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1

2018.03.28

정치

개헌 찬성률 ▼, 수도 규정 신설 반대 ▲

청와대發 개헌안,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 미흡…여야 갈등 불가피

  • 입력2018-03-27 11:3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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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참석자들과 도시락으로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월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차관 워크숍에서 참석자들과 도시락으로 만찬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청와대]

    청와대가 3월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헌법 개정안을 공개하면서 개헌을 매개로 한 여론전에 나섰다.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라는 목표를 정해놓고 개헌을 밀어붙이는 청와대에 대해 야당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국회 표결을 통과해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을 목표로 했다기보다 지지부진한 여야 개헌 논의 및 합의를 촉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 국회 의석수 분포상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한국당)이 반대하면 국회 표결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3월 22일 현재 국회 의석수는 더불어민주당(민주당) 121석, 자유한국당 116석, 바른미래당 30석, 민주평화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 1석, 대한애국당 1석, 무소속 4석 등 총 293석.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소속 의원이 모두 청와대 개헌안에 찬성해도 재적의원 3분의 2인 200석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개헌안 국회 통과의 키를 116석의 한국당이 쥐고 있는 셈이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개헌 투표를 하면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의원을 제명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당 차원에서 개헌안 국회 표결을 보이콧하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75.4→69.4→62.1%

    지금까지 개헌에 대한 국민 여론은 반대보다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다만 지난해 대선 직후 75%를 넘던 개헌 찬성 여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소 하락한 모습이다. 국회의장실에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세 차례 실시한 개헌 관련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조사 때는 응답자의 75.4%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9월 조사 때는 69.4%로 줄었고, 12월 조사 때는 62.1%로 낮아졌다.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여전히 절반을 넘고 있지만, 응답률 추이를 보면 뚜렷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국회 한 관계자는 “대선 과정에서는 개헌에 대한 반대 의견이 많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한 이후 이견이 두드러지면서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국민이 늘어났다”고 풀이했다. 

    개헌 찬성 여론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개헌안 발의를 통해 개헌에 대한 국민 여론을 환기했다. 그러나 청와대 발의 개헌안에는 여야 합의가 가능한 내용보다 여야가 대립해온 내용이 더 많이 담겨 있어 앞으로 논란이 커질 개연성이 높다. 기본권 강화, 지방분권과 자치 확대 등은 여야 사이에 이견이 크지 않다. 그러나 동일 가치 노동-동일 임금 규정과 토지 공개념 도입, 경제민주화 조항은 여야 지지층 간 견해 차이가 커 쉽게 합의하기 어려운 쟁점이다. 개헌 관련 여론조사를 분석한 국회입법조사처의 허석재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합의 쟁점이던 사안도 실제 개헌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찬반이 나뉘며 대립 쟁점으로 바뀔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여야 간, 대통령과 국회 간 합의 도출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여야는 개헌 국민투표 실시 시점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은 개헌 국민투표를 지방선거 때 하는 것이 행정적, 재정적 비용을 절감하는 길이라고 강조하는 반면, 한국당은 동시 실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6월 말 개헌안 마련, 9월 국민투표 실시를 주장한다. 개헌 국민투표 실시 시점을 두고 여야, 대통령과 국회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결국 개헌은 불발로 그칠 개연성이 높다.



    국민 기본권 강화에는 의견일치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3월 2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3월 20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헌 추진 시점 외에도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는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쟁점이 여럿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도록 한다’는 규정이다. 조국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은 3월 21일 “국가 기능의 분산이나 정부 부처 등의 재배치의 필요도 있고, 나아가 수도 이전의 필요성도 대두될 수 있으므로 이번 개정을 통해 수도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헌법에는 대한민국 수도에 대한 규정이 없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건설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때 “서울이 대한민국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 새로운 수도 설정의 헌법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실효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의 효력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결국 헌법에 수도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수도를 옮길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개헌 관련 여론조사에서 ‘수도 규정’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 응답이 낮아지고 있다. ‘헌법에 수도 규정을 새로 만들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이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월 조사 때는 49.9%가 찬성, 44.8%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9월 조사 때는 찬성 47.5%, 반대 47.1%로 찬반 여론이 팽팽했고, 12월 조사 때는 찬성 37.4%, 반대 52.7%로 오히려 반대 여론이 더 높아졌다. 즉 청와대의 ‘수도 규정’ 신설은 지난해 12월 여론조사 결과와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 개정 세부 내용 가운데 생명권과 안전권, 성평등권 등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데는 다수 국민이 찬성했다. 또한 국민의 참여와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한 직접민주주의 강화에 대해서도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92%가 기본권 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직접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법률안이나 헌법 개정안을 제안하는 국민발안제 도입에 대해서도 85%가 찬성했다. 단, 국민발안제의 경우 이념과 정파에 따라 의견 차가 커 향후 개헌안 논의 과정에서 갈등 원인으로 부각될 수 있다. 

