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 옮김/ 김영사/ 1만7000원/ 368쪽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 이후 생물학계에 불었던 ‘이기적’ 대 ‘이타적’ 논란은 후자의 우세로 기울고 있지만 인간 본성이 과연 양극단에만 놓여 있는 것일까.
동물인 인간은 우선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안전을 원하고 배를 채우고 싶어 한다. 여기서 내 목숨, 내 음식을 먼저 확보하고 싶은 자기중심주의가 싹튼다. 자연 속에서도 치열한 경쟁과 이익 다툼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따라서 삶을 위한 투쟁은 자연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윈의 ‘적자생존’을 인용해 인간 사회에서도 경쟁 우선이 당연한 원리라는 주장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이타적 행위, 즉 자신에게 전혀 이득이 없는데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이타적 행위 역시 이기적 유전자의 발로라고 본 도킨스의 주장을 뛰어넘는 사례는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우물가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를 보면 누구나 달려가 우물에 빠지지 않도록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자신의 이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맹자는 이를 ‘측은지심’이라고 했다.
저자는 인간의 자기중심주의와 이타주의의 간극을 잇는 다리로 ‘공감’이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는 공감의 요점을 잘 보여준다. 한 원숭이가 줄을 잡아당기면 먹이가 나오는데 그 순간 다른 동료에게는 충격이 가해지는 실험을 했다. 이를 알게 된 원숭이는 줄을 잡아당기지 않고 굶는 편을 택했다. 이는 동료의 불편한 모습과 비명을 피하려는 것에서 비롯됐다. 상대의 고통을 보는 것을 괴로워하고, 나아가 내 것으로 여기는 공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 같은 공감은 집단 내에서 서로 협력하고 돕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
가장 공격적인 영장류인 인간은 공감을 통해 경쟁에만 몰두하지 않고 서로 어울리며 타협한다. 인간은 사회적 다리와 이기적 다리라는 두 다리로 걷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공감 능력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질이 아니다. 저자는 원숭이를 비롯한 영장류와 포유류, 심지어 조류 등의 사례를 통해 많은 동물이 공감 능력을 갖고 있다고 소개한다.
공감은 200만 년 전 등장한 인류가 갑자기 얻은 게 아니라 최소한 포유류의 계보만큼이나 오래된 유산이라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에 대한 이해에 그치지 않고 그를 위로하거나 동정을 베푸는 단계로 나아간다. 위로와 동정을 넘어서면 상대방 처지와 관점을 파악해 적절한 도움을 주는 단계까지 이른다.
진화는 공감과 동정 영역에서는 우리에게 직접적 이익이 있든 없든 작용하는 독립적인 메커니즘을 만들었다.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이득과 상관없이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을 보길 바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감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집단 내 정의와 공평함을 논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두 침팬지를 대상으로 자갈을 주워 오면 오이를 주는 실험을 했다. 여러 번 반복하다 한 침팬지에게는 오이보다 더 좋은 포도를 준다. 그러면 오이에 만족했던 침팬지는 항의하거나 심지어 들고 있던 오이를 던져버린다. 상대적 박탈감이 침팬지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다. 아예 못 먹고 못 입는 근원적 박탈감의 경우 ‘불쌍한 사람을 돕자’는 공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행동인데도 남보다 보상을 덜 받는 상대적 박탈감은 공감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노력과 경쟁에 따른 적절한 보상 역시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축이다.
이 책의 미덕은 균형에 있다. 공감에서 비롯된 이타성이 근본 원리인 사회를 지향하지만 무조건적 이타성은 상호주의라는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본다. 근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심과 이타성의 양극성을 가진 유인원이기 때문에 공감을 통해 둘을 연결하고 인간 사회의 유대를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 뻗는’ 두 번째 보이지 않는 손에도 의존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제는 ‘THE AGE OF EMPATHY’(2009).
달라이라마, 명상을 말하다
달라이 라마 지음/ 이종복 옮김/ 담앤북스/ 192쪽/ 1만5000원
편역자 제프리 홉킨스는 1979~89년 만 10년간 달라이 라마의 수석 영어 통역사로 활동하며 그의 구두 강연을 다섯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달라이 라마의 수많은 강연 가운데 명상과 수행의 진수를 뽑은 것이다. 달라이 라마 스스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천은 바로 명상”이라며 명상의 기초부터 심화 단계까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달라이 라마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계발하는 가장 좋은 도구가 명상이고, 명상이 가져온 무(無)분별심이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휴식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명상을 통한 수행의 실천은 최소한 ‘어제보다’ 조금 더 친절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는 가르침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명상이 어렵다고? “수행을 시작할 때 큰 기대를 갖지 마라. 하지만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100년이 지나도 이룰 수 없다고 하던 것도 어느 날 성취할 수 있다.”
힐빌리의 노래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428쪽/ 1만4800원
저자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에서 자랐다. 이곳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인 ‘힐빌리’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저자 역시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약물중독에 빠진 어머니, 수시로 바뀌는 아버지, 그리고 어릴 적부터 삶을 포기한 채 냉소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누이와 외할머니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에 오하이오주립대와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 현재 실리콘밸리에 입성한 젊은 사업가가 됐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까지 과정을 담고 있다. 자화자찬식 성공담에 그칠 수 있던 이 책이 지난해 출간 이후 55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3위 안에 든 것은 과거의 고통스럽고 처절했던 나날을 가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희망을 얘기하면서도 가난과 차별, 사회적 소외가 얼마나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설명하면서 사회 주류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텐센트 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
우샤오보 지음/ 원미경 옮김/ 처음북스/ 512쪽/ 2만 원
중국의 대표 인터넷기업 하면 ‘알리바바’를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1998년 세워진 ‘텐센트’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메신저 QQ와 위챗, 음원사이트 QQ뮤직으로 일어섰고 이를 바탕으로 게임, 클라우드, 인터넷금융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그림자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마화텅 텐센트 회장은 최근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을 누르고 중국 최고 부호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20년간 텐센트가 어떻게 경쟁자들을 누르고 최고 위치에 올라섰는지를 탐색하는 종합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유명한 경제평론가로 알리바바 관련 책도 쓴 저자는 5년여 동안 이 책을 위해 텐센트 임직원 60명을 인터뷰하고 외부 인터넷업계 종사자, 경쟁 상대자도 만났다. 이 책은 텐센트의 성공 비결보다 인터넷이라는 현실이 어떻게 인류의 삶에 녹아들었는지를 보여준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