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8

2016.12.21

안보

트럼프 ‘하나의 중국’ 흔들기 한반도, 미·중 파워게임에 혼돈

성난 중국, 북한 끌어안기 나설 듯…북핵 방조, 대북제재 이행 거부 가능성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6-12-16 16: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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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달 들어 대만을 지렛대 삼아 연일 중국을 자극하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 먼저 12월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인이 대만 총통과 통화한 것은 1979년 양국 수교 단절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천명하며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길 원하는 나라들에게 대만과 외교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1979년부터 37년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해오고 있다. 대만과는 ‘대만관계법’을 별도로 만들어 비공식적으로 주권국과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다. 트럼프와 차이 총통이 전화통화를 한 데 대해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이 세상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고,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란 점은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미 양국 관계의 정치적 기초”라고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미국은 대만에 수십억 달러어치 군사 장비를 팔고 있는데 나는 축하 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인가. 참 흥미롭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12월 11일 미국 언론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트럼프는 “중국이 내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차이 총통과는 ‘승리를 축하한다’는 매우 짧고 좋은 전화통화를 했다. 왜 다른 나라가 내게 전화를 받지 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 문제 등 다른 사안들과 관련한 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중국은 통화 평가절하와 미국 제품에 고율 관세 부과, 남중국해 대형 요새(인공섬) 건설로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데, 중국은 이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중국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우리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은 북한 핵 문제를 풀 수 있는데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며 북핵 문제까지 언급했다.

    하나의 중국과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은 중국 처지에서는 경천동지할 일이다. 분열은 대국(大國)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싫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2월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주권 및 영토와 관련한 문제이자 중국의 핵심 이익에 관한 문제이고, 중·미 양국 관계 발전의 정치적 기초이면서 전제조건”이라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한 약속을 철저히 지킬 것”을 미국 측에 촉구하면서 “이런 전제조건이 방해받거나 훼손될 경우 양국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된 발전은 필연적으로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뒤이어 중국 최고위급 인사들도 발 벗고 나섰다. 중국 특유의 집단 지도부 ‘7인 상무위원’ 가운데 한 명인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은 12월 12일 시안(西安)사변 80주년 좌담회에서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아 양안(중국과 대만)의 평화 발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중화민족은 한마음으로 단결해 국가를 분열시키는 언동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위스를 방문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장도 12월 13일 기자들에게 “차이잉원 당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누구, 어떠한 세력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손하거나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해친다면 결국 돌로 자기 발등을 찍는 꼴이 될 뿐”이라고 언급했다.





    대만 카드에 북핵 카드로 맞대응

    중국 매체도 일제히 들끓고 있다. 관영매체 ‘환추(環球)시보’는 ‘각종 환상을 버리고 트럼프와 팔씨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우리는 트럼프의 경제위협에 맞설 모든 수단을 갖췄고 핵심 이익 보호를 위해 결전할 각오가 돼 있기 때문에 중국은 실패할 수 없다”면서 “중국은 대만 독립 세력을 대상으로 응징을 시작해야 하며 여기에는 무력을 통한 대만 수복도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고 위협했다. 또 “현재 중·미 양국의 파워 격차가 역사상 가장 좁혀진 상태인데, 우리가 무슨 이유로 트럼프로부터 가장 불공평하고 모욕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주장했다. 환추시보는 또 다른 사설에서 “좋게 말로 해서 안 되면 미국의 적대국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한편, 무력으로 대만을 통일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과연 여기서 ‘미국의 적대국’은 어디일까. 보기에 따라서는 ‘트럼프, 너희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북한에게 무력 지원을 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특히 주목된다.

    하나의 중국과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에 항의하는 것으로 보이는 중국군 폭격기의 움직임도 보도됐다. 환추시보는 폭스뉴스를 인용해 중국군 폭격기가 트럼프와 차이 총통의 전화통화 이후 중국이 자기네 바다라고 주장하는 구단선(九段線·중국이 해역과 해저 영유권을 주장하고자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그은 U자 형태의 9개 선.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를 차지한다)을 따라 12월 8일 순항 비행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人民日報)’는 한 면에 걸쳐 미국 경제의 최대 약점인 대규모 재정적자 문제를 집중 보도하면서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 규모를 줄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은 미국 대외채무의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만일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를 줄인다면 미국 경제는 치명타를 입는다.

    하나의 중국과 관련한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도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면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뀔 것을 우려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12월 12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변함없이 지지한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 덕에 이란의 핵무기 개발 금지 노력 강화와 북한 정권에 대한 추가적인 고립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며 중국 때리기에 나서면 중국이 트럼프 행정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면서 무역·투자, 북한, 기후 변화, 대만, 이란 등 중국의 5가지 반격 카드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중국이 북한 핵 문제를 풀 수 있는데도 전혀 도와주지 않는다”고 비판한 점을 들며 중국이 북한 카드를 이용해 트럼프를 더욱 압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중 관계가 지금보다 더 우호적인 이웃관계로 변하거나, 북한 경제를 돕기 위해 중국이 대북 무역이나 원조, 투자를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오랜 동맹국으로서 북한과 합동군사훈련도 할 수 있고, 만일 북한이 핵확산 방지를 약속한다면 그 대가로 ‘마셜 플랜’(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7년부터 51년까지 미국이 서유럽 16개국을 대상으로 행한 대외원조계획) 수준의 포괄적인 경제지원도 가능하리라고 내다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북한은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핵 위협은 섬세한 전략적 균형이 필요한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눈앞의 위협”이라고 지적하며 “미·중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한 진전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FT는 또한 “트럼프는 대만을 흥정카드로 이용해 미·중 관계를 뒤흔드는 데 매진하는 것 같다”면서 “이는 북한 문제의 해결을 진전시키는 것을 의문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안보리 제재’ 신속 동참 中, 내년엔 돌변?

    한편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열흘 만에 북한산 석탄 수입을 올해 한시적으로 중단하는 등 대북제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 상무부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21호를 시행하고자 12월 11일부터 31일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수입 금지 조치를 발동한 것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서 규정한 북한산 석탄의 수입 한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올해 20여 일간 북한산 석탄 수입을 중단하면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이 내년에는 북한산 석탄 수입과 관련해 어떤 태도를 취할까. 내년 역시 형식적으로는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석탄 수입업자의 허위 보고나 원산지 조작, 밀무역 같은 방식으로 북한산 석탄 수입은 은밀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를 잘 아는 중국 당국은 이러한 불법행위를 방치한 채 대대적으로 단속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즉 중국의 대북제재는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와 마찬가지로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원리·원칙을 강조하는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타협과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며 트럼프를 내심 반기던 중국은 ‘하나의 중국 재검토’라는 돌발 변수에 충격을 받고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 중국이 취할 대북정책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중국을 계속 코너로 몰아넣는다면 중국은 북한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과 중국, 빅2의 파워게임에 한반도가 또다시 혼돈과 격랑에 휩싸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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