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의 다섯 멤버와 그들의 음악 해설서 ‘라디오헤드 OK COMPUTER’, 앨범 재킷(반시계방향).
이후 행보는 위대한 음악이 되기 위한 네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라디오헤드 앨범을 ‘졸작’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즉각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각 앨범과 노래에 담긴 세계, 다층적이고 복잡하되 신비로움을 잃지 않는 사운드, 현재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되 그 결과를 대중에게 설득하는 용기, 기술과 시대를 받아들이고 활용하되 매몰되지 않는 지혜 등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이 앨범이 나를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친 벽을 뚫고 들어오리라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20년 넘는 장대한 시간을 거치는 사이, 라디오헤드는 요란하지 않게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밴드가 됐다. 21세기 비틀스라는 표현이 낯부끄럽지 않은 밴드가 됐다.
‘라디오헤드 OK COMPUTER’는 그런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해설하는 책이다. 구성은 이렇다. 각 앨범에 대한 이야기와 담론, 사실과 평론 후 그 앨범의 곡 설명이 이어진다. 방대하고 촘촘하다. 라디오헤드 팬이라면 기꺼이 빨아들일 수 있는 풍부한 정보로 가득하다.
만약 당신이 2012년 그들의 내한공연 때 ‘Creep’를 학수고대하던 정도의 가벼운 팬이라면? 이 노래에 담긴 밴드의 애증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라디오헤드가 왜 자신들의 라이징 히트곡을 그토록 오랫동안 방치해왔는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데뷔 20주년을 훌쩍 넘긴 그들은 오랫동안 버려뒀던 노래를 어떻게 다시 무대에 올렸는가. 그 과정을 통해 라디오헤드의 자연스러운 성장과 성숙을 읽어낼 수 있을 테다.
만약 당신이 그 공연에서 ‘Creep’를 부르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던 팬이라면? 엔딩곡으로 ‘Paranoid Android’나 ‘Everything in Its Right Place’가 울리길 기대하던 팬이라면?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오면서 느낀 신비로운 감정을 누군가 대신 말해주는 듯한 기분을 얻게 될 테다. 앨범 제작 과정의 치열한 고민들, 기타 밴드로 시작해 ‘Kid A’와 ‘Amnesiac’에서 기타를 놓고 일렉트로닉을 도입한 후 마침내 ‘In Rainbows’에서 모든 것을 통합해 다시 흩뿌리는 대서사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을 사실과 분석, 그리고 묘사로 풀어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술술 읽힘에도 좀처럼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노래 설명을 읽는 시간보다 그 노래를 다시 듣는 시간이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봤고, 그때마다 새롭던 그들의 공연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곤 했기 때문이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가장 훌륭한 앨범을 책 제목으로 쓸 수 있는 용기가 신기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안다. 이 제목은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1992년부터 2017년까지, 이 시대 가장 위대한 밴드가 된 라디오헤드의 행전(行傳)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