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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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비박·원로 삼두마차 고비마다 위기극복 몸 던져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공신들

  • 동정민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입력2012-12-24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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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박·비박·원로 삼두마차 고비마다 위기극복 몸 던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두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그만큼 5년 전보다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특히 올해 비상대책위원회, 총선, 대통령선거(대선)를 거치면서 영입한 인사도 많다. 이들은 모두 고비 때마다 박 당선인을 보좌해 위기를 극복한 일등공신이다. 박 당선인의 당선 공신을 분류해봤다.

    명예공신 5인방

    박 당선인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지켜준 공신 5명을 뽑아봤다. 이들은 박 후보의 측근 여부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 승리를 이끈 공신이다.

    박 후보가 8월 대선후보로 결정된 날, 후보 수락연설문에서 “정치쇄신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만들겠다. 대선후보로서 첫 번째 조치로 당내에 ‘정치쇄신특별기구’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이때 이미 박 후보의 마음속에는 안대희 대법관이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 위원장은 7월 말 이미 박 후보와 만났다. 안 위원장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시절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로 한나라당에 큰 타격을 줬고, 이는 아이러니하게 박 당선인을 대표로 불러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안 위원장은 이번에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의 ‘새 정치’ 신드롬을 막아내느라 고군분투했다. 박 당선인의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 설득에도 힘썼고, 정치쇄신방안도 건의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도 선거 내내 박 후보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뒷받침했고, 자신의 친정이던 검찰개혁과 관련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대검 중수부) 폐지도 수용할 정도로 마음을 열었다. 고향(경남 함안 출신)인 부산·경남(PK)을 방문해 선거운동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9월 말 추석 전후 큰 위기를 맞았다. 인민혁명당(인혁당) 발언으로 9월 내내 휘청거린 뒤 추석 연휴 직전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을 했지만, 양자대결에서 40%까지 밀리며 지지율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내에서 당 지도부와 친박(친박근혜) 2선 퇴진론이 터져 나왔다.

    이때 투입된 두 사람이 있다. 10월 초 최측근인 최경환 후보 비서실장이 사퇴한 이후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등장했다. 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정치권과 전혀 무관한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을 영입했다.

    친박·비박·원로 삼두마차 고비마다 위기극복 몸 던져
    김 본부장은 5년 전 대선후보 경선 때 박 후보의 좌장 구실을 했지만 2008년 총선 이후 골이 깊어졌다. 4·11 총선 때 공천 탈락한 김 본부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총선 승리의 기틀을 마련했고, 박 후보가 감사전화를 하며 두 사람 사이에 훈풍이 불었다. 10월 초 김 본부장은 박 후보가 제안한 공동선대위원장 대신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맡았다. 취임 첫날 “어떤 임명직도 맡지 않겠다”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오랫동안 선거를 치른 경험으로 흐트러진 당을 정비하며 선거를 이끌었다. 박 후보와의 신뢰관계는 상당히 회복했다는 게 중론이다.

