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8

2020.07.17

재정지출 감당할 카드, 부가가치세 인상만 남았다

중부담-중복지 가려면 세수 수십조 원 늘려야…‘핀셋 증세’는 환상일 뿐

  •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genoswoo@gmail.com

    입력2020-07-06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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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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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했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불요불급한 정부 지출을 구조조정하며, 비과세 및 세금 감면을 축소하면 약속한 복지를 실행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재원 조달은 쉽지 않았다. 대선 공약이던 무상보육과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를 실행하려면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2013년 여름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됐다.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는, 부자 증세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감행된 법인세 인하 이후라 그런지, 기대와 달리 ‘서민 증세’ 논란이 불붙었다.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세법 개정안을 ‘거위 깃털 뽑기’에 비유한 것이 도화선이 돼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의 비난까지 거세졌다. 

    2015년 1월 연말정산 시즌이 개시되면서 난리가 났다. 방향은 옳았지만 실제 연말정산을 해보니,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이 늘어난 부분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정부가 추가 환급해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증세 없는 복지’는 실패했다

    정치권과 정부는 기본적으로 증세를 싫어한다. 그간의 경험 때문이다. 1970년대 중반은 자주국방 등으로 세수가 필요한 시기였다. 1970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미 7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시켰다. 1976년 미 대선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자주국방을 위한 재원이 절실했다. 

    1975년 방위세가 도입됐다. 일반 재정 지출에서 비중이 큰 국방비를 목적세로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세금에 추가하는 부가세 형태라 조세 저항도 그리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수가 잘 걷혔다. 1977년 국세 수입의 11%를 차지할 정도로 방위세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1977년에는 부가가치세가 도입됐다. 그해 여름 불합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던 영업세 등 소비세를 부가가치세로 일원화했다. 부가가치세는 매출에 부과하는 매출세나 소매점의 매출에 부과하는 판매세와 달리 ‘부가가치’에만 과세하는 세금이라 기업의 생산 결정 왜곡을 최소화한다. 동시에 중간 판매자가 탈세하려고 매출을 축소하면 그 물건을 산 구매자가 환급받을 수 없어 자동적으로 탈세를 방지할 수 있는 구조도 갖는다. 

    1976년 12월 국회를 통과할 때 부가가치세 세율은 13%로 결정됐다. 하지만 부가가치세 시행 한 달을 앞둔 이듬해 6월 경제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탄력세율 3%p를 적용해 10%로 출발했다. 이는 1988년 부가가치세 기본세율을 10%로 하고, 탄력세 제도를 폐지하는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부가가치세 도입 후 물가가 크게 올랐다. 아파트 가격도 폭등했고, 소비 부진이 이어졌다. 이는 1978년 총선에서 집권 민주공화당이 야당인 신민당에 득표율에서 1.1%p 뒤지는 정치적 이변으로 이어졌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부가가치세 도입의 주역인 남덕우 부총리, 김용환 재무부 장관, 김정렴 대통령비서실장을 교체했다. 그리고 1979년 10·26 사태가 발생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박정희 정권은 무너졌다. 부가가치세가 도입되고 2년 후 일이다.

    재정 지출에 도움 안 된 종부세

    2004년 11월 국회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논의한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왼쪽)와 2013년 8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제 개편안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연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 [동아DB]

    2004년 11월 국회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논의한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왼쪽)와 2013년 8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제 개편안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연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 [동아DB]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도 증세의 대표적인 예다. 참여정부는 2003년 출범하면서 수도 이전과 국토 균형 발전을 기치로 내걸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풀린 토지보상금이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 구입으로 이어졌다. 강남 3구와 목동, 경기 분당지역 아파트 값이 춤추기 시작했다. 

    보유세를 인상하면 아파트 가격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2005년 종부세가 도입됐다. 고가 부동산을 다수 소유한 이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부동산 과다 소유 및 투기 억제 효과를 기대했다. 도입 당시에는 부동산 소유자 개인별로 과세하던 것을 2006년부터 세대별 합산 방식으로 바꿨으나, 2008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아 다시 개인별 합산으로 세 부과 기준이 변경됐다. 

    종부세 세수 규모는 가장 많았을 때가 3조 원가량으로 다른 세목에 비해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리고 세수를 대부분 지방정부로 환급해주기 때문에 재정 지출에 큰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상위 2%’에 국한된 세금이라고 홍보했지만, 국민의 조세 저항은 거셌다. 종부세 도입 2년 후 치른 대선에서 여당인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대패했다. 

    이번에는 2015년으로 옮겨가보자. 박근혜 정부가 담뱃세를 인상했다. 담배에는 각종 세금과 준조세인 부담금이 붙는다. 개별소비세가 담배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 종가세(從價稅) 형태다. 2015년 각종 세금을 인상하면서 갑당 2500원이던 담배 가격이 4500원이 됐다. 

    ‘국민건강 증진’이 명분이라지만, 실제 목적은 세수 확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세수를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4500원이라는 가격을 설정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됐다. 부자 증세는 하지 않고, 오히려 서민이 많이 소비하는 데다 중독 현상으로 소비를 줄이기도 힘든 담배에 과도한 세금을 매겼다는 불만이 높았다. 그리고 2년 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됐다. 

    증세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듯 정치권은 증세, 특히 국민 대다수를 대상으로 증세를 하면 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인지 웬만하면 증세 논의는 피하려 한다.

    재정 지출 5%p가량 증가 불가피

    6월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증세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뉴스1]

    6월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증세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뉴스1]

    문재인 정부 들어 증세가 몇 번 있긴 했다. 법인세 최고 구간도 25%로 인상됐고, 종부세도 고가 주택에 한해 인상됐다. 최근에는 주식의 양도 차익에 대해 연 2000만 원 소득이 있는 경우 과세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부자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소득을 올린 사람에게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수평적 형평성, 돈을 좀 더 많이 번 사람이 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수직적 형평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에게 납세 순응을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자 증세는 수직적 형평성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증세 조치는 세수 측면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복지국가로 향해 가고 있다. 선진국은 대부분 국내총생산(GDP) 대비 20%가량을 복지에 사용한다. 한편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은 10% 정도다. ‘중부담-중복지’라 할 15% 수준이 되려면 향후 5%p가량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 우리의 명목 GDP를 2000조 원으로 잡으면 100조 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이 100조 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다. 

    100조 원 중 절반은 사회보험료 인상으로 조달할 수 있다. 나머지 50조 원은 적자국채를 발행하거나 증세를 통해 조달해야 한다. 즉 50조 원 중 절반을 국채 발행으로 해결한다면, 나머지 25조 원은 증세로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규모는 가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상당한 규모의 세수가 필요한 것만은 명확하다. 

    일각에선 불요불급한 지출의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환상일 뿐이다. 지출 구조조정을 하려면 재정 사업을 평가해 효과성 및 효율성이 낮은 사업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정치적·사회적 이유로 그러한 조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에서는 쓰지 못해 불용됐거나 종료된 사업을 연장해주지 않는 소극적인 구조조정만 가능할 뿐이다. 이런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소비세만 남았다

    우리나라 3대 세목은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다. 그런데 법인세와 소득세의 경우 과세 기반이 되는 기업과 개인의 소득이 정체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낮아졌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성장은커녕 침체될 지경이다. 도무지 증세할 여건이 안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소비 기반 과세밖에 없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적극적인 재정 지출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한 명확한 논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재정 지출 약속은 공허하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80석 가까운 의석을 차지했다. 책임감 있게 지출과 재원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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