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8

2021.05.07

SynchroniCITY

오스카 수상은 ‘인간 윤여정의 성공’ 같아요

개성 강한 배우, 그다운 수상에 희열

  • 안현모 동시통역사·김영대 음악평론가

    입력2021-05-10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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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동아DB]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 [동아DB]

    영대 칭찬이 자자하던데요?

    현모 뭐가요?

    영대 아카데미 시상식이요. 이동진 평론가와 함께 TV 중계를 하셨잖아요.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한 진행이 정말 호평 일색이었어요. 제가 베프(?)라서 드리는 말씀은 절대 아니에요.

    현모 하…, 그날 무지하게 힘든 환경이었는데. 할많하않. 말씀 감사합니다. 근데 영대 님은 음악평론가니까 궁금한 게 있어요.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은 H.E.R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주제가 ‘Fight For You’로 주제가상까지 수상한 건 어떻게 보셨어요?



    영대 음, 사실 H.E.R는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워요. ㅎㅎ 제가 몇 년째 가장 좋아하는 가수 중 한 명이거든요.

    현모 오오오! 이유는요?

    영대 올드 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음악이 굉장히 현대적이고, 요즘 음악에는 없는 맥락이 있다고나 할까. 그의 음악에 면면히 흐르는 블랙뮤직의 DNA, 그런 게 무척 좋더라고요. 다재다능하기도 하고요. 존재감 자체가 좋아요.

    현모 그럼 달리 할 말도 없겠네요. “H.E.R가 좋다. 끝.”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박해윤 기자]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박해윤 기자]

    영대 예전 트위터에 ‘I love her’라고 쓴 적도 있어요.

    현모 사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마이애미에서의 하룻밤’ 주제가 ‘Speak Now’의 수상을 예상했거든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자기 앞의 생’의 ‘Io Si’가 받았고요. 이런 주제가들은 보통 성가(anthem)적인 웅장함이 있잖아요. 근데 ‘Fight For You’는 워낙 보컬도 흥얼흥얼거리니까 주제가(theme song)보다는 약간 오프닝 곡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트럼펫이 빰빰~, 빰빰~ 하는 게 뭔가를 여는 거 같잖아요. ㅋ

    영대 저는 그 전형적이지 않은 느낌이 참 좋아요. 그게 곡을 만든 프로세스에서도 드러나요.

    현모 수상 후 다시 들어보니 노래가 아주 좋더라고요. 이게 사람 심리인가. ㅎㅎㅎ 어떤 프로세스인데요?

    영대 찾아보니까 이 곡은 베이스를 먼저 깔고 그 위에 드럼의 강렬한 소리를 입혔대요. 보통의 곡 쓰기와는 사뭇 다른 방식인데, 덕분에 언뜻 차분하면서도 동시에 파워풀해진 거 같아요.

    현모 원래대로라면 후보 곡들을 전부 시상식에서 라이브로 들었을 텐데. ㅠㅠ 이번에는 사전행사로 빠지는 바람에 국내에는 중계가 안 돼 너무너무 아쉬웠어요. 그러다 엉뚱하게 어제 ‘예스 데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초반 H.E.R에 관한 대사가 나오더니 갑자기 후반부에 아예 등장해 노래까지 부르더라고요. ㅎㅎ 깜놀!

    영대 그래도 우리가 싱크로니시티를 연재하면서 OST까지 극찬한 ‘소울’이 골든글로브에 이어 오스카에서도 장편애니메이션상에 음악상까지 받고, 각자 극장으로 달려가서 본 뒤 흥분하며 떠들었던 ‘미나리’가 좋은 성과를 내 재밌었어요.

    현모 맞아요. 올해는 전반적으로 공연이 없고 토크가 길어 ‘노잼’이었다는 평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후보 하나하나마다 과거 꿈 많은 아이, 고생한 초년병 시절을 돌아보고 추억하는, 시작은 미약했음을 상기케 하는 메시지들이 있어 저는 모두 좋았어요.

    영대 윤여정 배우의 수상도 하루 종일 난리였잖아요.

    현모 정말, 생중계할 때는 빨리빨리 지나가니까 얕게만 이해했던 수상 소감이 오히려 다음 날 자고 일어나니까 훨씬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면서 곱씹을수록 감동적이더라고요.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박해윤 기자]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 [박해윤 기자]

    영대 저도 윤여정 님의 성격과 삶의 교훈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는, 준비된 말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녹아든 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난해 ‘기생충’이 (작품·감독·각본·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했을 때는 작품에 대한 얘기가 주였는데, 이번에는 영화보다 오히려 윤여정 개인의 말과 행보가 관심사가 된 거 같아요.

    현모 봉준호 감독이 상을 받았을 땐 ‘영화인’의 성공 같았는데, 윤여정 님이 받았을 땐 ‘인간’의 성공 같은 거죠.

