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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행복여행 | 부탄 승가학교

요람에서 무덤까지…삶이 곧 불교

드룩파 승단 부탄 왕과 동등한 권력…가정에서 1명 출가 최고의 공덕

  • 정찬주 소설가 ibuljae@naver.com

요람에서 무덤까지…삶이 곧 불교

요람에서 무덤까지…삶이 곧 불교

부탄 디첸포드랑 승가학교.

부탄 사람에겐 불교가 곧 삶이다. 아기를 낳기 전 사원에 가서 미리 이름을 짓고, 아기가 출생하면 사원으로 안고 가 스님에게 축원을 받는다. 일생 동안 스님을 스승 삼아 의지해 살다 삶을 마칠 때는 스님 염불 소리를 들으며 내생으로 떠난다.

13세기에 지은 팀푸 최초의 절 창강카 사원도 팀푸 사람에겐 일상의 공간이다. 우리 일행이 창강카 사원을 오르는데 젊은 부부가 갓난아기를 안고 내려오고 있다. 아침 일찍 사원에 들러 스님에게 축원을 받은 듯하다. 젊은 부부의 표정이 더 없이 행복해 보였다. 산자락에 흰 깃발이 무리지어 꽂혀 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깃발이라고 한다. 한 분을 위한 깃발이 108개다.

어느 사원이든 오색 타루초가 펄럭인다. 타루초엔 경전이 인쇄돼 있다. 파랑은 하늘, 빨강은 불, 하양은 물, 초록은 자연(환경)을 상징하는 색이라고 친리 씨가 설명했다. 부탄 사원은 티베트 사원과 흡사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티베트불교가 부탄에 전래됐기 때문이다. 티베트를 통일한 손챈감포 왕이 부탄에 사원 2개를 건립하면서 부탄불교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티베트 사자의 서(書)’ 저자인 고승 파드마 삼바바가 부탄으로 내려와 수행하면서 그가 갔던 장소가 대부분 성지화돼 많은 지방 사원이 생겨났다. 또한 티베트의 고승 샹바자레이시도르제(1161~1211)가 중앙부탄에 사원을 건립했는데, 밤에 들은 천둥소리가 용의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드룩(Druk·용)이라 불렀다. 이를 계기로 드룩파(Drukpa) 승단이 형성됐고, 뒷날 파조 드럭곰 지포 스님이 아들 4명을 전국에 보내 드룩파 불교를 퍼뜨리면서 마침내 드룩파는 부탄불교의 중심 승단으로 발전했다. 지방 세력 20개를 규합해 1637년 최초로 부탄을 통일한 샤브드룽 나왕 남겔(Zhabdrung Ngawang Namgyal)은 권력의 반을 드룩파 승단에 이양해 오늘날에도 왕과 승단이 동등한 권력을 갖는 전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20년 경 외워야 승려 돼



부탄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려면 고승 파드마 삼바바와 통일왕 샤브드룽 나왕 남겔을 모르고선 불가능하다. 부탄의 어느 장소를 가나 두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행과 함께 창강카 사원을 내려와 디첸포드랑(Dechen Phodrang) 승가학교를 가는 중이다. 이 승가학교 역시 샤브드룽 나왕 남겔이 팀푸에 왔을 때 토호세력이 그에게 헌납해 팀푸종이 된 곳이다. 그런데 오래전 팀푸종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 승가학교가 됐다.

현재는 비구가 될 학생 300여 명이 공부하는데, 교실에서 공부하고 잠도 자는 모양이다. 교실에 들어가 보니 한쪽에는 모포가 가지런히 개켜 있다. 학생들은 마룻바닥에 엎드려 있거나 긴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경을 외우기도 했다. 교사(校舍)는 여러 동이고 학생은 한 반에 15명 정도 됐다.

이곳에선 경을 철저히 암기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졸던 동자승들이 나를 보자 갑자기 경을 펴들고 외우는 시늉을 한다. 그들의 동심이 느껴져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20대인 교사는 엄한 스승이라기보다 착한 선배 같은 모습이다. 학습 분위기가 아주 자유스럽다. 앉든 눕든 경을 외워 바치기만 하면 되는 듯하다.

