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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400억~700억 달러 ‘차르 푸틴’

러 대통령 연봉 11만5000달러에 불과 재산 축적 과정과 재계 측근들 논란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400억~700억 달러 ‘차르 푸틴’

“갤리선(고대, 중세 죄수가 노를 저어 움직이는 배)의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소 스스로를 ‘국민 머슴’처럼 일하는 가난한 정치인으로 묘사해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막대한 비자금과 호화 사치품으로 차르(제정러시아 때 황제의 칭호)도 울고 갈 만큼 화려한 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폭로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에 불이 붙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푸틴 재산은 400억~7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이라면 빌 게이츠(2013년 기준 약 760억 달러)에 맞먹는 세계 최고 부호다. 2007년 러시아 정치 분석가 스타니슬라프 벨콥스키가 유럽 매체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세계 최대 가스 생산업체이자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스프롬의 지분 4.5%, 민간 석유회사 수르구트네프티가스의 지분 37%, 세계 4위 석유거래 회사 군보르 그룹의 지분 75%를 보유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맞먹는 수준

2012년 러시아 야권 지도자인 보리스 넴초프도 그의 재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이 호화주택 20여 채와 헬리콥터 15대, 최고급 요트 4척, 비행기 43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북서쪽 발다이 호수에 자리 잡은 푸틴의 저택 ‘롱비어드’는 대지가 930ha



(약 9.3km2)로 대통령 전용 교회, 영화관, 볼링장이 있고 관리인만 100명이 넘는다. 볼가 강 부근 사라토프의 집에는 당구장, 겨울 정원, 수영장 등의 시설이 있다. 소치에는 여름 별장이, 코카서스 산 자연보호지역에는 스키 별장이 있으며 발트 해 인근에 성 2채가 있다.

보고서는 또 푸틴의 전용 항공기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제 일류신-96에는 1800만 달러어치 보석이 객실을 수놓고 있으며, 7만5000달러짜리 변기가 있다고 전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로부터 5000만 달러짜리 최고급 요트 ‘올림피아호’도 선물받은 바 있는데 역시 자쿠지(물에서 기포가 생기게 만든 욕조), 바비큐 시설, 대리석 화장실까지 딸린 최고급이다. 시계는 스위스 블랑팡, 독일 아 랑게 운트 죄네 같은 고가품만 총 70만 달러어치에 달하며 자동차로는 방탄 리무진 벤츠 등이 있다.

공교로운 것은 공식자료다. 크렘린은 지난해 대통령 재산을 공개하면서 연봉 11만5000달러, 은행계좌에는 18만 달러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재산으로는 러시아산 자동차 3대와 77m2 아파트를 신고했다. 푸틴의 연봉은 백악관이 공개한 오바마 부부의 연소득 5억 원에 비해 턱없이 적었고, 심지어 러시아의 장관들 대부분보다 적은 액수였다.

푸틴의 사생활은 이 정도 연봉 규모로는 당연히 불가능한 수준이다. 러시아 야당, 언론인이나 서방 정보기관은 푸틴의 재계 측근들이 그의 재산을 대신 불려주고 있다고 판단한다. 러시아의 불법 해외유출 자금 규모는 2012년에만 520억 달러로 알려졌는데, 그 상당 부분이 푸틴 측근의 몫일 것으로 추정된다.

푸틴은 2006년 정적이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가 경영하던 정유회사 유코스를 파산시키고 그 이권을 자기 측근들에게 나눠줬다. 이렇듯 지역과 연줄로 얽힌 푸틴의 통치방식을 ‘패거리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 부른다. 푸틴 집권 이후 급성장한 ‘올리가르히’(신흥재벌)는 푸틴이 KGB(국가보안위원회)에서 함께 근무했던 옛 동료나, 어릴 적부터 유도를 함께 해왔던 친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인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對)러 제재에 나선 미국이 푸틴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 대신 선택한 타깃도 바로 이들 ‘이너서클’(최측근)이다. 3월 말 1차 제재 당시에는 푸틴의 억만장자 친구 4인방이 발목 잡혔다. 그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방크로시야 이사회의 유리 코발추크(62) 의장, 세계 4위 석유거래 회사인 군보르 그룹의 겐나디 팀첸코(61) 회장, 아르카디 로텐베르그(62)와 보리스 로텐베르그(57) 형제 등이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3월 기준으로 팀첸코의 자산은 153억 달러에 달하고, 아르카디 로텐베르그는 40억 달러, 보리스 로텐베르그는 17억 달러, 코발추크는 14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400억~700억 달러 ‘차르 푸틴’

3월 말 미국의 1차 대(對)러 제재 대상에 포함된 푸틴 대통령의 억만장자 친구 4인방. 방크로시야 이사회의 유리 코발추크 의장, 군보르 그룹의 겐나디 팀첸코 회장, 아르카디 로텐베르그와 보리스 로텐베르그 형제(왼쪽부터).

