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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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기(卒記)

1950년대 ‘로큰롤의 왕’ 척 베리

  • 임희윤 동아일보 기자 imi@donga.com

    입력2017-03-28 13:5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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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티 맥플라이가 1950년대로 날아간 까닭은 자신의 운명이 아닌, 미국 대중음악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영화 ‘백 투 더 퓨처’(1985)에서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 분)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인으로 연결해주고자 부모가 고교에 다니던 1950년대로 간다. 그 고교의 댄스 파티장에서 맥플라이가 기타를 둘러메고 미친 듯 연주하는 곡이 바로 척 베리의 ‘Johnny B. Goode’.

    체리색의 커다란 깁슨 홀로보디(hollow body·울림통이 있는 전기기타), 오리처럼 궁둥이를 뺀 채 폴짝거리는 무대 매너. 맥플라이는 이 순간 딱 척 베리다.

    그의 연주를 듣던 마빈 베리가 사촌인 척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압권이다. “척, 척. 항상 찾아 헤매던 새로운 음악, 그게 여기 있어. 자, 들어보라고!”

    1955년 여름, 미국 젊은이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2분 19초짜리 노래에 영혼을 뺏겨버린다. ‘Maybellene’, 캐딜락에 탄 메이블린을 뒤쫓는 숨 막히는 이야기를 담은 이 곡은 전통적인 열두 마디 블루스 형식에 충실했지만, 숨 가쁘게 빠른 리듬을 타고 정확하게 발음되는 속사포 노래로 듣는 사람의 혼을 빼놨다. 지금으로 치면 기타 든 에미넴의 등장이었다.



    척 베리는 1926년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컨트리 뮤직, 스윙, 블루스를 두루 섭렵해 심장 두근거리게 하는 리듬앤드블루스(R&B)와 로큰롤을 주조해냈다.

    비틀스가 초창기에 가장 많이 연주한 다른 가수의 곡이 ‘Rock And Roll Music’ ‘Roll Over Beethoven’ 같은 척 베리의 것들이었다.

    존 레넌은 훗날 “로큰롤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척 베리일 것”이라고 했다. 롤링스톤스의 데뷔곡은 척 베리의 ‘Come On’이었다.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는 척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에서 제목과 가사만 바꾼 곡이었다. 영화 ‘펄프 픽션’(1994)에서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은 척 베리의 ‘You Never Can Tell’에 맞춰 트위스트를 춘다.

    자동차, 여자, 로큰롤, 자본주의…. 척 베리는 당시 젊은이들을 뒤흔드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알았던 최고 작사가이기도 했다. ‘Johnny B. Goode’는 로큰롤 스타의 탄생 과정을 단 2분 41초 만에 서술해낸다. 시골 마을에서 어설프게 기타를 퉁기던 자니가 대도시의 불빛에 아로새겨지는 이야기. 그러나 척 베리는 ‘로큰롤의 왕’이란 칭호를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빼앗겼다.

    3월 18일, 척 베리가 미국 세인트루이스 자택에서 별세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를 훔친 뒤 맥플라이의 타임머신 자동차 드로리언을 탈취해 로큰롤의 미래로 날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졸기(卒記)
    졸기는 돌아가신 분에 대한 마지막 평가를 뜻하는 말로 ‘조선왕조실록’에도 당대 주요 인물이 숨지면 졸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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