교사에게 교육과정을 알아보니 한국불교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길다. 20년 이상 경을 외운 다음 3년 동안 관상법의 명상을 마쳐야만 비로소 승려가 된다. 즉 승가학교 9년, 대학 9년, 명상 3년 과정을 거쳐야만 승려로서 존경받는 것이다. 대학에선 6개월 동안 10만 배를 하는 과정도 있다. 겨울철 상의를 벗고 수행하는 밀라레파 고행도 3년 거치는데, 지금은 이 수행을 하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경을 외우는 긴 교육과정 때문에 부탄 승려들은 논쟁에 아주 강하고, 승려 사이에선 ‘25년 교학을 하지 않으면 선(禪)을 하지 마라’는 금언도 있다고 친리 씨가 전해준다. 한국불교보다 더 철저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다.

사진 촬영을 해도 제지하는 교사가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한바탕 소동이 일었을 성싶다. 부탄 승가학교는 무엇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법이 없다. 부탄에서는 한 가정에서 1명이 출가하는 것을 최고 공덕으로 여긴다. 어린아이는 보통 7~8세에 출가한다. 동자승은 명절에만 외박이 허락되는데, 이때도 굳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승가학교에서 생활하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삶이 곧 불교

디첸포드랑 승가학교의 어린 학생들(왼쪽). 창강카 사원의 마니차를 돌리며 아기에게 축원하는 여인.

요괴 가둔 바위 위 사원

요람에서 무덤까지…삶이 곧 불교

디첸포드랑 승가학교 동자승들(위)과 승가학교에서 악기연주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들.

나와 일행은 다시 맞은편 산자락에 있는 심토카종(Simtokha Dzong)으로 간다. 팀푸를 떠나 푸나카로 이동하기 전 심토카종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통일왕 샤브드룽 나왕 남겔이 부탄에 와서 최초로 건립한 종이다. 심토카종을 거점 삼아 소왕국 20개를 통일하고, 그곳에 심토카 기능을 본뜬 종을 하나씩 건립했던 것이다. 승합차로 10여 분 걸리는 거리다.

안내문을 보니 심토카종 자리에 요괴가 살았는데, 샤브드룽 나왕 남겔이 요괴를 바위 속에 가두고 그 위에 심토카종을 건립했다는 전설이 소개돼 있다. 이곳은 파로, 푸나카로 가는 전략적 요충지임에 분명하다. 전설에서 요괴는 당시 저항하던 토착세력을 상징하는 것도 같다.

그런데 현재는 심토카종 역시 승가학교로 운용된다. 학생은 130여 명으로, 조금 전 봤던 디첸포드랑 승가학교보다 규모가 작다. 법당은 티베트 전통을 따른 모습이다. 법당 벽에는 역대 고승의 모습을 수로 새겨 모시고 있다. 심토카종은 건물 내부가 칙칙하고 어둡다. 팀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어서 호연지기가 느껴지던 디첸포드랑과 비교됐다.

일행은 팀푸를 떠나 스위스 전원도시처럼 산자수명한 푸나카로 향했다. 푸나카로 가는 길은 해발 3100m 도추라 고개를 넘어야 한다. 길은 왕복 2차선의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우리 일행이 탄 작은 승합차가 내려오는 차를 만날 때마다 아슬아슬 교행을 한다. 도추라 고개를 앞둔 산자락에 들어서자 비구름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다. 차창에 빗방울이 듣는다. 이미 해발 3000m쯤에 도달한 듯 희박한 산소 때문인지 현기증이 인다.

주가 바뀌는 모양이다. 기사가 교통 통제소로 가더니 허가서를 받아온다. 인도에서 본 풍경과 흡사하다. 승합차가 멈춘 동안 누군가가 사과를 한 아름 사온다. 사과는 못생기고 작았지만 당도가 높다. 부탄에서는 어떤 농작물에도 살충제를 쓰지 않는다. 정부가 농민과 합의해 몇 년 전 살충제를 모두 없애버린 결과다. 따라서 부탄 과일은 씻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된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우물거리자 어느새 현기증이 씻은 듯 사라진다.



주간동아 918호 (p58~59)

정찬주 소설가 ibulj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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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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