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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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U-턴 아시아 외환위기 빨간불

태국·말레이시아 위태위태, 인도네시아·필리핀 아슬아슬

  •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chjss@hri.co.kr

    입력2015-04-13 11: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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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화 U-턴 아시아 외환위기 빨간불

    태국 푸껫 파동의 한 환전소.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후폭풍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그에 따른 구조조정, 자산 가격 급락, 실업자 급증 같은 사회 혼란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위기 이전 한국과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외자 도입 확대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급증하면서 자산 가격이 급등했고 환율은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상태였지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일본도 소비세 인상 등 통화 긴축으로 선회하면서 투자자금이 급격히 유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아시아 국가들은 통화 가치 급락에 맞서 환율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고정환율제 하에서 외환보유고가 빠르게 소진되자 위기는 오히려 본격화됐다. 단기외채 상환 압력이 가중되면서 아시아 국가들은 파산 위기에 몰렸고, IMF 구제금융 등을 통해 가까스로 회생할 수 있었다.

    이후 아시아 국가들은 꾸준한 구조조정으로 경쟁력을 높여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 경제의 버팀목 노릇을 했고, 외환보유고를 늘려 대외안전망도 확충해왔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금융시장에는 다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2013년 1월 대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32%, 말레이시아 링깃화는 18.4% 떨어진 것이 그 신호탄이다.

    여기에는 2007년 이후 글로벌 유동성(주요 통화가 해외 비금융기관에 대출이나 채권 발행 형식으로 공급한 신용의 총합)이 4조3000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 달러화의 신용 공급만 3조5000억 달러 규모로, 그 상당 부분이 수익성이 높은 아시아 신흥국으로 유입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회의에서 연내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그간 유입됐던 달러화 유동성이 회귀(U-turn)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시아 외환위기의 재발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다. 특히 엔화 약세 등 최근 글로벌 경제 상황이 1997년 위기 발발 직전과 흡사하다는 사실도 불안감을 키운다.



    위기 발생 가능성과 방어 능력

    먼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국가로 유입된 외국인 투자자금의 규모가 워낙 엄청나다. 중국의 경우 2008년 2707억 달러(국제투자대조표상 외국인 투자 가운데 포트폴리오 투자와 기타 투자 중 대출의 합)에서 2014년 3분기 1조870억 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 들어온 투자금도 급증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나라들은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달러 유동성 유입이 급증한 나라를 모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위기 발생 가능성과 방어 능력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아시아 각국의 최근 상황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먼저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가 어디인지부터 따져보자. 19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던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 금리 격차 축소, 고평가된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 등의 지표를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투자자금 유입은 중국과 인도에 집중되고 있고 태국은 2년 연속, 말레이시아도 2014년 투자자금이 유출됐다. 특히 올해 들어 아시아 7개국 중 중국, 한국 등 5개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미 국채와의 금리 스프레드가 축소돼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

    환율과 경상수지를 보면, 중국의 실질실효환율은 2010년 환율을 100으로 놓았을 때 2012~2014년 평균 114.4를 기록하고 있고 필리핀과 태국, 한국 역시 100보다 높다. 전체적으로 외환위기 이전처럼 고평가된 상태라는 뜻이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경상수지가 1997년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달러화 U-턴 아시아 외환위기 빨간불
    다음은 위기 방어 능력이다. 이를 평가하려면 1997년 당시 외환위기를 키운 외채 규모와 적정 외환보유고, 거시경제 안정성 등을 살펴봐야 한다. 먼저 아시아 7개국의 외채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모두 급증했다. 말레이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 외채 비중은 2014년 3분기 69.6%로 97년 47.1%보다 높고, 태국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상승했다. 특히 위기가 발생할 경우 상환 압력이 커지는 단기외채가 전체 외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심각하다. 중국은 이 비율이 약 80%에 달하고,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97년보다 높다.

    3개월 수입액과 단기외채로 추정한 적정 외환보유고의 경우, 말레이시아가 2014년 3분기 기준으로 적정 수준에서 202억 달러 부족하다. 대외안전망이 취약한 상태라는 의미다. 그나마 거시경제 안정성이 높으면 위기 방어 능력이 커지지만, 필리핀을 제외한 아시아 6개국의 최근 경제성장률은 1997년이나 2008년 위기 이전보다 낮다. 인도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GDP 대비 재정적자가 3%를 넘어 이전 위기 때보다 높은 상태다. 이처럼 재정 여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위기가 재발한다면 경제 회복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종합성적표를 매겨보니

    이제 종합성적표를 매겨보자. 지금까지 살펴본 위기 발생 가능성과 방어 능력이라는 두 가지 지표를 활용해 아시아 7개국의 평균값을 매긴 다음, 1997년과 2008년 위기와 비교해 100점 만점으로 환산, 평가하는 방식이다(그래프 참조). 부문별 환산점수가 낮을수록 위기 발생 가능성이 크고 방어 능력은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위기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로는 투자자금이 유출되는 데다 환율마저 고평가 상태인 태국과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꼽을 수 있다. 방어 능력이 낮은 국가로는 외채 수준이 높고 외환보유고가 부족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외환위기가 재발할 수 있는 고위험 국가에 태국과 말레이시아, 중위험 국가에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이 포함된다. 위기 발생 가능성도 낮고 방어 능력도 높은 편인 중국과 인도, 한국은 상대적으로 저위험 국가에 속한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현실화해 달러화 유동성이 아시아 국가에서 빠르게 회귀할 경우, 이들 중위험 국가와 고위험 국가는 한층 강한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2400억 달러에 이르는 CMI(치앙마이 이니셔티브) 기금이나 중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체결한 통화스왑 등이 위기 확산을 막는 방어망 구실을 하겠지만, 충분할지 여부는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위기가 재발할 경우 한국도 투자자금 유출을 비롯한 금융시장 불안을 피해갈 수 없다. 이들 위험 국가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적정 수준의 외환보유고를 확보하는 등 대외안전망을 더욱 튼튼히 하는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금융기관의 글로벌화를 통해 아시아 금융허브로 발돋움함으로써 글로벌 자금 투자처로서의 매력도도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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