    영대 특히 나이 드신 분들에게 희망을 드렸다고 해야 할까.

    현모 맞아요. 오늘 부모님과 윤여정 님 이야기를 했는데, 어르신들이니까 이런 대중문화 현상에 어느 정도 시니컬하게 반응해도 저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텐데, 두 분 다 엄청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대단한 여자다, 똑똑한 여자다, 열심히 살면 된다는 걸 보여준 거다 등등. 그래서 저도 부모님에게 나이 때문에 의기소침할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어요. 시상식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의 잔치이고 연세 있는 분들은 뒷방 노인 취급을 받는데, 오스카상은 워낙 관록의 스타들이 빛을 내는 데다 올해는 특히 남녀주연상을 1937년생 앤서니 홉킨스와 1957년생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수상해 노장의 힘이 꽃피워 좋더라고요.

    영대 지금이야 윤여정 님에게 이런 환호가 쏟아지지만, 저 어릴 땐 너무 강한 개성과 연기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배우였어요. 사실은 그래서 더 대단해요. 그 배우가 한국 최초 오스카상 수상 배우가 됐다는 게.

    현모 정말 희망과 용기가 생긴 게 뭐냐면, 지금 당장 남들이 뭐라고 하느냐보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 윤여정 님은 다른 건 몰라도 ‘팀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대본을 열심히 암기’하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했거든요. 그렇게 자기 양심에 충실하면서 민폐 끼치지 않고 살면 되는 거 같아요.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캡처]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네이버영화 캡처]

    영대 무척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나리’에선 ‘진짜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실제 윤여정도 전형적이지 않은 여배우이자 인간. 근데 그런 사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고, 그마저도 대수롭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모습에 설명하기 힘든 희열이 있어요.

    현모 “우리는 각자 다른 영화에서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경쟁할 수 없다”는 말도 며칠이 지나도록 머리에서 맴돌더라고요.

    영대 명언이었죠. 현장에 있던 미국 배우들도 감격한 표정으로 바라봤잖아요.

    현모 생각해보면 영화배우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모두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다른 일을 하면서 다른 역할로 살아가잖아요. 그러니 유일무이한 나라는 롤(role)에만 최선을 다하면 될 뿐, 너와 나 사이에 어찌 우열을 따질 수 있겠어요.

    영대 따지고 보면 시상식 취지와는 반대되는 말인데, 무척이나 공감된다는 거죠.

    현모 시상식의 태생적 모순을 짚은 건데, 그렇다고 그게 비판도 무시도 아니고 모두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한마디였어요.

    영대 우아해요. 수상을 거부하는 것도, 상의 권위를 비판하는 것도 아닌, “감사하지만 이건 경쟁이 아니다. 나는 너희보다 우월해 받은 게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 뿐”이라는 말도 저에게는 우스갯소리로 들리지 않았어요.

    현모
    우리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순위나 등수를 매기고 경쟁을 통해 사람을 선발하는 그런 과정의 연속이지만, 그렇다고 그 결과로 나 자신을 평가해선 안 돼요. 그리고 나한테 100m를 달리는 게 남에겐 1000m를 달리는 일일 수도 있어요. 늘 하는 얘기지만, 비교는 정말 비인간적이에요.

    영대 시대가 바뀐 걸 느껴요.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에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언급하면서 미국인은 정작 의식하지 못하는 미국영화와 한국영화의 연결점을 알려줬거든요. 근데 올해 윤여정 님의 수상은 그 이상으로 나아갔어요.

    현모 어떻게요?

    영대 배우로서 진심으로 글렌 클로스가 상을 받길 바랐다고 말했잖아요. 동료의식인 거죠. 그들은 의식도 못 했던.

    현모 놀랍죠. 미국인은 정작 그 우물에서만 활동하니까 본인들의 파급효과도, 동료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라요. 근데 멀리서 사는 한국인이 자신을 줄곧 동료로 봐왔다는 것 자체가 글렌 클로스한테도 eye opening한(눈을 번쩍 뜨게 하는) 일이었을 거예요. 근데 그런 동료 간 유대를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 안에서만 북 치고 장구 치고 보여준 게 아니라, 한국에서 온 윤여정이 보여준 게 그야말로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영대 글렌 클로스의 동료가 제인 폰다나 메릴 스트리프만 있는 게 아니라, 저기 아시아 끝 사우스코리아에도 있었던 거죠. 감동적일 만해요.

    현모 어맨다 사이프리드가 수상 소감을 들으면서 윤여정 님에게 푹 빠져 “I love her”라고 말하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잖아요. 앗! “I love her”가 또 나왔네요.
    영대 제목 나왔네요. I love her and her. ㅎㅎ

    현모 근데, 우린 만나서도 이 주제로 대화했을 만큼 너무너무 진심인데,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니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으면 어쩌죠…. ㅜ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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