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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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 벤처인가 재벌인가

정보통신 분야 한우물…50여개 기업 직·간접 영향력

  • 입력2005-10-14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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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 벤처인가 재벌인가
    컴퓨터 제조, 초고속 인터넷, 이동통신, 인터넷통신, 소프트웨어 개발, 솔루션사업, 인터넷방송, 인터넷교육, 전기통신, 벤처캐피털…. 요즘 뜨고 있는 정보통신분야 첨단사업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이 모든 사업에 진출한 기업이 있다. 바로 ‘삼보’다.

    흔히 한국의 기업유형은 ‘벤처’와 ‘재벌’로 나뉜다. 삼보는 무려 50여 개 기업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삼보의 기업들은 모두 정보통신 한 분야에만 몰려 있다. 삼보를 벤처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재벌이라 부르기도 어려운 대목이다. ‘디지털시대 고속성장’의 상징인 삼보는 새로운 ‘대기업유형’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삼보기업군의 한 사장(41)은 삼보에 대해 “한마디로 재미있다”고 표현했다. 탄생부터 성장과정, 경영스타일, 사내 분위기까지 ‘뭔가 다르다’는 것이다.

    81년 창업 후 초고속 성장

    삼보의 모태인 ㈜삼보컴퓨터의 역사에서 이 기업집단의 정체를 읽을 수 있는 힌트가 있다고 한다. 서울 여의도 삼보컴퓨터 사옥에서 이 회사 임원 Q씨로부터 그 얘기를 들어봤다.



    삼보컴퓨터는 ‘삼보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인수해 81년 서울 청계천에서 문을 열었다. ‘삼보’라는 이름은 남의 회사명을 별다른 뜻 없이 따온 것. 대다수 벤처기업과는 달리 ‘홍보 마인드’가 부족한 삼보의 ‘전통’을 드러내는 일례다. Q씨는 자신을 포함해 대다수 삼보의 경영진은 요즘도 실명으로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을 꺼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대신 삼보는 ‘벤처마인드’의 원조”라고 말했다.

    삼보컴퓨터는 ‘퍼스널 컴퓨터’(PC)라는 것을 한국에서 처음 생산한 회사다. 요즘은 누구나 멀티미디어 PC를 사용한다. 그러나 사실 PC에서 소리나 동영상이 나오게 된 것은 삼보컴퓨터의 아이디어였다.

    삼보컴퓨터는 89년 이미 스톡옵션을 도입했다. Q씨는 “나는 그 때 ‘포니’로 출근했는데 신입사원들은 ‘콩코드’를 타고 다녔다. 요즘의 억대 스톡옵션 붐을 우리는 11년전 경험했다”고 말했다. 삼보컴퓨터 5년차 대리급은 올 들어서도 주당 7만원이 넘는 회사주식 수천주를 받았다.

    90년대 찾아온 부도위기 때도 삼보는 벤처정신으로 극복했다. PC기능을 무료로 업그레이드해주는 ‘체인지업’이라는 아이디어는 한국에서, 2류 부품업체들을 끌어모아 박리다매로 PC를 만들어 파는 아이디어는 미국과 일본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삼보컴퓨터는 90년대 말부터 누에가 고치를 치듯 50여 개의 회사를 만들었다. 정보통신 기업 중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없는 다산(多産). 삼보의 쉼 없는 도전은 성공하고 있다. 골드먼삭스 등 외국 금융기관의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삼보컴퓨터군’을 ‘한국통신군’, ‘삼성SDS군’과 함께 2000년대를 이끌어갈 한국의 신규 정보그룹군으로 꼽았다.

