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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세계 경제 ‘출구 공포’는 과민반응

‘버냉키 쇼크’에 금융시장 흔들…외자이탈 유력 신흥시장 치명타 맞을 듯

  •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jangbo@hanafn.com

세계 경제 ‘출구 공포’는 과민반응

세계경제의 사령관 벤 버냉키가 입을 열었다. 대규모 유동성 붐이 이제 막을 내리니 출구를 준비하라고. 그래서 너도나도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까. 아직 분명한 답이 없고 불확실성만 넘쳐난다.

미국 중앙은행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다. 그 연준을 대변하는 사람이 버냉키 의장이다. 세계 헤게모니인 미국의 중앙은행장으로서 그는 사실상 세계경제를 진두지휘하는 인물로 꼽힌다. 그래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세상 이목이 집중되곤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6월 19일 연준의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치고, 버냉키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른바 ‘출구전략’을 구체화했다. ‘양적완화(QE)’라고 부르는 연준의 자산 매수 규모(매달 450억 달러의 국채와 400억 달러의 주택저당증권(MBS) 매수)를 올 연말부터 줄여나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어 내년 중반에는 아예 자산 매수를 중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딛고 전 세계 금융자산가격을 떠받쳐온 강력한 유동성 무기 하나가 제거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첫 희생자는 미국 국채시장이었다. 지난해 말 이후 연준의 대규모 매수에 힘입어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대 중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출구전략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5월 초부터 국채금리는 반등세로 돌아섰고, 이번 ‘버냉키 쇼크’를 거치면서 2%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그 파장은 국채시장에만 그치지 않고, 선진국 주식시장을 비롯해 국제금융시장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기침하면 나머지는 독감



이런 혼란에는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출구전략을 앞둔 연준을 대신해 글로벌 유동성 공급의 새로운 축으로 기대를 모았던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흔들리는 것이다. 게다가 빈사상태의 저성장에 허덕이는 선진국을 대신해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해온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도 경제 전망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규모 외자 유입과 맞물려 신용 과열 우려가 컸던 신흥시장에서 매도세가 확산 중이다. 미국이 기침하면 신흥시장은 독감에 걸린다는 금언의 위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연준의 출구전략을 두고 얘기들은 많지만, 정작 그 의미나 방식,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은 듯하다. 버냉키의 말 한 마디에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도 어쩌면 이처럼 맹목적인 시장 행태의 부작용일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연준은 오래전부터 출구전략을 고민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기존의 단순한 금리 조절을 넘어 유례없는 통화정책 실험을 거듭해온 상황이라 아무래도 그 파급 효과에 겁이 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특히 버냉키 스스로 1차 양적완화(QE1)가 막을 내린 2010년 초 미 하원의원들을 대상으로 출구전략에 대해 증언한 바 있다. 또 2차 양적완화(QE2)가 끝난 2011년 6월 FOMC 회의에서 직접 출구전략의 원칙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연준은 출구전략을 ‘통화정책의 기조와 수행방식의 정상화’로 정리한다. 즉, 제로금리와 대규모 자산 구매로 채워진 초극단적 통화 확대 기조 및 단순한 금리 조절을 넘어선 새롭고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행방식의 정상화다. 여기에는 당연히 금리를 올리고, 연준 자산 및 부채 규모를 축소하는 한편, 자산 구성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는 일이 포함된다. 이런 맥락에서 출구전략은 크게 네 단계로 정리된다.

먼저, 보유 유가증권의 원리금을 재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국채나 MBS 같은 보유 자산을 줄이는 첫걸음이다. 나아가 금리 향방과 관련한 지침, 즉 미래금리지침(Forward Guidance)을 수정해 금리인상을 예고하는 한편, 연준의 유동성 공급 과정에서 쌓인 은행권의 막대한 지급준비금을 흡수하는 작업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직접 제로금리를 철회하고 금리인상에 나서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수단, 즉 연방기금금리뿐 아니라 다양한 금리, 특히 지급준비금에 대한 금리를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본격적으로 보유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단, 이 경우 국채는 대상이 아니며, 기관채나 MBS만 매각한다. 과거 연준은 유가증권으로서 국채만 보유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주택 부문 등에 대한 직접적인 신용지원의 일환으로 자산 보유를 기관채와 MBS로 늘렸다. 이제 전통 방식에 맞게 국채 외 자산은 정리하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자산 매각이 2~3년 지나면 연준의 보유자산 규모는 대체로 정상화할 것이라고 연준은 기대한다. 또 자산 매각의 완료에는 총 3~5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경제 ‘출구 공포’는 과민반응
이제 연준 출구전략의 로드맵 가시화

4월 30일~5월 1일 FOMC는 이러한 출구전략의 원칙을 재점검하면서 기본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연준이 다시 출구전략을 고민한다는 관측이 번지기 시작한 것도 그 직후였다. 이러한 고민의 구체적인 결과물, 즉 출구전략 로드맵이 6월 FOMC를 거치며 가시화한 것이다.