    김성주 위원장은 특유의 열정으로 박 당선인의 취약지역과 계층인 수도권, 젊은 층에 공을 들였다. 젊은 여성들이 그의 새누리당 합류 이후 MCM 불매운동을 벌여 국내 매출에 크게 타격을 입었지만 “이번에 정권을 넘겨주면 국가가 위험해진다”는 소신에 따라 선거일 며칠 전 과로로 입원할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박 당선인은 스스로 전국을 누비는 김 위원장에게 감동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선거 도중 “박 후보를 설득하려면 김 위원장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특히 박 후보가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우면서도 주변에 여성 참모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10명의 몫을 혼자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범보수세력 집결의 중심에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있다. 이 전 대표는 안철수 전 후보 사퇴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의 단일화에 따른 여론이 요동칠 무렵인 11월 24일 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 전 대표는 박 후보가 명예공동선대위원장 자리를 제안했지만 “보수색이 강한 내가 요직을 맡으면 중도층 유입이 어렵고,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지도부도 부담스러워한다”며 평당원으로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이 전 대표는 선대위가 짜준 동선을 100% 소화하며 전국을 누볐다. 특히 마타도어가 극심해진 선거 막판, 2002년 본인이 김대업에게 당했던 아픔을 되새기며 “공작과 흑색선전은 민주주의를 죽이는 암”이라고 대국민 호소를 하기도 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이 전 대표 합류로 “충청에서 5%, 부산·경남에서 2~3% 지지율 상승, 부수적인 보수층 결집 효과까지 큰 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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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명의 숨은 공신은 박 후보를 14년간 지근거리에서 모셔온 고(故) 이춘상 보좌관이다. 이 보좌관은 선거를 17일 앞둔 12월 2일 박후보의 강원 유세를 따라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보좌관은 사고 당일에도 새벽 4시에 일어나 대국민 홍보프로젝트인 ‘민국아 사랑해’ 마지막 동영상 편집 내용을 살폈다. 당시 캠프 내에서는 문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면서 ‘낙관론’이 퍼지고 느슨해질 무렵이었다. 이때 이 보좌관 사고가 발생해 “이 보좌관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선에서 무조건 승리해야 한다”는 의지가 충만해졌다. 박 후보도 이 보좌관의 죽음마저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부 야권 성향 인사들의 말에 분노하며 신발끈을 조여 맸다는 후문이다.

    측근 1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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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당선인과 지근거리에 있는 측근 그룹의 특징은 대체로 성실하고 반듯한 스타일이라는 것.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튀는 돌출 행동을 하는 이들은 박 당선인이 선호하지 않는다. 잇속이 강한 전형적인 ‘정치인’은 박 당선인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스타일이다.

    최경환 의원은 22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하다 세상을 넓게 보겠다며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해 언론인 생활을 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최 의원은 2004년 17대 때 원내에 들어온 뒤 박 당선인과 인연을 맺어 5년 전 대선 경선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지냈다. 원만한 성격에 입도 무거워 박 당선인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다. 최 의원은 박 당선인의 신뢰를 바탕으로 직언도 많이 하는 편이다. 10월 초 불거진 당 지도부와 친박 2선 퇴진론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비서실장직을 사퇴해 후보의 부담을 줄여줬다. 최 의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과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내며 국정운영에 참여한 경험도 있다. 향후 박 후보의 국정운영에 언제든 전천후로 투입할 수 있는 측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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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2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운데)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 선거대책위원장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회의를 주재했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사업을 하다가 부산 해운대구청장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4선 의원이다. 당내에서 유일한 서강대 동문 의원이기도 하다. 서 총장은 온화하고 포용력 있는 성품으로 드러내지 않고 일하는 스타일이어서 박 당선인이 신뢰하는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다. 10월 초 당 지도부 퇴진론 때 측근들조차 서 총장의 사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했으나 박 당선인은 끝내 그를 지켰다. 정책위의장과 국회 기재위원장을 지낸 정책통으로, 차기 원내대표 1순위에 꼽힌다. 김무성 전 의원의 4·11 총선 낙선으로 부산 지역 좌장 구실도 함께 맡고 있다. 문 후보와 경남고 동기동창이지만, 대선 과정에서는 문 후보와 각을 세웠다.

    유정복 직능본부장은 후보 비서실장을 오래 지낸 최측근 인사다. 23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1995년 30대에 김포시장을 맡은 이후 경기 김포에서 지금까지 시장과 의원을 지냈다. 지난해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회장을 지낸 이후 직능을 담당했다. 박 당선인이 직접 “직능을 단순히 표가 아니라 정책과 연계시켜야 하기 때문에 내 뜻을 잘 아는 분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해 맡았다. 이번 대선 때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하부조직, 김지하 시인, 안철수 전 후보 조직 등 상대 진영 단체들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며 임무를 다했다.

