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주말드라마 ‘화유기’에서 삼장(오연서 분)과 키스하는 손오공(이승기 분)이 찬 팔찌가 ‘금강고’다. [사진 제공 · 화유기]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은 원작에서 삼장이 천방지축 말썽쟁이 손오공을 길들이려고 머리에 씌운 금속 머리테를 팔찌로 바꾼 점이다. 손오공은 이 팔찌를 차고 난 뒤 삼장의 수호천사가 된다. 나아가 삼장을 사랑하게 돼 그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심장이 조이는 고통을 느낀다. 이 팔찌의 이름은 ‘금강고’다. 그럼 손오공의 원래 머리테의 이름은 뭘까.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서유기’는 16세기 후반 명초 문인 오승은이 지었다는 ‘100회본 서유기’다. 세덕당에서 인쇄했다고 해 ‘세덕당본’이라고도 부르는 이 작품에는 석가모니부처가 관세음보살에게 준 쇠고리 3종 세트가 등장한다. 바로 긴고아(緊箍兒), 금고아(禁箍兒), 금고아(金箍兒)다. 한자 표기의 앞 글자는 다르지만 중국어 발음은 ‘진구얼’로 모두 같다.
여기서 고(箍)는 둥근 테를 의미한다. 아(兒)는 일종의 애칭이다. 긴(緊)은 조인다, 금(禁)은 금한다, 금(金)은 쇠를 뜻한다. 셋을 종합해보면 쇠로 된 테로 난폭하게 구는 것을 금하게 한다는 뜻이 된다.
관세음보살은 긴고아를 삼장에게 줘 사나운 원숭이 손오공을 다스리는 데 사용하게 한다. 이를 머리에 쓴 손오공이 말썽을 피우면 삼장이 ‘긴고아주(呪)’ 또는 ‘긴고아경(經)’을 읊는다. 그러면 동두철액(銅頭鐵額·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으로 유명한 손오공의 머리가 절구통 허리 모양으로 찌부러져 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본디 긴고아는 쇠테가 아니라 모자였다. ‘세덕당본’보다 200여 년 앞선 원대 작품 ‘대당삼장취경시화’에는 손오공이 후행자(猴行者)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후행자는 은형모(隱形帽)라는 모자를 통해 자신의 형체를 감춘다. 이렇게 손오공의 능력을 강화하던 은형모가 세월이 흐르면서 손오공을 통제하는 긴고아로 바뀐 것이다.
‘세덕당본’ 속 긴고아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손오공은 삼장의 봇짐에서 얼룩무늬 모자를 포함한 승복 일습을 발견하고 좋아하며 입어본다. 하지만 얼룩무늬 모자에는 긴고아가 숨겨져 있었다. 삼장이 긴고아주를 읊자 고통을 견디다 못한 손오공이 모자를 갈기갈기 찢어버려 테두리만 남게 된 것이다.
다른 두 금고아는 손오공조차 감당할 수 없는 요마를 관세음보살이 나서 직접 잡을 때 쓰인다. 금(禁)고아는 흑곰이 변신한 흑웅괴(黑熊怪)를, 금(金)고아는 우마왕과 나찰녀 사이에서 태어난 홍해아(紅孩兒)를 잡을 때 사용된다. 특히 금(金)고아는 다섯 갈래로 나뉘어 머리뿐 아니라 두 팔목과 두 발목까지 채울 수 있다.
‘화유기’ 속 금강고는 이 금(金)고아에서 영감을 얻어 팔목에 차지만 심장을 조이는 특수장비로 진화한 것이다. 쇠보다 견고한 금강석(다이아몬드)으로 만든 테두리라는 뜻에서 금강고라 이름 붙인 듯한데, 드라마에선 금속 재질로 선보여 이름이 무색해졌다.
당신이 손오공이라면 뇌수를 조이는 긴고아와 심장을 조이는 금강고 가운데 무엇을 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