방크로시야 금융은 ‘푸틴의 은행’

푸틴의 동향 친구인 코발추크는 ‘푸틴의 은행’으로 부르는 방크로시야 금융그룹의 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이다. 미국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방크로시야의 자산은 100억 달러 내외. 1990년대 푸틴이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두 사람은 같은 주말농원 조합의 일원이었다. 푸틴이 대통령에 오르자 코발추크는 승승장구해 금융기관뿐 아니라 6개 연방 TV 채널과 러시아 4위의 이동통신업체인 텔레2러시아 등 통신과 미디어산업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는 이렇게 지분을 확보한 TV와 신문을 통해 푸틴의 나팔수 구실을 해왔다.

팀첸코는 러시아의 석유거래 황제다. 팀첸코가 공동창업한 국제 석유트레이딩 회사 군보르 그룹은 서방 언론으로부터 푸틴이 뒤를 봐주는 기업으로 의심받고 있다. 군보르 그룹은 2004년 40억 달러에 지나지 않던 매출액이 2012년 930억 달러로 23배 이상 불어났다. 러시아 원유와 천연가스를 거의 독점적으로 매매한 덕분이었다. 팀첸코는 ‘야바라-네라’라는 유도클럽 창립 멤버이며, 유도광인 푸틴은 이 클럽의 명예회장이다. 미 재무부는 “푸틴이 군보르에 투자했고 군보르가 그의 사금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로텐베르그 형제는 SMP은행과 국영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의 건설 협력사인 SGM그룹의 공동주주다. 형 아르카디는 푸틴이 10대 때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같이 유도를 배운 맞수다. 동생 보리스와 함께 푸틴의 유도 스파링 상대였다. 고향에서 보리스와 함께 작은 사업을 하던 아르카디는 푸틴이 대통령과 총리를 지낸 2008년 전후로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의 파이프 공급계약을 따내며 큰돈을 벌었다. 55조 원이 투입된다는 소치겨울올림픽 경기장 건설도 로텐베르그 형제가 주도했다. 올해 초 러시아 야권은 소치겨울올림픽에 할당된 예산 500억 달러 가운데 250억~300억 달러를 푸틴의 측근 기업인들이 횡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솜방망이 미국의 2차 제재

400억~700억 달러 ‘차르 푸틴’

러시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브콘탁테(VKontakte)의 창업자 파벨 두로프.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리던 그는 사용자 정보 제공 문제를 두고 정부와 갈등을 빚다 최근 지분을 처분하고 러시아를 떠났다.

4월 28일 미국이 밝힌 추가 제재 대상에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국영석유회사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회장과 로스테크놀로지의 세르게이 케메조프 최고경영자(CEO) 등이 포함됐다. 러시아 기업인 총 7명과 기업 17곳에 대해 자산 동결 및 비자발급 중단 등의 조처가 취해졌다. 푸틴의 ‘돈지갑’으로 알려진 세친은 옛 소련 시절 KGB 요원을 선별하고 훈련시킨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대외부 출신으로, 앞서 등장한 정유회사 유코스를 해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세친이 제재 대상 명단에 포함되자 이날 러시아의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 ‘브콘탁테(VKontakte)’를 창업한 파벨 두로프(29)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옛 소련 지역의 이용자 수만 1억 명에 이르는 브콘탁테는 흔히 ‘러시아판 페이스북’으로, 두로프는 ‘러시아의 저커버그’로 불리곤 한다. 두로프는 그동안 브콘탁테 계정을 통해 활동하는 정부 비판적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며 당국과 마찰을 벌여오다 끝내 지분을 전량 매각한 뒤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 이 지분을 인수한 장본인 중 한 명이 바로 세친. 두로프는 러시아를 떠나면서 “이 전직 KGB 요원의 현재 취미는 유코스나 브콘탁테 같은 러시아 기업을 약탈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국의 2차 제재는 솜방망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회사인 가스프롬의 알렉세이 밀러(52) 회장과 스베르방크 같은 대형 국책은행 등 ‘몸통’이 빠졌기 때문. 가스프롬은 러시아에서 ‘국가 안의 국가’로 부를 만큼 막강한 권력의 산실이다. 푸틴은 2001년 자신의 부관이던 39세 젊은 경제학자 알렉세이 밀러를 가스프롬의 대표이사로 임명해 이 회사를 장악해나갔다. 2000년부터 이사회 의장을 지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이후 총리와 대통령, 다시 총리 자리를 번갈아 맡으면서 권력 2인자로 군림하고 있다. 미국 측은 가스프롬에 대한 제재를 ‘억지책’으로 남겨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유럽이 소비하는 가스의 3%를 공급하는 이 회사를 제재할 경우 공급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유럽 측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간동아 936호 (p57~59)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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