    권영세 종합상황실장은 박 후보와 인연을 맺은 기간은 얼마 되지 않지만, 빠른 판단력과 균형 잡힌 정무판단으로 박 당선인의 신뢰를 얻었다. 2011년 5월 박 당선인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을 방문했을 때 동행했으며, 유창한 영어실력과 유머감각, 합리적인 개혁 성향 등으로 박 당선인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박 당선인은 4·11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선거 사령탑인 사무총장으로 수도권 지역구인 그를 택했다. 총선 때 주요 인사 영입과 공천 과정을 주도해 낙천자들의 원성을 한 몸에 샀고 정작 본인도 지역구에서 낙선했으나 9월 대선을 야전에서 진두지휘하며 전략을 총책임지는 종합상황실장으로 컴백했다. 검찰 출신으로 2007년 경선 때는 중립을 지켰다. 현직 의원이라는 부담감이 적고 후보와의 신뢰도 큰 편이어서 청와대 입성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2004년부터 박 당선인의 공보 업무를 전담해온 명실상부한 박근혜 ‘입’이다. 올해 처음으로 박 당선인의 곁을 떠나 4월 총선 때 광주에서 첫 당선의 기대를 모았지만 지역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 당선인은 9월 당이 위기에 처하자 이 단장을 긴급 호출했다. 당료 생활을 오래해 정무적인 판단이 빠르고 정확한 편이다. 박 당선인이 선호하는 조용하고 모범생 같은 참모 스타일과는 많이 다르다는 평가도 받지만, 누구보다 로열티가 강하고 당선인의 철학을 가장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박 당선인에게 허락받지 않고 자신 있게 대언론 대응을 할 수 있는 참모다. 총선 뒤 대선이라 대선 기간 내내 의원들이 몸을 사리는 상황에서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며 야당을 향한 저격수 구실을 해왔다.

    이학재 비서실장은 4년간 비서실장직을 맡았던 유정복 의원이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직을 맡으면서 이어받은 이후 2년 반 동안 변함없이 박 당선인 곁에 머물렀다. 성실하고 입이 무거워 신뢰가 높을 뿐 아니라, 늘 주변 의견을 경청하고 공을 상대에게 돌리는 성품으로 캠프 내에서도 적이 없다. 2002~2008년 인천 서구청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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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2007년 경선 패배 이후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폭넓은 조언을 해주는 멘토 구실을 하다가 2011년 12월 비상대책위원으로서 박 당선인과 가까워졌다. 총선 때는 경제민주화식 새누리당 정강·정책을 주도하며 갇힌 보수의 새누리당 이미지를 벗기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대선 때는 당내 여러 사람과 충돌하고, 박 당선인과도 각을 세우며 캠프 내부인사들의 속을 썩이기도 했다.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정책을 총괄했지만 대(對)안철수 전략을 비롯해 정무적인 조언도 많이 해왔다. 호남(전북 고창) 출신이어서 향후 인사 때 중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박 당선인 측근 중 자기 편이 거의 없는 독불장군이라는 건 부담이다.

    안종범 의원은 2012년 본인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이며 복지 재정 분야를 전공한 학자 출신이다. 박 당선인이 2011년 2월 발표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위한 사회보장기본법 발의를 주도했다. 총선 이후 박 당선인의 정책 총괄 간사 구실을 하며 모든 정책의 실무를 담당했다. 대선 때는 정책 발표, 메시지, TV 토론, 매니페스토, 언론 인터뷰 등 모든 정책 관련 업무를 준비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박 당선인에게 혼도 많이 나지만, 그만큼 당선인이 편하게 생각하고 신뢰가 아주 크다. 마라톤이 취미지만 불규칙한 생활로 살이 많이 불었다.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보좌진들은 박 당선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들이다. 안봉근 보좌관은 1998년 박 당선인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운동 때부터 함께 했다. 전 쌍용그룹 회장인 김석원 의원의 보좌진으로 있다 지역구를 물려받은 박 당선인 측에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이재만, 정호성 보좌관은 박 당선인이 1998년 의원 때 공채로 뽑은 이들이다. 3명 모두 박 당선인과 14년 동안 사실상 동거동락했으며, 박 당선인이 가장 편하게 일을 시키고 상의하는 참모다. 2007년 경선 패배 이후 이들에 대한 박 당선인의 의존도가 커졌다는 게 내부 중론이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 과정에서 ‘문고리 권력’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아왔지만 가장 사심이 없고, 당선인의 뜻을 가장 왜곡 없이 실천하는 실무진인 데다 입이 무겁고 성실해 박 당선인의 신뢰에는 변함이 없다는 전언이다.

