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4

2019.08.30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수제맥주와 와인이라도 인터넷 판매 허용을!

홈술 트렌드 커지는데 ‘청소년 보호’ 명분으로 막혀 있어

  •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19-09-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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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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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출발한 배달 서비스가 파죽지세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는 ‘뚜레쥬르’ 빵도, ‘올리브영’ 화장품도 배달받을 수 있다. 몇몇 구립도서관은 아예 책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여기에 더해 ‘정기배송’ 시장도 넓어지는 추세다. 이제는 집에서 제철과일, 꽃, 건강보조식품, 셔츠, 그림 등을 매주 혹은 매달 정기적으로 ‘구독’할 수 있다. 

    그런데 유독 배달 분야에서 흐지부지한 품목이 하나 있다. 바로 주류다. 현재 전통주만 인터넷(통신) 판매가 허용된다. 맥주나 소주를 인터넷으로 배달시켜 먹으려면 반드시 치킨이나 회 등 ‘음식에 부수’해야 한다. 왜 술은 인터넷 판매에 규제가 많은 걸까.

    전통주와 지역 특산주만 인터넷 쇼핑몰 판매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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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 주류의 인터넷 판매가 처음 허용된 것은 10년 전이다. 2009년 8월 정부가 △우리 술 품질 고급화 △전통주 복원 △대표 브랜드 육성을 통한 세계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우리술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통주 제조자의 인터넷 판매를 허용했다. 전통주 인터넷 판매가 우리 술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듬해에는 우체국쇼핑몰 등 국가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전통주를 판매할 수 있게 했다. 2017년 6월에는 일반 온라인 쇼핑몰 등으로 판매처 폭을 넓혔고, 은행 공인인증서로만 할 수 있던 성인 인증을 휴대전화 인증으로도 가능하게 하는 등 간소화 정책이 도입됐다. 

    이로써 현재는 쿠팡, 11번가 같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에서 막걸리, 소주, 약주 등 다양한 전통주를 구입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전통주에는 장수막걸리나 백세주 같은 ‘기업 술’은 포함되지 않는다. 무형문화재나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 또는 지역 농민이 해당 지역 농산물로 만든 지역 특산주만 해당된다. 주로 작은 양조장이나 소기업에서 나오는 술만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류는 청소년 음주 문제와 탈세 이슈로 인해 인터넷 판매가 금지돼 있다. 전통주에 한해 인터넷 판매를 허용한 이유는 전통주의 마케팅 수단이 지극히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체 주류시장의 1%도 차지하지 못하는 전통주 산업을 위한 배려 성격인 것이다. 



    그런데 주류의 인터넷 판매 금지에 대한 반박의 목소리가 최근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성인 인증을 통해 청소년의 주류 구입을 막을 수 있고, 온라인 유통에서도 세금계산서를 정확히 발행하기 때문에 탈세 문제도 걱정할 게 아니라는 얘기다. 

    ‘맥주 배달’이 일부에 한해 합법화된 때는 2016년 7월이다. 국세청은 음식과 함께 주문할 경우 주류를 배달시킬 수 있고, 음식점에서 파는 맥주를 외부에 반출할 수 있도록 주류 고시 개정안을 발표했다. 이로써 야구장에서 ‘맥주 보이’가 활약할 수 있게 됐으며, 짜장면이나 치킨을 주문할 때 술도 함께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치킨집은 되지만 스타트업은 안 돼

    그리고 최근 들어 수제맥주업체들이 ‘수제맥주 배송’ ‘당일 배달’ 등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간단한 안줏거리와 함께 수제맥주 4병을 골라 배송시키는 서비스, 과일안주와 함께 수제맥주를 정기적으로 배송받는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세청이 최근 이러한 서비스가 애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직접 조리한 음식과 함께 술을 배달하는 것만 가능하다’고 고시를 개정해 결국 수제맥주 배달 서비스는 거의 무기한 휴업을 하게 됐다. 

    문제는 직접 조리한 음식과 맥주를 ‘정기구독’ 형태로 판매할 경우에도 고시 위반이 된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벨루가는 2017년 일반음식점, 의제주류판매업 면허 등 합법적인 사업에 필요한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음식과 함께’라던 주류 배달 관련 고시 조문이 몇 달 후 ‘음식에 부수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에 벨루가는 ‘주류 정기배달’이 아니라 ‘야식 정기배달’ 서비스로 사업 캐치프레이즈를 바꿨다. 하지만 국세청이 벨루가에 “주류 배달을 허용한 것은 ‘치맥’ 등을 원하는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일반적인 배달음식점과 다른 형태로 회원을 모집해 선(先)결제를 받고 정기적으로 배달하거나 주류 위주로 마케팅을 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최종 통보했다.

    아마존도 와인 배송하는데…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의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는 맥주와 와인을 인터넷 주문 1시간 내에 배달받을 수 있다. [AP=뉴시스, shutterstock]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의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는 맥주와 와인을 인터넷 주문 1시간 내에 배달받을 수 있다. [AP=뉴시스, shutterstock]

    맥주 배달 관련 규제는 계속 완화되는 추세이긴 하다. 7월에는 생맥주도 배달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됐다. 그동안은 캔맥주나 병맥주, 소주 같은 ‘완제품’으로 한정해 배달이 가능했다. 일부 업체가 페트병에 맥주를 담아 배달하기도 하고, 요식업계가 음식 판매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점이 고려된 것이다. 그러나 맥주 관련 스타트업이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기에는 여전히 규제가 많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음식에 부수한’ 주류 배달의 규제 완화 폭을 좀 더 넓힌다면 전통주 시장 또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본다. 최근 전통주가 다양해지고 소비층이 확대되는 흐름에 발맞춰 전통주와 음식배달을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가 창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맥주뿐 아니라 와인업계도 불만이 많다. 해외에서는 와인 배달 서비스가 보편화하는 추세다. 피자헛은 미국 서부 피닉스에서 피자와 함께 맥주를 배달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와인 구독 서비스도 제공한다. 매달 와인 시음 안내서와 새로운 와인 3병을 보내주는 것이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도 2012년부터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주문 1시간 내 맥주 및 와인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과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서도 소비자는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와인을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한 와인을 각 가정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만 허용된다. 엄경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장은 “와인의 인터넷 판매 및 정기구독 서비스가 허용된다면 스타트업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뿐 아니라 와인 가격의 거품을 걷어내 소비자들도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의 인터넷 판매 및 정기구독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막는다고 막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집에서 술을 마시는 혼술·홈술 문화, 소유보다 경험을 중요시하며 늘 새로운 것을 찾는 소비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원하고, 그러한 수요를 바탕으로 스타트업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도록 도와주는 것도 국가가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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