일단 버냉키가 직접 제시한 것은 자산 매수 축소 및 중단 시점이다. 아직은 본격적인 출구전략이라기보다 그 예비단계일 뿐이다. 연준의 정책 시계(視界)는 대체로 6개월 정도가 고작이다. 버냉키가 자산 매수 축소 시점을 올 연말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내년 중반쯤으로 내다본 자산 매수 중단 시점은 아직 불확실성이 크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연준의 예상대로 전개되면 6개월 단위의 수순을 거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격적인 출구전략의 개시, 특히 보유 유가증권의 원리금 재투자 중단은 2014년 말이 유력시된다. 금리 인상은 6개월 뒤인 2015년 중반이 되고, 기관채 매각은 2015년 말로 예상된다. 나아가 보유자산 규모의 정상화는 그 2~3년(2.5년 기준) 뒤인 2018년 중반, 기관채 매각 완료는 3~5년(4년 기준)이 지난 2019년 말 전후가 된다.

세계 경제 ‘출구 공포’는 과민반응
다른 방식으로도 구체적인 시점을 추정해볼 수 있다. 연준은 미래금리지침으로 이른바 ‘경제지표 연계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제로금리의 지속 조건과 관련해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지고 1~2년 뒤 인플레이션이 2.5% 이내로 예상될 때까지’라고 명시해놓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에번스 룰’이 그것이다. 이번 6월에 나온 FOMC 전망을 보면, 실업률은 2015년 5.8~6.2%로 내려서는데, 이는 이르면 2014년에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기준으로 할 때 금리인상은 2014년 말 혹은 2015년 초부터 가능하다.

그렇다면 출구전략 로드맵은 더 빨라질 수 있다. 특히 자산 매수 축소는 올 중반부터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버냉키는 이번에 실업률 목표를 하향조정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금리인상 시점, 나아가 출구전략의 전체 로드맵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마도 조만간, 특히 7월 말이나 9월 중순 FOMC에서 미래금리지침의 수정 가능성, 즉 실업률 목표의 하향 조정 가능성을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채권시장發 변동성 충격에 유의해야

최근 이슈가 된 자산 매수 축소 및 중단은 엄밀한 의미에서 출구전략은 아니며, 예비단계에 불과하다. 또 실제 출구전략을 시행하더라도 국채 매각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만기가 도래하는 국채를 재투자하지 않을 뿐이다. 오히려 기관채와 MBS 매각 과정에서 적정 수준의 유가증권 보유를 위해 국채를 다시 매수하거나 만기 도래분을 재투자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미래금리지침의 수정 등을 통해 금리인상은 2015년 중반 이후로 억제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버냉키 발언, 특히 자산 매수의 축소 및 중단만으로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의 발언에 따른 최근 시장의 격렬한 요동이 과민반응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다만 그동안 연준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 기반을 두고 각종 위험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가 확산돼온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세간의 우려에도 버냉키가 굳이 지금 로드맵을 꺼내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주식부터 회사채에 이르기까지 위험투자가 확산되면서 버블 징후를 낳고 있는 것이다. 버블은 또 다른 위기를 낳는다.

이런 맥락에서 연준 통화정책의 변곡점을 맞아 미국 채권시장발(發) 변동성 충격에 유의할 필요가 크다. 당장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세를 지속할 개연성은 크지 않지만, 연준의 무제한적인 유동성 공급이라는 안전판이 사라지면서 국채금리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금융자산가격의 핵심인 금리가 흔들리면 주식을 비롯해 회사채나 각종 구조화 상품 등의 위험자산도 크게 동요하게 된다. 나아가 미국 금리의 글로벌 지배력을 감안한다면, 그 충격은 세계 전역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국제적 유동성 붐에 편승한 외자유입, 또 그로 인한 신용 붐에 의존해온 신흥시장은 대규모 외자이탈로 치명타를 맞을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중국을 비롯해 신흥경제의 성장 전망까지 악화하는 실정이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오히려 국내 금융시장의 높은 환금성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차익 실현의 빌미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희망이 하나 있다면, 지금의 혼란이 부실자산과 우량자산 사이에서 진정한 옥석가리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어디에 속할지 따져보고, 필요하면 보완책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볼 시점이다.



주간동아 894호 (p44~46)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jangbo@hanaf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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