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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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아버지’ 올트먼표 월드코인, 국제 코인사기에 악용

홍채 인식 통해 1인이 1코인지갑 취득 가능한데 텔레그램서는 지갑 매매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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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3-06-1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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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박 모 씨(33)는 최근 텔레그램을 통해 만난 케냐인에게 350달러(약 45만 원)를 주고 코인지갑 수십여 개를 구매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해당 지갑에서 알 수 없는 코인 거래가 잇달아 발생한 것이다. 누군가가 박 씨와 코인지갑을 공유해 생긴 일이다. 박 씨는 불안함을 느껴 코인지갑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케냐인이 판매한 것은 ‘월드코인’ 지갑이다. 월드코인은 챗GPT를 개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공동개발한 암호화폐 프로젝트다. 홍채 인식을 통해 인당 1개의 코인지갑만 취득할 수 있게 해 다계정 취득을 막은 것이 특징이다. 박 씨는 “개설 조건이 까다로워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사기를 당해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월드코인 ID 개설에 사용되는 홍채 스캔 기기 오브(Orb). [월드코인 블로그 캡처]

    월드코인 ID 개설에 사용되는 홍채 스캔 기기 오브(Orb). [월드코인 블로그 캡처]

    케냐인 홍채 정보 사는 한국인

    올트먼 CEO가 공동개발한 월드코인이 코인사기에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프로젝트 취지와 달리 ‘코인지갑 매매’가 가능한 것은 물론, 동일한 지갑에 ‘다중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올트먼 CEO가 보안 등을 이유로 사용자 개개인의 홍채 정보까지 수집한 만큼 향후 보안 문제와 관련해 파장이 예상된다.

    월드코인 프로젝트는 가상화폐 지갑을 일종의 ‘디지털 신분증’으로 이용하겠다는 올트먼 CEO의 구상에서 시작됐다. 월드코인은 오브(Orb)라는 기기를 통해 가입 희망자의 홍채를 스캔한 후 이를 블록체인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가입이 진행된다. 오브에 입력된 홍채 정보는 코드로 변환되고, 이 과정에서 월드코인 애플리케이션(앱)에 로그인할 수 있는 아이디(ID)가 부여된다. 해당 ID와 연동된 코인지갑 역시 이때 함께 개설된다. 가입자는 월드코인 앱을 통해 매주 1개씩 월드코인을 받을 수 있다. 월드코인은 이더리움 기반의 밈 코인으로, 상반기 중 코인시장에 공식 출시될 전망이다. 월드코인 측에 따르면 6월 15일 기준 세계 각지에서 185만 명 이상이 홍채 정보를 등록해 월드코인 지갑을 개설했다.

    올트먼 CEO는 그간 월드코인을 통해 기본소득을 구현하겠다고 설명해왔다. 월드코인을 무상으로 지급해 AI 발달로 촉발되는 일자리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월드코인을 일종의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다만, 올트먼 CEO는 신원 확인을 이유로 가입자들에게 홍채 정보를 요구했다. 월드코인 측은 “(홍채) 이미지는 데이터 보관을 활성화하지 않는 한 장치에서 삭제된다”면서도 “관련 데이터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을 포함해 가입자가 위치한 국가 외부로 전송, 저장된다”고 공지해 의구심을 사왔다.



    문제는 올트먼 CEO의 당초 취지와 달리 텔레그램 등에서 음성적으로 월드코인 코인지갑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드코인 ID를 아이클라우드, 구글 계정을 통해 백업하고 이 계정을 매매하는 식이다. 사실상 홍채 정보를 거래하는 시장이 열린 셈이다.

    “케냐서 코인 작업장 돌린다는 얘기 공공연”

    한 외국인이 텔레그램에서 기자에게 월드코인 지갑을 판매하려 하고 있다. [최진렬 기자]

    한 외국인이 텔레그램에서 기자에게 월드코인 지갑을 판매하려 하고 있다. [최진렬 기자]

    월드코인 지갑 구매자들은 월드코인 측이 매주 지급하는 코인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다수의 계정을 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텔레그램에서는 케냐 등 각국 사람들이 월드코인 ID를 판매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기자가 들어간 한 텔레그램 단체방에서도 5100여 명의 각국 사람들이 코인지갑 매매에 참여해 흥정하고 있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 시민이나 중국 시민들이 개설한 ID가 미국, 한국 등 주요 선진국 코인투자자에게 판매되는 양상이 두드러져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 시민들의 생체정보를 매매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 해외 사기꾼 일당이 다수의 구글 계정을 하나의 월드코인 ID에 연동하는 방법을 뚫으면서 ‘거래사기’도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 이 모 씨(33) 역시 피해자 중 1명이다. 이 씨는 텔레그램에서 만난 한 케냐인을 통해 개당 5달러(약 6400원)를 주고 코인지갑 50개를 샀다. 이후 한 코인지갑을 이용해 거래했는데, 동일한 거래내역이 다른 코인지갑에도 기록된 것이다. 이 씨는 그제야 코인지갑들의 주소가 모두 동일한 것을 확인했다. 그는 “코인지갑을 개설하려면 홍채 정보를 등록해야 해 구하기가 까다로운데, 이 케냐인은 코인지갑 50개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니 바로 구해줘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가상화폐업계에서는 월드코인 측이 홍채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우려를 표시하는 시각이 많다. 가상화폐업계 한 관계자는 “케냐 등에서 월드코인 작업장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며 “정확한 사기 수법을 알 수는 없으나, 월드코인 앱이 다계정에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홍채 정보를 이용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보안에 취약점이 나타나 문제”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관련 법안이 부재한 만큼 개개인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현재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라 사안에 대한 법적 판단이 어렵다”면서도 “코인지갑 매매의 경우 그 성격상 사기일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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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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