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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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의 영화觀

역사를 움직인 진짜 보통사람은 어디 갔나

김봉한 감독의 ‘보통사람’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7-04-12 14: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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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보통사람’이라는 말은 정치적 문구로 기억된다. 한 정치인이 이 구호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한 역사 때문일 테다. 하지만 보통사람은 이렇게 소비되기엔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단어다. 과연 어떤 사람이 보통사람일까. 한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잘 따라가는 사람일까, 아니면 시대 흐름조차 모른 채 한 시대를 지내온 사람일까. ‘보통사람’은 그런 고민에서 시작된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들이 역사의 변두리에 머물기보다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성진(손현주 분)만 해도 그렇다. ‘보통 경찰’로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권력의 중심이라 할 만한 ‘남산’의 부름을 받는다. 조작 사건의 말단 수족으로 선택된 것이다. 

    남산의 부름을 받는 순간 성진은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쥐어주는 뭉칫돈을 접하게 되고, 그럴듯한 새 집을 알아보게 되며, 멋진 지프차를 타고 아들 학교에 가서 아들의 기를 세워줄 수도 있게 된다. 무엇보다 다리가 불편한 아들의 수술비를 얻고 최고위층과 통한다는 일급 의료진도 만나게 된다. 성진의 삶을 짓누르던 가난과 불편이 일거에 해소되는 것이다.

    보통사람 성진 옆에는 더 나은 세상을 원하는 기자(김상호 분)와 검사 출신 중앙정보부 간부 규남(장혁 분)이 있다. 성진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인물이라면, 기자는 진실을 파헤치려 애쓰고 규남은 자신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하는 어두운 권력을 좀 더 지속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1987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엄밀히 말해 영화 ‘보통사람’에 등장하는 인물 중 진짜 보통사람은 한 명도 없는 셈이다.

    희대의 조작 사건을 기획하는 중앙정보부 간부, 그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그리고 그 일의 세부를 담당하는 형사라면 역사의 한가운데서 일종의 물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그 물길에 휩쓸려 이리저리 흘러 다닐 수밖에 없던,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보통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기자의 억울한 죽음이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 됐다는 설정이 불편한 이유도 여기 있다. 그해 6월 시민을 거리로 불러낸 것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알려진, 정말이지 평범하던 한 대학생의 죽음이었다. 언젠가 검사도, 경찰도, 기자도 될 수 있던 그 어린 학생이 그저 학생인 채로 민주주의를 외치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 그것이 시민을 움직였다.

    세상이 어수선하지 않았으면 학교 도서관에 있었을 학생조차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던 그 현실이 시민을 움직인 셈이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을 움직인 원동력은 누군가의 친구이자 아들이며 오빠였던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이었다.

    물론 영화적 허구라고는 하지만 이쯤 되면 ‘보통사람’이라는 영화 제목이 지나치게 크다는 염려를 떨치기 어렵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단어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이 험난한 흐름 가운데서 나 자신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그 흐름에 쓸려버린 진짜 보통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남산이나 경찰서와는 거리가 먼,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듯싶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았던 사람, 그런 사람이 보통사람이다. 그래서 ‘보통사람’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끌었지만 어쩐지 아쉬움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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