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5

2003.10.16

‘이벤트경매’는 짜고 치는 고스톱?

파격 할인가로 유혹한 뒤 내부자 낙찰 수법 ‘적발’ … 네티즌들 사건 전부터 조작 의혹 제기

  • 명승은/ ZDNet Korea 기자 mse0130@korea.cnet.com

    입력2003-10-09 15: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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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벤트경매’는 짜고 치는 고스톱?
    위험한 외줄타기를 계속하던 이벤트경매가 마침내 일을 내고야 말았다.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이창세 부장검사)는 9월28일 회사 내부자가 경매 물품을 낙찰받는 수법으로 회원 1만2000여명으로부터 2억7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인터넷 최저가 경매업체 ‘로윈닷컴’ 대표 허모씨 등 3명을 구속했다. 검찰은 로윈닷컴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벤트경매 사업을 벌이는 다른 업체들에 대해서도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이벤트경매 사업 자체가 적법한지에 대해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윈닷컴은 해명자료를 통해 “불법행위는 일부 직원들에 의한 사고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15회까지 진행된 경매 가운데 1, 2, 3회차에서만 범죄행위가 있었고 나머지 경매는 모두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로윈닷컴은 또 “로윈닷컴의 비즈니스 모델은 위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동종 업계 관계자들도 검찰조사를 통해 특허까지 출원한 이벤트경매 사업이 적법하다는 게 입증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외제 스포츠카 405원에 구입?

    이벤트경매는 그동안 위험한 외줄타기를 해왔다. 2월엔 ‘굿앤맨’이란 쇼핑몰에서 시중가가 1300만원에 이르는 중형차를 낙찰경매 방식으로 800만원대에 낙찰한 후 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하도록 유도하고 물품을 인도하지 않은 사기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벤트경매는 비공개 입찰방식으로 입찰자 중 최고값 혹은 최저값을 써낸 사람이 경매 물품을 낙찰받는 시스템이다. 헐값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 솔깃한 네티즌들이 몰리면서 수십만원씩 들여 복수 입찰을 하는 ‘입찰 싹쓸이’가 성행하는 가운데 경매업체의 사이트가 해킹당하는 등 문제점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또 여러 아이디를 가진 중복 낙찰자가 나오고 게시판이 없는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일부 업체들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고 제기돼왔다.

    사기 사건이 벌어진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박을 노리는 네티즌들은 여전히 이벤트경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사 이벤트경매 업체를 포함하면 매일 100여종의 물품이 이벤트경매 형식으로 팔려나간다. 이러한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M사 L사 K사 등은 50만~100만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해 매주 약 2억원어치의 물품을 이벤트경매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가 경매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일반 경매와 달리 이벤트경매 방식에선 낙찰가가 보통 정가의 10% 안쪽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5000만원대의 스포츠카를 ‘단돈’ 405원에 구입할 수도 있다. 기아자동차의 쏘렌토가 266원에 낙찰된 사례도 있다. 낙찰자는 복권 당첨자처럼 다른 회원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업체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낙찰자들의 사진과 낙찰자와의 인터뷰를 소개하면서 ‘나도 낙찰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입찰에 참여하기 위해선 일종의 입장권인 1000~3000원 가량 하는 ‘쿠폰’을 구매해야 한다는 점. 입장권 1장으로 입찰할 수 있는 물품의 종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네티즌들은 아이디를 여러 개 만들어 입찰하는 방식으로 낙찰 확률을 높인다. 한 사람이 100장 이상의 입장권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복수의 아이디로 응찰하는 것을 ‘바르기’ 혹은 ‘깔기’라고 하는데 인터넷 이벤트경매 동호회에선 ‘바르기 비법’ 등을 공공연히 가르치고 있다. ‘바르기’ ‘깔기’를 통해 낙찰 확률을 높일 수는 있지만 거꾸로 한 번에 수백만원까지 날릴 수도 있다. 한 이벤트경매 동호회 회원은 “지금까지 입찰하는 데 들어간 돈만 해도 3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앞으로 500만원까지는 눈 딱 감고 계속할 생각이다. 스포츠카 하나만 낙찰받아도 지금까지 들어간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남길 수 있으니 남는 장사 아니냐”고 말했다.

    로윈닷컴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일부 네티즌들은 이벤트경매 업체 내부자 또는 관련자에 의해 낙찰자가 조작되고 있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한 이벤트경매 동호회가 “모 업체에서 숫자만 다른 여러 아이디를 보유한 일부 회원이 지나치게 자주 낙찰받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낙찰자 조작 문제를 공론화한 적도 있다. 동호회 운영자 A씨는 “로윈닷컴의 경우 연속번호로 이뤄진 아이디를 이용해 주소가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 낙찰받았는데도 왜 회사측이 의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벤트경매’ 적법 여부 검토중

    최근 최저가 경매사이트 S사에서는 해킹 사건도 일어났다. 해커가 입찰 마감시간에 서버를 해킹해 낙찰 가능한 가격대를 미리 알아낸 것이다. 해당 회사는 해커를 경찰에 고발하고 해당 회차의 입찰을 무효 처리했다. 네티즌들은 이와 유사한 해킹 시도가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사법당국은 내부자 낙찰이나 해킹 등의 불법행위뿐만 아니라 이벤트경매의 비즈니스 모델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검토중이다. 이벤트경매를 ‘사행성을 조장해 이익을 얻는 복표(복권) 발행 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이벤트경매 사이트를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특정 표찰을 발매해 다수로부터 금품을 모아 추첨 등의 방법으로 당첨자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손실을 주는 행위’를 ‘사행성 복표사업’으로 정의, 이를 규제하고 있다. 이벤트경매에서 응찰에 필요한 입장권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법처리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관련 업체들은 이벤트경매가 사행성을 부추기는 시스템이 아니라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항변한다.



    각 업체들은 로윈닷컴 사건 이후 “우리 회사는 안전하다”며 오히려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보안서비스를 갖추고 회계법인과 법무법인을 검수기관으로 선정하는 등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의 한 관계자는 “아직 이벤트경매 사업 자체가 사기인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내부자 거래나 해킹 등의 불법행위에 의한 부당 낙찰이 있을 수 있으므로 회원들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또 “피해자 9만6000명, 피해액 310억원을 기록했던 하프플라자 사건도 그럴듯한 비즈니스 모델임을 내세웠다”면서 “소보원이 하프플라자 사건 이후 조사한 인터넷 사기 유형의 대부분은 파격적인 할인가로 유인해 현금결제를 유도하거나 추첨식 경매와 같은 사행성 판매방식을 채택하는 경우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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