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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영화 ‘인터뷰’가 어이없는 이유

‘반미 교재’로 이용당할 수도…변화 원하면 조롱 아닌 진실 전해야

  •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zsh75@donga.com

영화 ‘인터뷰’가 어이없는 이유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 암살을 소재로 해 유명해진 영화 ‘인터뷰’를 두 번 봤다. 북한이 극렬하게 반발하고, 영화 DVD를 북한에 보내려는 움직임도 있다기에 탈북자 시각에서, 그리고 북한 지도부와 주민 시각에서 영화를 분석하고자 했다. 하지만 몇 분 뒤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영화로, 한국에서 상영해도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판단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소니픽처스 엔터테인먼트 해킹으로 유출된 내부 문서에 보면, 제작사가 전 세계 경영진에게 영화를 보여줬더니 ‘실패작’ ‘재미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소니픽처스 한국지사 경영진은 “정치적 민감성, 문화어(북한의 표준어) 고증, 배우 연기” 등을 문제 삼았다. 영화 제작비와 홍보비로 7900만 달러(약 868억 원)를 투자했다는데 돈이 아깝다.

또 ‘이 영화를 북에 보내겠다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김정은이 부화방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김정은 암살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것도 아니라면, 미국이 김정은을 조롱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영화는 역효과만 낳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작자의 무지 드러내

북한 당국이 펄쩍 뛰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나라든 자기 지도자가 해외 저질 코미디물의 조롱 대상이 된다면 기분 나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북한에서 김정은은 절대 조롱받아선 안 될 ‘신’이 아닌가. 그런 신이 미국인이 쏜 포탄에 맞아 머리가 날아간다는 설정이라면 북한 지도부의 반응이야 어차피 예고된 일이다.



2012년 9월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무슬림의 순진함’이란 제목의 이슬람 비하 영상물이 올라왔던 일을 떠올려보자. 이 영화가 나오자 전 세계 무슬림이 분노했고, 각국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급기야 리비아에선 대사를 포함한 미국 외교관 4명이 폭도에게 습격받아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영화 제작자에게 미국 연방법원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영화 ‘인터뷰’에서 김정은에 대한 조롱은 무슬림 비하 영화에 비할 바 없이 수위가 높다.

과연 북한 주민이 이 영화를 보고 김정은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까.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북한 주민은 이 영화를 터무니없는 거짓이라고 받아들일 게 빤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농구를 좋아하고, ‘기쁨조’를 끼고 노는 정도는 북한 밖의 사람들에겐 상식이지만 대다수 북한 주민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

즉 북한 주민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얼마나 알려주느냐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제대로 묘사했느냐로 영화의 진실성을 판단할 개연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너무 형편없다. 일단 영화 전체에서 북한에 대한 제작자의 무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인이 알고 있는 평균적인 북한 상식에도 못 미친다. 북한 군복을 입은 동양인 배역들을 제외하곤 전혀 북한 냄새가 풍기지 않는 배경에서 북한 같지 않은 설정이 이어진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북한은커녕 한국이나 한국어를 아는 사람조차 참여하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먼저 영화 첫 장면을 보는 순간 황당한 설정에 놀라게 된다. 평양 거리에 베트남 어린이와 비슷하게 생긴 여자아이가 나와 베트남 전통의상처럼 보이는 옷을 입고 한국어는 맞지만 알아듣기 힘든 노래를 부른다. 배경엔 ‘위대한 향도지인 조선노동당 만세!’라는 구호가 붙어 있다. ‘향도자’를 ‘향도지’라고 잘못 쓴 것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김정은 배역은 현실의 김정은과 연결하기 힘들 정도로 거리감이 있고 “이 환자를 죽게 내버려두지 마~씹세여. 다시 돌려노~씹세여” 같은 해괴한 한국어를 내뱉는다. 등장하는 조선인민군 여장교와 대다수 북한인이 쓰는 한국어는 차마 평가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김정은이 사는 저택은 북아메리카 수림 속에 고독하게 우뚝 서 있다. 차라리 만화 속 마귀의 성이라고 하면 어울릴 법한 설정이다. 김정은이 탄 헬기에 ‘미국인을 향해 손을 쳐들어라’ ‘미국인들은 다 죽었어야 한다’는 구호와 촬영장 앞 선전물에 적힌 ‘우리는 인민군대의 파티의 지속적인 단결’ ‘선군의 위력을 증명하기 위해 보여주자’ 등의 황당한 문장은 실소를 터뜨리게 한다. 북한 묘사는 그렇다 치고, 작품성만 놓고 봐도 이 영화는 코미디답게 웃기는 작품도 아니다. 문화 코드가 다른 북한 주민에겐 더욱 그렇다. 거기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발연기’ 수준이다.

북한 상영 시 반미 감정 폭발할 수도

오히려 이 영화는 북한 주민의 반미 감정을 자극해 분노하게 만들 공산이 크다. 대다수 북한인이 멍청하게 묘사되고, 희화화됐기 때문. 심지어 김정은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앞에서 설사를 하고 엉엉 울어대는 바보로 등장하는 데다, 결국 미국인이 쏜 포탄에 머리통이 날아가 최후를 맞는다.

역지사지를 해보자. 만약 일본의 어느 영화 제작사가 한국 대통령을 저 정도로 조롱하고 극중 살해했다면 어떨까. 대통령을 증오하는 한국인조차 반일감정이 폭발하지 않을까. ‘표현의 자유’라며 그냥 넘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 ‘인터뷰’를 보니 2003년 초 한국에서만 유독 흥행에 참패한 ‘007 제20탄-어나더 데이’가 생각났다. 당시 영화에 동남아 물소가 밭을 가는 한국 농촌 풍경이 잠깐 등장하자 한국 누리꾼은 “한국을 비하했다”며 관람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그 정도도 한국 누리꾼이 분노했는데 ‘인터뷰’ 정도의 조롱이라면 북한 주민의 분노는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김정은이 오히려 이 영화를 북한에서 상영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미제(미국)가 우리를 얼마나 왜곡 중상하고 조선 사람을 멍청하게 묘사해 조롱하는지 생생한 증거가 여기 있다”면서 말이다. 북한에서 이 영화만큼 훌륭한 반미 교재가 또 있을까 싶다.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엉터리 발음이나 한국어와 어울리지 않게 북한 군복은 실물과 비슷했다. 목달개(깃받이)까지 달린 북한 군복은 쉽게 보기 어려운데 고증을 잘했다. 요즘 미국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북한 군복이 판매된다고 하니 거기서 구매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체 모를 군복에 견장마저 거꾸로 단 북한군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가 이것만큼은 배웠으면 한다.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는 오직 진실만이 필요하다. 이런 유치한 조롱은 도움이 안 된다. 마치 투사라도 된 듯이 이 영화를 북에 보내겠다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굳이 북한 주민의 반미의식, 미국에 대한 환멸을 돋우고 싶다면 보내라고. 설마 이런 일에 북한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들이 동조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DVD 보낼 여력이 있다면 김정일의 처조카로 1997년 한국에서 암살된 이한영의 수기 ‘김정일 로열 패밀리’나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 같은 책을 CD에 담아 보내는 게 낫다. 북한 주민을 계몽하는 데 ‘인터뷰’ 같은 싸구려 영화보다 백배는 더 효과적일 것이다.



주간동아 970호 (p22~23)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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