    지난해 7월 한국리서치 조사 때 국민발안제 도입에 대해 민주당 지지층은 93.6%가 찬성한 반면, 한국당 지지층에서는 찬성 70.7%, 반대 29.3%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여야 입장 차가 큰 세부 내용 가운데 하나가 동일 가치 노동-동일 임금에 관한 것이었다. 민주당 지지층은 78.8%가 찬성한 반면, 한국당 지지층은 57.3%만 찬성했다. 

    청와대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정부 형태 개편 방향도 제시했다. 조국 민정수석은 3월 22일 “1987년 개헌 시 5년 단임제를 채택한 것은 장기간 군사독재의 경험 때문이었다”며 “대통령 4년 1차 연임제가 다수 국민의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세 차례 실시한 개헌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가 선출한 총리가 공동으로 국정을 책임지는 혼합형 정부 형태에 대한 선호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 대통령제 선호도가 38.7%인 데 반해, 혼합형 정부 형태 선호도는 46.2%였다. 의원내각제라고 답한 응답자는 11.2%에 그쳤다.

    선택지 따라 정부 형태 선호도 달라

    세종시 전경. 청와대는 헌법 개정 때 수도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서울 이외 지역으로 수도를 옮길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만들려 하고 있다. [동아DB]

    세종시 전경. 청와대는 헌법 개정 때 수도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서울 이외 지역으로 수도를 옮길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만들려 하고 있다. [동아DB]

    개헌 관련 여론조사는 국민이 선호하는 정부 형태를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응답이 크게 엇갈렸다.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분권형 대통령제로 구분해 질문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46% 대 25%로 4년 중임 대통령제 선호가 높았다. 즉 대통령제-의원내각제-혼합형으로 묻느냐, 아니면 4년 중임 대통령제-5년 단임 대통령제-의원내각제를 선택지로 묻느냐에 따라 응답이 크게 엇갈린 것이다. 

    청와대가 대통령 4년 1차 연임제가 다수 국민의 뜻이라고 한 것도 맞지만, 선택지를 달리해 질문할 경우 다수 국민의 뜻이 ‘혼합형 정부 형태’가 된다는 점에 비춰보면 국회에서 여야가 개헌안을 논의할 때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 

    국회가 지난해 7월과 9월, 12월 세 번에 걸쳐 실시한 개헌 관련 여론조사를 종합한 이념별 정부 형태 선호 추이를 보더라도 진보, 중도, 보수 가릴 것 없이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를 혼합한 정부 형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진보 진영에서는 12월 조사 때 대통령제를 좀 더 선호했다. 

    물론 대통령제에 대해 현행 5년 단임제냐, 4년 중임제냐를 구분해 질문하면 4년 중임 대통령제 선호도가 크게 앞섰다. 조국 민정수석은 “일각에선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요구하며 국무총리를 국회에서 선출 또는 추천하도록 하자는 논의가 있다”며 “만약 여소야대 상황이 돼 대통령과 국회에서 선출 또는 추천한 총리가 정당을 달리한다면 이중권력 상태가 계속돼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대통령-총리 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다만 청와대는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자 헌법 개정 때 몇 가지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국가원수로서 지위’를 삭제하고, 특별사면 행사 때 사면위원회 심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며, 대통령 인사였던 헌법재판소장을 헌법재판관 중 호선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또한 현행 헌법에 ‘대통령의 명을 받아’로 돼 있는 문구를 삭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국무총리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결국 총리 인사권은 행사하되 총리 권한과 역할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게 청와대 개헌안의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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