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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같은 멤버, 한자리 지킨 한국 유일의 밴드

크라잉넛 20주년 기념 콘서트

같은 멤버, 한자리 지킨 한국 유일의 밴드

같은 멤버, 한자리 지킨 한국 유일의 밴드
“숭고한 밤이네. 숭고해.”

6월 20일과 21일, 서울 홍대 앞 레진코믹스 브이홀에서 열린 크라잉넛 콘서트가 끝난 후 밴드 더 모노톤즈의 차승우는 내뱉듯 말했다. 그럴 만했다. 여느 공연이 아니었다. 20주년 기념 공연이었다. 결코 짧다고 말할 수 없는 세월의 더께를 축복이라도 하듯, 공연 막바지 ‘밤이 깊었네’를 연주할 때 그들의 친구 음악인들이 모두 무대로 올라왔다. 함께 합창하고 기타리스트 이상면을 번쩍 들어 올렸다. 한 명 한 명씩 객석으로 집어던졌다. 관객들은 그 몸을 거부하지 않았다. 보디서핑의 향연이었다. 숫자로만 만들어진 20주년이 아닌, 크라잉넛이 한국 인디 신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크라잉넛의 역사는 곧 한국 인디 신의 역사다. 유치원 때부터 동네 친구였던 그들은 1995년 홍대 앞의 문을 두드렸다. 그해 4월 5일 커트 코베인 사망 1주기를 맞아 음악 술집에서 라이브클럽으로 변신하기 시작한 ‘드럭’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악기도 없었지만 좋게 말해 패기, 세게 말해 ‘똘끼’면 충분했다. 섹스 피스톨즈, 더 클래시를 커버하던 그들은 곧 자작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달리자’다.

드러머 이상혁이 ‘아저씨’라 불리던 드럭 사장 이석문과 싸운 후 만든 이 노래는 한국 인디 신 최초의 히트곡이 됐다. 공연에서만 부르던 ‘말달리자’가 녹음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1996년 음반사전심의 철폐 덕이었다. 생각해보라. ‘닥쳐’라는 단어가 노골적이고 강하게 씹듯 내뱉어지는 가사를 서슬 퍼런 심의 치하에서 감히 쓸 수나 있었겠나.

1996년 여름 발매된 한국 최초의 인디 앨범 ‘아워 네이션’에서 첫선을 보인 ‘말달리자’는 97년 말 발매된 정규 1집에 다시 실렸고, 곧 홍대 앞 ‘송가’에서 전국 노래방 엔딩곡이 됐다. 어떤 문화적 흐름이든 그 이전의 그것과 구분 짓게 하는 요인은 히트 상품이다. ‘말달리자’를 크라잉넛의 역사뿐 아니라 초기 한국 인디 신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이유다.



2001년 ‘하수연가’에 담긴 ‘밤이 깊었네’로 다시 한 번 전국구 히트곡을 낸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멤버 교체를 하지 않았다. 모든 앨범과 모든 기사에서 박윤식, 이상면, 한경록, 이상혁의 이름은 바뀐 적이 없다. 드럭에서 만난 김인수가 2집부터 키보디스트로 합류했을 뿐이다. 한국에 밴드라는 개념이 들어온 이래 20년간 멤버 변동이 없는 경우는 자우림과 크라잉넛 오직 둘뿐이다. 해외에서조차 드문 사례다. 크라잉넛이 존중받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같은 멤버, 한자리 지킨 한국 유일의 밴드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년간 그들은 홍대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유명해져도 그들은 홍대 앞 라이브클럽을 지켰다. 1998년 8월 15일 공중파에 첫 출연했던 바로 그날 생방송을 마치고 드럭에서 다시 공연을 했던 때는 물론, 대형 록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홍대 앞에 활기가 사라졌던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너트 쇼’는 저평가 신인의 등용문이나 마찬가지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로부터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그들은 신인을 함께 무대에 올려 꽉 찬 객석에 소개했다. 이번 20주년 공연에도 그들이 함께했다. 한자리를 지키며 권위 대신 동료 의식으로 긴 세월을 달려온 밴드는 한국에 오직 하나다. 그들이 바로 크라잉넛이다. 숭고하다는 말, 결코 거부할 수 없었다.



주간동아 2015.06.29 994호 (p77~77)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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