    삼보컴퓨터는 99년 국내생산 540만대, 미국과 일본의 컴퓨터 시장점유율 3위를 기록했다. 올해엔 중국에 컴퓨터제조공장을 준공, 매출 4조원, 컴퓨터생산량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삼보계열 회사들 중 두루넷, 나우콤(옛 나우누리), 나래앤컴퍼니(옛 나래이동통신), 벤처캐피털사인 TG벤처, 솔빛미디어, 한빛유선방송, 일본 손정의회장이 투자하는 소프트뱅크코리아, 삼보정보컨설팅, 이머신즈, 삼보인포넷, 아이넷, 인터넷보안업체 사이버텍홀딩스, 메타랜드 등은 투자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중 삼보컴퓨터는 거래소에, TG벤처는 코스닥에 등록됐고 두루넷은 한국 최초로 나스닥에 진입했다. 모두 주가가 폭등해 삼보에 1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를 안겼다(2월 현재 삼성컴퓨터의 주식투자평가이익 1조7000억원 추정). 이밖에 솔빛미디어, 이머신즈가 각각 코스닥과 나스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삼보컴퓨터의 창업주 이용태회장은 삼보의 신들린 듯한 창업에 대해 “이것도 벤처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이 회장은 “벤처 100개를 만드는 게 내 꿈”이라고 말한다. 1997년에 쓴 그의 자서전엔 이런 글이 있다. “전국에 케이블TV 방송이 실시된다. 이것으로 전국을 하나의 초고속통신망으로 연결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현실화됐다. 요즘 잘나가는 두루넷이 바로 그것이다. 삼보 PC의 광고카피인 ‘드림즈컴트루’(Dreams come true)는 바로 삼보의 경영이념이기도 했다.

    다음은 삼보계열 한 사장의 얘기. “사원과 회장이 격의없이 통한다.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한번 맡겨주십시오’ 이러면 회장은 ‘좋아, 나가서 한번 해봐’라며 회사를 덜컥 차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모험이 언제나 성공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장이 전하는 말. “삼보가 투자해 망한 벤처기업들도 숱하다. 3억달러를 까먹었다는 말도 있었다. 지난해 8개의 회사가 수천∼수십억원의 적자를 봤다. 4개 사는 적자를 감당 못해 휴면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삼보는 지금도 인터넷 교육을 위한 새 벤처회사를 만들고 있다. 삼보컴퓨터의 한 임원은 “우리는 쉽게 돈벌려 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정보통신업종에서만 사업을 한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새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업종을 가리지 않고 과열-불공정 경쟁을 일으키는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삼보의 경영진들은 삼보계열 기업들을 ‘회원사’라고 부른다. 재벌의 계열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사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벤처기업도 아니어서 이런 신조어가 나왔다. 이들 회원사간의 관계는 삼보의 정체를 파악하는 키(key)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엔 하나로 정의 내리기 힘든 복잡한 요소들이 많다.

    삼보엔 계열사를 ‘관리’하는 ‘기조실’이 없다. ‘회장비서실’은 있지만 기능은 크게 축소돼 있다. 회장주재 사장단 회의는 1년에 두 차례. 간단한 업무보고 형식일 뿐 일방적인 지시는 없다. 회원사들은 경영의 독자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 회원사를 설립할 때 삼보컴퓨터와 나래, TG벤처는 각각 지분의 40%와 25.7%, 4.2%를 투자했다. 삼보 회원사들은 독자경영체제이면서도 때에 따라선 공동으로 펀드를 만드는 등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회원사 사장단의 경우 이용태삼보컴퓨터 회장의 맏아들 홍순씨가 삼보컴퓨터 부회장, 차남 홍선씨가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장, 사위 이정식씨가 TG벤처 사장, 동서 김종길씨가 두루넷 사장으로 재임중이다. 삼보컴퓨터 출신인 김도진, 문우춘, 이정희씨가 각각 메타랜드, 솔빛미디어, 삼보인포넷을 경영하고 있다.

    ‘족벌-친위경영’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삼보컴퓨터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삼보는 ‘가내공업’으로 시작했다. 친-인척들은 사실 학력과 경력이 뛰어난 전문경영인이다. 삼보컴퓨터 출신 회원사 사장이 많아진 것도 삼보컴퓨터가 창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맡은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삼보의 경영진들은 ‘이용태 카리스마’의 실체에 대해선 대체로 인정하고 있었다.

    삼보 회원사들의 사내분위기는 ‘자유롭지만 개인주의적’이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실패’에 대해 ‘인간적 관대함’을 보여주는 곳이 또한 삼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삼보는 ‘전통기업’이다(실제로 이용태회장은 유교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인터넷 네트워크사업분야의 한 회원사가 3년만에 부도났을 당시 그 회원사의 직원들을 삼보의 다른 회원사들이 흡수했다. 사장은 다른 회원사의 임원이 됐다. IMF(국제통화기금)구조조정 때 명퇴해야 했던 직원들은 당시 신설사인 두루넷이 받아줬다. 두루넷이 나스닥에 상장되자 삼보직원들 사이에선 ‘희비가 엇갈렸다’고 한다.

    벤처기업이 성장하면 더욱 ‘벤처화’될까, 아니면 ‘재벌’처럼 될까. 한국 벤처기업들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듯한 삼보의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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