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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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Australia”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 남다른 ‘조국애’ … 자긍심 높고 기부에도 열성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09-03-04 18: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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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love Australia”
    ‘섬 대륙’ 호주에 백인이 정착한 이후의 역사는 고작 200년 남짓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호주가 이룬 업적은 인상적이다. 노벨의학상 수상자만 6명을 배출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종합 6위에 오른 스포츠 강국이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국가 아이콘으로 삼을 만큼 예술 분야에서 거둔 성과도 녹록지 않다.

    호주 출신의 할리우드 스타도 한둘이 아니다. 아카데미상을 받은 배우만 꼽아도 멜 깁슨, 러셀 크로, 제프리 러시,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주디 데이비스 등이 있다. 2월22일 열린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은 ‘X맨’의 휴 잭맨과 ‘킹콩’의 나오미 와츠, ‘크로커다일 던디’의 폴 호건도 호주가 배출한 월드스타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 고(故) 히스 레저 역시 호주 출신. 호주 국민은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의 활약상을 자기 일인 듯 좋아한다. 그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호주에서 개봉하면 십중팔구 흥행에 성공한다.

    멜 깁슨, 니콜 키드먼, 히스 레저…

    호주에서 찍은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뒤 할리우드에 진출한 멜 깁슨을 제외하면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은 대부분 고향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성공했다. 러셀 크로는 15년 전까지만 해도 시드니에서 호구지책으로 허드렛일을 서너 개씩 해야 했다. ‘크로커다일 던디’ 시리즈로 억만장자가 된 폴 호건은 시드니 하버브리지의 페인트공으로 일했다. 휴 잭맨은 파트타임 택시운전사였다.

    멜 깁슨도 ‘매드맥스’ 성공 전까지는 단역배우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는 지독한 음주벽 때문에 촬영장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 하나. 멜 깁슨은 만취해 패싸움을 벌이다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매드맥스’ 오디션을 봤다. 조지 밀러 감독은 기가 찼지만 거친 캐릭터를 찾고 있었기에 ‘촬영기간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를 발탁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멜 깁슨은 촬영이 끝나자마자 술집으로 달려가 곤드레만드레가 돼 술주정을 부리곤 했다. 이런 그를 참다못해 함께 영화에 출연한 가수 티나 터너는 술 취한 그를 사진으로 찍어놓기도 했다.



    “I love Australia”

    호주 출신 영화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호주에서 개봉하면 십중팔구 흥행에 성공한다. <br><b>1</b>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2008)의 케이트 블란쳇(오른쪽). <b>2</b> ‘다크 나이트’ (2008)의 히스 레저. <b>3</b> ‘킹콩’(2005)의 나오미 와츠.

    대부분 이민자 출신

    호주에서 고생이 막심했던 건 여자배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니콜 키드먼과 나오미 와츠는 단역배우 시절 나란히 수영복 광고모델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 그때까지 일면식도 없던 이들은 우연히 같은 택시에 합승해 서로를 위로하다 친해졌다. 지금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단짝이다.

    호주 출신 월드스타들은 공통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호주에서 태어난 게 아니란 사실이 그것. 멜 깁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러셀 크로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니콜 키드먼은 미국 하와이, 나오미 와츠는 영국 쇼렌햄 태생이다. 호주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가수 올리비아 뉴턴 존과 그룹 ‘비지스’도 알고 보면 영국 태생이다. 호주에서 한 명뿐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패트릭 화이트는 부모가 영국으로 신혼여행을 하던 중에 태어났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호주 시민권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의 출생지가 어딘지 거론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호주는 200여 나라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이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호주의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호주 태생이 아니라는 점을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민자라고 해서 계속 손님으로 살 이유가 없는 게 바로 호주 사회이기 때문이다.

    호주 이민자 출신 월드스타들의 호주 사랑은 남다르다. 럭비광 러셀 크로는 재정난으로 팀 해체 위기에 빠진 사우스 럭비팀에 1000만 달러가 넘는 거액을 투자해 구단주가 됐다. 아직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 럭비팀은 시드니 시민에겐 인기가 높다. 올리비아 뉴턴 존이 멜버른에 세운 올리비아 뉴턴 존 유방암 센터는 유방암 발생률이 유난히 높은 호주 여성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연구소 겸 병원이다. 그녀는 이 센터의 기금 마련을 위해 정기공연을 갖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중국 만리장성 걷기 행사를 열기도 했다.

    세금 문제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멜 깁슨도 호주 사랑은 여전하다. 모교인 호주 국립 드라마학교(NIDA)에 현대식 공연장을 마련하기 위해 200만 달러를 기탁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제작하는 영화의 스튜디오 작업 대부분을 호주에서 한다. 최근 개교 50주년을 맞은 호주 국립 드라마학교 출신으로는 멜 깁슨 외에도 제프리 러시, 케이트 블란쳇, 주디 데이비스, 나오미 와츠 등이 있다.

    호주 출신 배우들은 영화를 통한 호주 알리기에도 의욕적이다. 최근 개봉된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는 니콜 키드먼과 휴 잭맨이, 호주 내륙의 대서사를 그린 미개봉 영화 ‘유칼립투스’는 니콜 키드먼과 러셀 크로가 주연을 맡았다.

    최근 발생한 산불재난에서도 이들은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은 호주 국민에게 좀더 적극적인 성금 모금 참여를 독려했고, 본인들도 거액을 기부했다. 니콜 키드먼은 50만 호주달러(약 4억5000만원)를 보내왔다. 할리우드에 머물고 있던 러셀 크로는 “조국이 큰 재난을 당했는데, 멀리 해외에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다”고 토로한 바로 다음 날 귀국해 ‘사우스 럭비팀’의 자선모금 경기를 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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