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1

2017.03.29

강유정의 영화觀

가족다움, 엄마다움

나카노 료타 감독의 ‘행복 목욕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7-03-28 13:5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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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가족은 소설이나 영화 소재가 될 수 있다. 비밀 없는 가족이 없고, 부끄러운 일 하나쯤 가지지 않은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가 가족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잭 니컬슨처럼 누나인 줄 알았던 여자가 엄마인 경우까지는 아니겠지만, 영화나 소설을 보면 기막힌 가족사가 한두 개쯤 등장하는 건 예사다.

    꼭 막장드라마에만 출생의 비밀 혹은 엄마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완벽한 예술이라고 칭송한 ‘오이디푸스’도 따지고 보면 출생 및 엄마의 비밀 가운데 놓여 있지 않은가.

    영화 ‘행복 목욕탕’은 그런 ‘가족’ 이야기다. 그런데 이 가족의 비밀은 좀 더 여러 겹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단서가 모두 비밀의 반전을 열어주는 실마리 구실을 한다. 그리고 그 반전은 전부 아버지를 매개로 하고 있다.

    사실상 ‘행복 목욕탕’은 아버지라기보다 어머니의 이야기인데, 아버지가 주로 가족의 비밀을 만드는 촉매이자 매개라면 어머니는 그런 비밀을 상처 아닌 추억으로 품어주는 포근한 온기다.

    사고뭉치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1년째, 딸 아즈미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엄마(미야자와 리에 분)는 무척 씩씩한 ‘가모장’이다. 그는 딸의 아침을 준비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 핑계를 대는 아이를 격려해 내보낸다.



    그리고 자신도 계산원 일을 하려고 출근한다. 원래는 행복 목욕탕을 운영했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 남편이 집을 나간 후론 그렇게 두 사람만의 삶을 살아간다.

    문제는 그렇게 씩씩하던 엄마가 일하던 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발생한다. 문제는 엄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딸에게는, 짐작하듯, 학교 폭력 문제가 쌓여 있다. 아이들은 교묘하게 그를 놀리고 괴롭히며 따돌린다.

    말기암을 선고받은 엄마는 자신의 생애를 그저 병원 침상에서 마무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남편을 찾아야 하고, 아직 왕따에 시달리는 딸은 물론, 자신에게도 꼭 해줘야 할 일들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 목욕탕’이라는 제목과 달리, 영화에선 기쁘기보다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 주로 일어난다. 그러나 영화는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삶의 에너지로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바로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가족의 핵심에는 ‘엄마’, 즉 생물학적 엄마라기보다 기능으로서의 엄마가 있다. 가족이란 꼭 피와 살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체온과 추억, 식사를 공유하는 위안의 집단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미야자와 리에는 씩씩하면서도 당당하고, 한편으론 다정다감하면서도 관대한 엄마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는 다소 과다한 우연과 그 우연을 통한 감정적 비약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균형이 무너질 때 미야자와의 연기는 훌륭한 구심점이자 무게중심이 돼준다.

    ‘행복 목욕탕’은 전반적으로 일본 영화 특유의 정적이고 나열적인 에피소드 구성 방식을 보여준다. 어떤 점에서 보면 선택의 순간마다 주인공이 내린 결정이 우리 정서로는 받아들이기 조금 어색하거나 낯설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만의 장례 풍경 같은 대목 말이다. 그럼에도 ‘행복 목욕탕’은 결국 가족 이야기다.

    가족이란 누구에게나 조금쯤 무겁고 귀찮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렇게 무겁기만 한 것도 아니니 말이다. 가족과 엄마, 그리고 가족다움과 엄마다움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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