    이재만 보좌관은 정책 실무를 총괄한다. 박 당선인이 경선 패배 이후 절치부심하며 5년 동안 정책 공부 모임을 할 때 거의 모든 자리에 동석하며 정책 관련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쌓았다. 대선 경선 이후에는 사실상 수석 보좌관 구실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호성 보좌관은 정무와 메시지를 담당한다. 선거 기간 내내 기자회견, 유세, 축사 등 각종 메시지를 다듬느라 새벽 6시까지 꼬박 밤을 새우고 아침에 잠시 눈을 붙이는 생활을 반복했다. 박 당선인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무적인 상황을 정리해 당선인에게 보고하는 구실도 했다.

    안 보좌관은 이번 경선 때부터 현장 경호 팀장 자리를 이건하 보좌관에게 물려주고 일정팀장을 맡아 후보 일정을 총괄했다. 14년 동안 밀착 수행을 한 경험 때문에 박 당선인이 어느 현장을 가야 효과적인지, 편하게 활동하는지 등을 가장 잘 안다.

    측근 2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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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영 특보단장은 박 당선인 측근이 아니었지만, 2011년 5월부터 여러 관계로 엮이며 측근보다 더 큰 구실을 맡았다. 2011년 5월 중립이었던 황우여 원내대표-이주영 정책위의장 출마 때 친박이 똘똘 뭉쳐 당선을 이뤄냈다. 4·11 총선 때 이 정책위의장은 박 당선인의 총선 공약을 주도했다. 이후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지만, 친박 진영이 끝내 이한구 원내대표를 밀어주는 바람에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이후 경선 특보단장-대선기획단장-후보 특보단장 등의 주요 임무를 맡기며 신뢰를 보였다. 판사 출신이지만 개혁적인 성향에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2007년 경선 패배 이후 박 당선인과 공부모임을 함께하며 정책 분야에서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됐다. 재무부 출신으로 오랫동안 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정통 경제통이다. 2010년 국회의원으로는 유일하게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할 정도로 박 당선인이 경제 분야에서 의존하는 정도가 크다. 정통 시장주의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진영 정책위의장은 박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낸 최측근 인사였지만, 친박 인사들과의 갈등을 거치며 한때 “더는 친박이라 부르지 마라”며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유연하고 판단력이 빠른 진 의장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보여왔다. 이번 대선에서 정책위의장과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임하며 대선 공약을 조정했다. 서울 지역 3선 의원이 많지 않아 앞으로도 구실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홍문종 조직본부장은 15, 16대 의원을 지낸 뒤 두 번 연속 총선에서 낙선하고 19대에 다시 원내에 입성했다. 원외 시절인 2007년 대선 경선 때 수도권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친이(친이명박)계로 쏠릴 때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박 당선인 외곽조직인 경기희망포럼을 이끌다 대선 경선 때부터 희망포럼뿐 아니라 전체 외곽조직을 담당했다. 돈과 자리를 약속하지 않는 박 당선인의 엄격한 스타일 속에서도 무난하게 조직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윤상현 수행단장은 박 당선인과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측근 중 한 명이다. 동생인 박지만 씨와도 친한 사이로, 박 후보를 마음속으로 ‘누나’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박 당선인에 대한 로열티가 강하다. 박 당선인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가감 없이 전달하는 편이다. 의리가 강하고 친이, 친박 가릴 것 없이 동료 의원들과의 관계도 좋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국제정치학박사를 받은 외교통이기도 하다.

    이상일, 조윤선 대변인은 7월 경선 캠프 때부터 대변인 콤비로 활약해왔다. 이 대변인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근무하다 4월 총선 때 언론인 몫 비례대표로 원내에 입성했다. 박 당선인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출입 기자로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이번 대선 기간에 사실상 수석 대변인 구실을 하며 논평을 조율해왔다.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금도를 넘지 않는 논리적인 논평을 썼다는 평이다.

