음에 좌절했다. 청년이 되어 방구석에 틀어박힌 그들의 귓가를 적셔주던 음악, 벨 앤 세바스찬과 엘리엇 스미스는 ‘필청’ 리스트 앞 순위였다.
벨 앤 세바스찬이 마음 한구석에 사랑과 낭만을 간직한 이들의 음악이었다면, 엘리엇 스미스는 사랑과 낭만에 대해 마지막 좌절을 경험한 이들의 음악이었다. 35년의 인생 대부분을 그는 그늘 속에서 살았다. 아니, 행복해지는 걸 누구보다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때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불행하지 않음을 항변하기도 했지만, 정작 그의 내밀한 속내를 가장 잘 드러내던 노랫말은 늘 반대였다.
엘리엇 스미스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옅은 안개가 끼어 있었고 마음속 세상에는 언제나 빗줄기가 투둑투둑 떨어지고 있었다. ‘네가 원할 때 네가 원하는 걸 하라. 비록 그게 아무 의미도 없을지라도. 거대한 허무일지라도’라고 끝을 맺는 ‘Ballad Of Big Nothing’. 음악평론가 성문영이 ‘거대한 허무의 발라드’로 해석한 이 노래의 제목은 어쩌면 그의 모든 노래에 담긴 주제어일 것이다.
사방이 온통 막다른 골목인 궁지의 공간, 엘리엇 스미스는 그 가장 깊은 곳에서 노래했고 이야기했다. 도피할 곳 없어 세상 틈새에서 방랑하는 이들에게 그의 노래만큼 위로의 담요 구실을 해주는 도구는 없었다. 소통에 힘겨워하고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위안을 얻는, 세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억지로 웃음 짓는 개인에게 엘리엇 스미스라는 이름은 가장 강력한 ‘프로작’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1994년 커트 코베인의 죽음이 군단을 진두지휘하던 장수의 전사였다면, 2003년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은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 나와 몸부림치던 낙오병의 고립된 사망과 같았다. 그와 심정적으로 연결된 개인만이 조용히 추모할 뿐인 쓸쓸한 죽음.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일반화된 인터넷 때문에 더는 ‘모여서 음악을 듣는 행위’가 사라진 이곳에서, 그의 죽음은 오프라인 음악공동체 앞으로 날아든 부고장이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그의 노래들을 듣는다. 서서히 차오르는 센티멘털이 한순간에 폭발한 후 모래처럼 바스라진다. 자물쇠로 묶어둔 비밀 일기장에조차 쓸 수 없었던, 온갖 감정의 본원과 심연을 엘리엇 스미스는 벌거벗긴다. 그리고 노래한다. 시라고 해도 괜찮을, 아니 시 자체인 언어로. 음표와 단어와 목소리는 서로를 힘겹게 부축한 채,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이곳으로 뚜벅뚜벅 다가온다. 애도의 감정이 들기 전에 경이가 밀려온다. 놀라운 재능과 불편할 정도의 진솔함에 대한 경이다.
돌이켜보면 바로 그 경이가 취향의 시대를 열었다. 낙오자들은 네트워크의 힘으로 그들만의 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 ‘세대’로 1990년대를 열었다면 엘리엇 스미스는 ‘취향’으로 그 시대를 마무리했다. 그들 모두 자살했다. 21세기는 20세기를 그렇게 숙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