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3

2020.06.12

[진중권의 직설②] 민주당 서사도 종말, 보수는 '전조등' 돼야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0-06-09 15: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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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0․26은 산업화 신화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사진은 ‘남산의 부장들’ 영화 포스터. [쇼박스 제공]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10․26은 산업화 신화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사진은 ‘남산의 부장들’ 영화 포스터. [쇼박스 제공]

    옛날에 ‘국시’라는 것이 있었다. 그 시절 한국은 ‘반공’을 위해 존재했다. 한 야당의원이 그건 국시(國是)가 아니라 국비(國非)라고 주장했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군사정권 시절 대한민국이 그저 ‘반공’이라는 부정적 가치에만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 정권이 18년간이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소수 엘리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기 때문일 게다. 그 지지의 물적 토대는 물론 눈부신 산업화의 업적이었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10·26은 산업화 신화의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박정희 시해는 이제 국가 주도 경제개발 모델이 한국 사회에서 더는 기능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국가 개입이 순기능을 한다. 하지만 시장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 궤도에 오르면 국가 주도 경제정책이 외려 역기능을 내게 된다. 여기서 비롯된 경제적 불안은 정치적 불안으로 표현되고, 그것이 독재기구 내부의 알력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온 것이다. 

    신군부 집권 이후 한국 경제는 국가가 아니라 시장이 주도하는 형태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때마침 찾아온 3저 호황 덕에 경제는 고도성장을 계속했고, 88 서울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 가치도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여전히 ‘대마불사’ 신화를 믿고 외연적 성장에만 치중하다 결국 김영삼 정권 말기에 이르러 외환위기 사태를 맞게 된다. 내포적 성장모델로의 전환에 실패한 채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성급히 ‘세계화’를 추진한 결과였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한국 사회는 결정적 전환을 맞는다. 이 시기에 한국은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급속히 이행한다. 당시 정권이 내건 ‘지식기반경제’라는 구호는 경제가 물질적 대상의 생산이 아니라, 무형의 정보(‘지식’)의 생산으로 전환했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당시 벤처 붐은 우리 경제의 10년 먹을거리를 창출해냈다. 요즘 성공한 인터넷기업은 시가총액에서 웬만한 대기업을 능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대통령이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이 된 인물로,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e지원 시스템으로 역시 세계 최초로 전자정부를 구현한 바 있다. 사회구조가 조직(organization)에서 네트워크(network)로 바뀌면 소통 방식 역시 수직에서 수평으로,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의의는 이 새로운 물적 토대에 적합한 새로운 소통양식을 발명한 데 있다.



    백 투 더 패스트

    하지만 이 두 정권하에서 국민의 경제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완전고용은 불가능해졌고, 그동안 사회복지를 대신하던 평생고용의 암묵적 약속도 사라졌다. 복지를 조금 강화하는 것으로 이를 보충할 수는 없었다. 특히 참여정부는 ‘삼성공화국’으로 불릴 정도로 경제문제에서는 대재벌에 의존했고, 그렇게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만 하다 결국 자기 지지층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그 불만으로 보수는 재집권에 성공한다. 

    하지만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권에게는 불행히도 한국이 정보사회로 변모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747공약’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여전히 1970년대 토목경제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재정을 투입해 토목공사를 벌여 고도성장을 이루면 고용 창출과 낙수효과가 발생한다는 믿음이다. 문제는 한국 경제가 성숙해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는 데 있었다. 박정희 시절로 돌아간 그는 4대강 사업으로 결국 22조 예산만 축내고 만다. 

    그럼에도 보수가 재집권에 성공한 것은 진보의 어젠다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당 상징색이 붉은색으로 바뀔 정도였다. 당시 박근혜 캠프는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남긴 과제의 해법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를 진지하게 실천에 옮길 의지가 없었다는 데 있다. 비전이 아예 없었던 박근혜 정권은 정치적 상부구조마저 3공 시절로 되돌려놓고는 문고리 3인방에 의존해 밀실정치를 하다 탄핵되고 만다. 

    보수는 박정희의 대안서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이 갖는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고, 그 전환을 이끈 정권들이 남긴 과제를 인지하지도 못했다. 서사 부재를 과거의 향수와 반북 이데올로기로 채우다 시대 흐름에서 뒤처져버렸다. 이런 시대착오 속에서 반북선동에 세뇌된 지지자들을 데리고 안으로는 자기 점검을 못하고, 밖으로는 상대에 대한 비판조차 제대로 못하는 총체적 무능에 빠져버린 것이다.

    디지털경제와 신주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도입한 버스전용차로제.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도입한 버스전용차로제. [동아일보 전영한 기자]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이행하면서 양당 지지층에도 구조 변동이 일어났다. 현존하는 인터넷기업의 다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에 설립됐다. 그 밖의 여러 기업에서 디지털경제를 이끄는 ‘경제계 386’은 ‘정치계 386’에 친화적이다. 그들 역시 과거 학생운동을 했거나, 적어도 그 분위기의 세례를 받으며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제 586이 돼 이 나라 경제의 주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 사회 주류가 교체된 것이다. 