    조 대변인은 사실상 박 당선인의 수행 구실을 하며 모든 유세 현장을 함께했다. 원래 친박 은 아니었지만 이번 대선에서 여성으로서 박 당선인의 말벗 구실까지 하면서 후보와 상당히 친밀해졌다는 평가다. 4월 총선 때 서울 종로에 출마했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홍사덕 전 의원에게 양보하면서 오히려 향후 정치적 입지가 넓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박 당선인 정책의 틀을 만들고 초안을 공급하는 총사령관 구실을 했다.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다양한 이들의 추천을 받아 각종 분야의 전문가들을 끌어 모아 박 당선인의 경제기조를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는)에서 ‘원칙 있는 자본주의’로 공정 경제를 강조하는 기조로 전환하는 구실을 했다. 결국 2010년 전문가들을 총결집해 국가미래연구원을 만들었다. 박 당선인의 공약 상당수가 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다. 박 당선인과 서강대 동문이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서강경제학파를 이끌다 지난해 은퇴했다.

    강석훈 의원은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박 당선인과의 인연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탁월한 논리로 박 당선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 위스콘신대 출신으로 대우경제연구소에서 이한구 원내대표와 함께 일한 인연이 있다. 대선 기간 내내 안종범 의원과 콤비로 박 후보의 각종 정책과 메시지를 전담했다.

    최외출 기획조정특보는 숨은 박 당선인 최측근 실세다. 최 특보는 박 당선인이 잠시 이사장을 맡았던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장,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장을 지낼 만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구활동이 왕성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자란 최 특보는 ‘새마을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녔고, 박 당선인이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할 때부터 꾸준히 정책 조언을 해왔다.

    백기승 공보팀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최측근으로 대우 홍보담당 이사를 지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공보기획단장으로 박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박 후보 경선 낙선 이후 5년 내내 외곽조직인 ‘마포팀’을 진두지휘하며 박 후보와 관련한 홍보 영상을 도맡아했다. 마포팀원들은 대부분 대선 홍보본부로 합류해 각종 방송 광고, SNS 동영상 등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12월 2일 박 당선인과 함께 강원 유세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우동 홍보팀장도 마포팀 소속이다. 백 팀장은 대선 때 TV 토론 및 언론대응 등 공보 업무를 주도했다.

    조인근 메시지팀장은 박 당선인 보좌진 삼인방과 버금갈 정도로 박 당선인과의 인연이나 신뢰관계가 깊다. 4·11 총선 때는 비대위원장실비서실 부실장을 맡아 후보 일정과 메시지를 총괄했다. 보수 진영의 최고 글쟁이로 꼽힐 정도로 연설문 작성에 일가견이 있다. 박 당선인이 가진 최고 정치 자산인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승복 연설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이번 대선 때는 정책 메시지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국민에게 공약을 쉽게 전달하려고 애썼다.

    친박·비박·원로 삼두마차 고비마다 위기극복 몸 던져

    11월 27일 오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대전역 광장 유세에서 유세 지원을 나온 이회창,이인제 전 대표 등과 함께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과 장경상 전략팀장은 박 당선인의 전략 브레인이다. 신 부소장은 1990년 민주자유당에서 정치인생을 시작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다. 사회학을 전공한 여론조사 전문가로 이번 대선에서 여론조사 분석을 도맡았다. 4월 총선 때는 종합상황실 부실장으로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장 팀장은 한나라당 공채 출신으로 전략기획국에서 선거 경험을 쌓았다. 2007년 경선 패배 이후에는 청와대, 경기도,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두 사람 모두 긴 호흡으로 국민의 여론 추이를 예상해 장기 플랜을 짜는 데 능하다. 박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깜짝 카드 없이 뚜벅뚜벅 갈 길을 간 것 역시 이들과 박 후보의 생각이 일치한 부분이다.

    측근 3그룹(분야별)

    친박·비박·원로 삼두마차 고비마다 위기극복 몸 던져
    위의 명예공신이나 측근 1, 2그룹을 제외하고도 각 분야별로 박 후보 측근 그룹은 많다.

