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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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값에 사재기 시장 왜곡 부추겨

음원차트의 진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2-07-30 10: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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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헐값에 사재기 시장 왜곡 부추겨
    인기곡이 되려면 다음 세 가지 요건 가운데 하나는 갖춰야 한다. 인기 많은 가수가 신곡을 냈거나, 지명도가 높고 영향력이 상당한 대형 기획사가 발굴한 신인가수이거나, 두 가지 다 해당하지 않지만 입소문과 ‘넷’소문을 탄 경우다.

    그런데 이슈도 안 되고 기껏해야 상투적인 보도자료 몇 줄로 인기를 얻는 노래가 있다. 아니, 인기를 얻는 것처럼 보이는 노래가 있다. 멜론이나 Mnet 같은 음원차트 상위권에서 그런 노래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음악적으로 특별할 것도 없고 이름도 낯선 아이돌의 음악이거나 빤한 발라드, 또는 도통 매력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노래다. 거리를 다녀봐도 들을 수 없고, 카페에 들어가도 들을 수 없다. 그런데도 며칠씩, 길게는 한 달씩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쯤에서 무슨 꼼수가 있다고 의심해볼 만하다.

    최근 여러 매체가 음원 사재기에 대해 보도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으니 대놓고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을 뿐이다. 업계에서 떠돌았고 언론에서 밝힌 음원 사재기 수법은 이렇다. 음원 유통 사이트에 아이디(대포폰처럼 대포아이디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수 있다) 수천 개에서 수만 개를 가진 브로커들이 있다. 음반제작자는 이들과 접촉해 음원 사재기를 의뢰한다.

    제작자가 만든 음원이 나오면 브로커는 확보해놓은 아이디를 동원해 음원을 마구 사들인다. 혼자서는 아이디 수만 개로 작업하기 어려우니 중국 등지에 ‘공장’을 만들어놓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음원 사재기를 한다. 특히 일반 소비자들의 활동이 뜸한 새벽시간에 집중적으로 작업하면, 사재기한 음원은 순식간에 실시간 차트에 진입한다. 일단 실시간 차트에 진입하면 노래는 인기곡 반열에 오른다. 유행을 좇아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 라이트유저들이 차트에 올라온 곡을 순서대로 듣거나 내려받기 때문이다.

    음원 사재기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이유는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어떤 노래를 한 달 정도 음원차트에 올리는 데 1억∼1억5000만 원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더욱이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비용 가운데 30% 정도는 저작권료 등 이런저런 명목으로 되찾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점도 음원 사재기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결국 음악 애호가들과 이 정도의 ‘마케팅 비용’이 없는 아티스트들만 물먹는 셈이다.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소비자 눈을 가리는 고도의 악행이 ‘턱없는 저가(低價)’로도 가능한 주된 이유는 한국 음원가격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불법 내려받기를 근절하고 디지털 음원시장을 안착시킨다는 명목으로 음원 유통사들은 음악 생산자들의 희생을 강요해왔다. 그래서 한 달에 몇천 원이면 무제한 스트리밍이 가능하고, 몇백 곡을 내려받을 수 있는 ‘덤핑 음악시장’이 형성됐다. 아이튠즈가 한 곡당 약 1000원, 일본은 2500원(200엔), 베트남에서조차 1000원 정도를 지불해야 음원 하나를 살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고작 60원 남짓이다.

    케이팝(K-pop)의 세계화를 부르짖는 정부는 이런 잘못된 시장 관행을 바로잡기는커녕 이동통신사의 자회사인 음원 유통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몇 달 동안 음원정액제를 폐지하고 종량제를 정착하자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1인 시위까지 벌인 음악 생산자들에게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값싸게 많이 이용하게 해 이익을 실현하라”고 대응했다. 1970년대 저임금을 대단한 매력으로 꼽았던 관료들이나 내세울 법한 논리다.

    정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유력한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공약집에서 좀 더 선진적이고 합리적인 문화정책을 보고 싶다. ‘미래의 성장동력은 문화산업’이라는 뜬구름 잡는 구호 대신, 그 구호를 어떻게 현실로 만들고 관련 업계 종사자들에게 어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지에 대한 ‘내용’을 보고 싶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는 말에는 역사적 근거가 있지만, 문화산업은 아티스트의 고혈을 뽑아먹어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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