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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미식생활

미각 마비 음식 정말 맛있습니까?

빙수국수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미각 마비 음식 정말 맛있습니까?

미각 마비 음식 정말 맛있습니까?

절반이 얼음으로 덮인 빙수국수. 얼음은 미각을 마비시킬 뿐이다.

국수는 정말 다양하다. 지구촌 거의 모든 사람이 국수를 즐긴다. 이 다양한 국수 가운데 한국인은 특별나게 차가운 육수에 국수를 만다. 국수를 차갑게 먹는 나라는 여럿 있지만 얼음까지 넣어 극단적으로 차갑게 먹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도대체 한국인의 이 독특한 국수 식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반도에서는 밀 재배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메밀은 흔했다. 옛날에 국수라 하면 메밀국수를 뜻했다. 메밀은 밀에 비해 글루텐 함량이 극히 적다. 글루텐은 반죽에 찰기와 끈기를 더하는 구실을 하는데, 글루텐이 적은 메밀은 반죽하기 힘들고 국수를 뽑아놓아도 쉽게 풀어진다. 메밀국수를 더운 국물에 말면 곧바로 죽처럼 된다. 그래서 메밀국수는 으레 차가운 국물에 말아 먹었다. 평양냉면과 막국수, 일본 소바도 그렇다.

한국인은 메밀국수 전통이 오래돼 차갑게 먹는 것에 익숙하다. 국수 재료가 밀가루와 감자 또는 고구마 전분으로 바뀌어도 차갑게 먹는 것은 여전하다. 밀가루 국수도 밀면이라는 이름으로 냉면처럼 먹고, 감자 또는 고구마 전분의 그 질긴 국수도 차가운 국물에 말아 먹는다. 좀 더 나아가면 냉라면과 냉파스타도 만들어 먹는다.

적당히 차게 먹는 것은 메밀국수 전통이라 할 수 있으나, 그 차가움을 극단으로 몰아 아예 얼음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은 당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진다. 그것은 인간이 맛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다(얼음국물이라 하니 감이 약하다. 국물을 얼려 빙수처럼 만들어놓았으니 여기서는 빙수국수라 하겠다).

맛은 혀로 감지된다. 혀에서 여러 맛 요소를 받아들이면 뇌에서 그 맛이 어떤지를 판단한다. 혀는 약간의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 톨의 소금, 눈곱만큼의 설탕에도 짜다, 달다를 금방 알아차린다. 혀는 몸을 보호하는 피부 조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다. 이 민감한 혀에 차가운 얼음을 대면 순간적으로 마비된다. 피부에 얼음을 대고 있으면 마비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혀는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그러니 빙수국수를 먹으면 혀가 마비돼 맛을 느낄 수 없다. 오직 “시원하다”를 외칠 뿐이다.



맛도 느낄 수 없는데 왜 이런 빙수국수가 한국에 크게 번진 것일까. 한국인은 맛을 즐기는 일, 즉 식도락을 포기하고 사는 것일까.

맛있고 맛없음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니다. 달고 짜고 시고 맵고 떫고 하는 감각만 있을 뿐, 그 맛들의 조합에서 미식과 악식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맛있고 맛없음의 분별은 교육과 경험에 의해 축적된다. 누군가가 어떤 음식을 지속적으로 주면서 “이거 맛있다” 혹은 “이거 맛없다”라고 자꾸 말하면, 그것을 맛있는 것 또는 맛없는 것으로 느끼고 기억한다.

빙수국수가 딱 그런 꼴이다. 빙수국수를 놓고 사람들이 맛있는 것이라고 줄기차게 말하니 빙수국수가 맛있는 줄 착각하는 것이다. 그 빙수가 자신의 미각을 점점 더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입에 넣는다.

필자는 유신 교육을 오롯이 받은 세대로,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박정희의 유신 안에서 그의 뜻대로 공부하고 또 살았다. 그때 나는 유신을 독재라 생각하지 못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여겼다. 유신 교육에 의해 자유의지가 마비된 채 그 긴 세월을 보낸 것이다. 혀를 마비시키는 빙수국수도 바로 그렇다.



주간동아 847호 (p63~63)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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