    원내 그룹에는 김태환 행안위원장, 서상기 정보위원장, 유기준 최고위원, 유승민 국방위원장, 정갑윤 예산결산위원장, 한선교 문방위원장, 황진하 의원 등은 박 당선인과 언제든 연락이 가능한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다.

    2007년 경선 캠프 대변인 출신의 김재원 의원, 당 조직과 직능을 함께한 김태원 의원, 외곽조직인 청산회를 이끄는 노철래 의원, 부산시당위원장을 맡아 부산 선거를 이끈 이진복 의원,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은 조원진 의원은 박 당선인과 인연이 깊은 재선 의원들이다.

    이번 선거 때는 비례대표 의원들의 활약이 컸다. 4·11 총선 때 박 당선인이 전문가 출신들로 비례대표 의원을 채웠는데, 이들이 각 공약을 다듬고 본인 전문 분야 조직 확장에도 힘썼다. 아주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청년 리더십 시민단체를 이끌었고, 이번 대선 때 청년본부장을 맡은 김상민 의원, 방송사 PD 출신으로 미디어본부장을 맡아 박 후보 TV 토론, 찬조연설 등을 도맡은 박창식 의원, 여성 리더십에 따른 여성 공약을 만들어낸 김현숙, 민현주 의원, 문화 분야, 특히 종교 분야 지지세를 확장시킨 김장실 의원도 박 당선인의 측근들이다.

    초선의원이지만 박대출, 서용교 의원 역시 박 후보의 최측근 중 한 명이다. 박 의원은 수행부단장을 맡아 윤상현 단장과 함께 유세 내내 박 당선인과 함께 다녔으며, 서 의원은 공보위원으로 활동했는데, 특히 전략 지역인 부산 지역 민심을 잡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친박 출신 전직 의원과 당협위원장들도 많다. 유세를 총괄한 김학송 유세본부장을 비롯해 이인기, 허태열 전 의원, 서울 지역 유세에 전념했던 이혜훈 최고위원, 국민소통본부장을 맡아 조직을 확장한 이성헌 전 의원, 직능을 함께한 김선동 전 의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보 업무를 지원한 김병호, 허원제 전 의원도 박 당선인 측근들이다. 권영진 전 의원과 서장은 당협위원장은 권영세 종합상황실장과 함께 상황실에서 전략을 정하는 브레인 구실을 담당했다.

    광고 전문가 출신의 조동원 당 홍보본부장과 변추석 선대위 미디어홍보본부장, 문화 분야 공약을 책임졌던 박명성 신시컴퍼니 대표, 비대위원을 함께한 조동성 서울대 교수,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 등은 올해 총선과 대선 때 영입한 이들이다. 대선 내내 유세와 미디어 출연으로 지원한 이준석 전 비대위원도 청년층 지지세 확대에 기여했다.

    정책 분야에는 김광두 원장과 함께 국가미래연구원 활동을 하다가 대선 때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 합류한 윤병세(외교·안보), 옥동석(정부조직), 이상무(농업) 단장이나 신세돈, 안상훈, 홍기택, 이병기 교수 등이 한 축이다. 그 외 윤창번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윤성규 전 국립환경과학원장, 장흥순 서강미래기술연구원장, 곽병선 전 한국교육개발원장 등도 주요 전문가 그룹이다. 심윤조, 길정우, 민병주, 강은희 의원도 박 당선인의 정책통이며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국방 공약을 총괄했다.

    원로그룹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서청원, 최병렬 전 대표, 남덕우 전 총리, 김용환, 김기춘, 현경대 전 의원, 이병기 여의도연구소 고문,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등 박 당선인과 지난 경선 때부터 함께 인연을 맺어온 친박 원로 그룹이다.

    이회창, 이인제 전 자유선진당 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등은 박 당선인을 지원하는 보수 시민단체 그룹이다.

    한광옥 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김경재 전 의원은 DJ 인사 중 대선 동안 박 후보를 지지하며 국민대통합 특히 호남 민심 잡기에 큰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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