    최근 터지는 비리 양상만 봐도 이런 변화를 알 수 있다. 과거 토목경제 비리는 주로 인허가(LCT)나 담합(4대강)과 관련돼 있었다. 반면 최근 비리는 VIK, 신라젠, 라임펀드 등 산업자본주의가 아니라 금융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다(이철 전 VIK 대표는 친노무현 인사들을 데려다 회사에서 인문학 강의까지 열었다). 최근 구설에 오른 또 다른 비리들은 태양광이나 배터리 등 디지털경제 신사업과 관련돼 있다. 

    586세대는 정치, 경제, 언론, 학계 등 모든 영역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며, 시민단체마저도 지배블록의 하위 파트너로 포섭한 상태다. 이들은 혈연, 지연, 학연으로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의 망을 이뤄 사회 기득권층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조국 사태 때 필사적으로 그를 비호한 것도 이들이다. 자기들도 그와 다르지 않게 살아왔기에, 그의 위기를 본능적으로 자기들 집단이해에 대한 위협으로 느꼈던 것이다. 

    이들이 한국의 신(新)보수층이다. ‘에이징 효과’로 이들 역시 나이가 들면서 급속히 보수화했다. 하지만 ‘코호트 효과’에 의해 머리로는 여전히 자신을 그 시절 진보로 ‘오인’한다(조국은 국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말했다). 이들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나 재벌정책 등 중요한 사안에서는 보수층과 견해를 같이한다. 그런데도 보수는 이들 신보수층을 ‘좌파’로 몰아 적대시하다 통째로 놓쳐버린 것이다.

    보수의 대안서사

    그동안 보수에서 대안서사 역할을 한 것은 ‘줄·푸·세’ 공약이었다. 복지와 분배에서 정부 역할을 줄이고, 기업을 위해 규제를 풀며, 거기서 터져 나올 불만은 법으로 엄중히 다스리겠다는 얘기. 하지만 낙수효과가 있을 때면 몰라도 그것이 사라진 지금, 일방적인 친기업정책으로 양극화에 시달리는 서민층을 사로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중상층과 서민층 모두에게 소구력을 잃고, 지역주의에 의존하는 TK(대구·경북) 자민련(자유민주연합) 신세가 된 것이다. 

    이는 사실 박정희 시절보다 못한 것이다. 보수는 박정희에게서 고도성장만 보지만, 사실 그는 그것보다 훨씬 다면적이었다. 적어도 박정희는 ‘국가의 역할’을 잊지 않았다. 그는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도입하고, 고교평준화를 실시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설립한 것도 그였다. 적어도 평등의 가치와 미래 비전, 즉 복지국가와 기술입국의 비전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신자유주의에 권위주의를 결합한 것으로 축소시켰다. 

    독일에 사회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한 이는 우익인 비스마르크였다. 확산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항하고자 좌익의 어젠다를 선점해 제 것으로 소화해버린 것이다. 그 제도는 지금까지도 작동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한때는 좌파정책을 채택할 정도로 실용적이었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에 도입한 버스전용차로제는 지금도 잘 운용된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 성공에 도취한 나머지 온 국토에 ‘공구리’(콘크리트)나 치다 망해버렸다. 

    산업화 세대는 그래도 민주화 세대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파트도 줬다. 하지만 그렇게 주류가 된 민주화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그저 제 ‘자식’에게만 재산과 지위를 물려줄 생각만 하고 있다. 현 젊은 세대가 해방 후 최초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산업화 서사만이 아니라 실은 민주화 서사도 종말을 고했다. 지금 그것은 586세대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장치로 오용되고 있다.

    과거 향수에서 미래 기획으로

    진중권 전 교수는 ”보수는 어둠을 향해 앞으로 빛을 던지는 전조등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시스]

    진중권 전 교수는 ”보수는 어둠을 향해 앞으로 빛을 던지는 전조등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뉴시스]

    보수는 진보가 실패한 지점에서 대안서사를 써야 한다.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보수의 핵심 가치”로 자유와 공정, 책임, 의무와 헌신을 든다. 스스로 한 번도 실천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다. 보수의 가치가 뭔지 모르겠다. 다만 보수주의자라면 ‘국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국가는 전쟁만이 아니라 빈곤으로부터도 국민을 지켜야 한다. 국민 한 명이라도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것은 안보에 실패한 것이다. 

    앞으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창의적 소수에게는 무한한 기회겠지만, AI(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대다수에게는 실존 위기로 다가올 테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논쟁 역시 그런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그 버릇 개 못 주고 거기에 ‘사회주의 배급제’라는 딱지를 붙인다. 답이 없다. 남의 상상력에 ‘빨간’칠을 할 게 아니다. 그것을 선점해 제 색을 칠하면 그만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시대정신을 잃었다. 논리적, 윤리적, 미학적으로 파탄에 빠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제외하면 정책적 상상력을 가진 이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후의 정치적 기획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기득권을 가졌기에 변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 앞에는 아직 가보지 않아 깜깜한 미래가 놓여 있다. 보수가 과거로 눈을 돌리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보수는 그 어둠을 향해 앞으로(pro) 빛을 던지는(ject) 전조등, 즉 기획(project)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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