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맛있다. 밤 산책은 여름이 제철이다. 봄가을의 밤은 낮의 화려함에 묻히고, 겨울밤은 추위에 묻힌다. 여름에는 시원한 밤바람이 산책 나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하지만 장소가 마땅치 않다. 서울에도 좋은 산책로가 많지만 인파로 너무 붐빈다. 그렇다고 아주 먼 곳으로 떠나기에는 가볍게 걷고 싶은 산책의 의미를 해치는 것 같다. 그래서 찾은 곳이 서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경기 포천시 포천아트밸리(신북면 아트밸리로 234)다.
아름다운 호숫가 걷다 별도 보고
버려진 웅덩이가 아름다운 호수가 됐다. 포천아트밸리에 자리한 천주호 이야기다. 입장료 5000원(성인 기준)을 내고 포천아트밸리 입구에서 오르막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꼭대기 부근에 보이는 호수가 바로 천주호다. 비탈을 걷는 게 부담스럽다면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성인 왕복 4500원). 천주호는 버려진 화강암 채석장 웅덩이에 샘물과 빗물이 유입돼 생긴 인공호수다. 호수를 둘러싼 암벽과 바닥의 화강암이 빛을 반사해 만들어낸 청록색 물빛으로 유명하다.천주호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의 호수는 한층 더 화려하다. 물가 곳곳에 설치해놓은 조명이 은은한 빛을 내뿜어 수면은 환상적인 색깔의 옷을 입은 듯하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느 순간 갑자기 호수에서 황홀경이 보였다’.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등에서 천주호의 모습을 담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테다.
호숫가로 올라가는 산책로도 다양한 조형물이 곳곳에 자리해 지루하지 않다. 특히 밤에는 조형물을 비추는 조명 덕에 은은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포천아트밸리가 원래 채석장이었던 만큼 천주호 아래에는 석조 조각상이 늘어선 조각공원이 마련돼 있다. 조각공원의 조각문을 지나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는 천주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또 전망대에는 관람객들이 소원을 적어 매달아놓은 ‘소원의 하늘정원’도 있다.
천주호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좀 더 올라가면 포천아트밸리 천문과학관이 나온다. 과학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시실에는 지구와 천체에 관한 전시품들이 구비돼 있다. 이 밖에 과학체험교실과 천체투영실 등 체험형 시설은 물론, 천체관측실도 있다. 천체관측실에서는 천체망원경으로 밤하늘의 별을 직접 관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