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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정말 반갑다, 아날로그 음악이여

LP 수요 증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정말 반갑다, 아날로그 음악이여

정말 반갑다, 아날로그 음악이여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CD와 MP3에 밀려 사라진 LP 공장이 새로 생긴다는 뉴스다. 벨기에에서 기계도 들여온다고 한다. 마음이 설렌다. 국내에서 생산하는 LP로 다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턴테이블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 같은 사람이나, 극소수 LP 애호가를 위해 공장을 새로 짓는 건 아닐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것일 터.

LP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장기하와 얼굴들’이 해외에서 LP를 주문 제작했다. 소량이지만 금세 매진됐다. ‘2AM’은 아이돌그룹 최초로 LP를 한정 제작해 판매한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강남 플래툰쿤스트할레에서 제1회 서울레코드페어를 열었다. 한국에서 처음 마련한 LP 중심의 음반 축제였다. 행사장은 종일 인파로 붐볐다. LP 애호가는 물론, 턴테이블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은 세대까지 LP를 구경하고 청음하고 구매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LP 더미를 뒤지는 아저씨도 있었으며, 서툰 손길로 LP를 턴테이블에 얹고 헤드폰을 낀 후 눈을 감는 소녀도 있었다(처음으로 LP를 듣는 듯했다). 주최 측의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었다. 이에 힘입어 두 번째 레코드페어를 더 큰 규모로 곧 열 예정이다.

LP에 대한 수요가 한국에서만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시장 규모가 성장한 유일한 음악 저장매체는 LP였다. 전성기였던 1970∼80년대만큼은 아니지만 LP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묻는다. 왜 다시 LP일까. 많은 이가 답한다. 아날로그에 대한 추억 때문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본다. CD는 디지털의 출발이었다. 출발이란 곧 후발주자의 탄생을 의미한다. CD가 가진 장점, 즉 선명한 음질 부문에서 많은 도전이 있었다. SACD, DVDCD 등 보통 사람에겐 이름도 생소한 고(高)사양, 고음질의 매체가 등장했지만 CD만큼 보급되지 못했다. 가격 경쟁력과 범용성이 CD에 비해 한참 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MP3를 비롯한 디지털음원이 CD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격 경쟁력과 범용성 덕이다. 개인용 컴퓨터(PC)와 인터넷망 보급으로 MP3 사용을 위한 하드웨어를 일찌감치 갖췄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음원을 다운받을 수 있으니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음질이 떨어지는 것은 이런 장점 앞에서 전혀 고민거리가 안 됐다. CD가 가진 우수한 음질조차 하드디스크 크기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더는 독보적인 장점으로 남지 못할 것이다. CD에 담긴 음원을 그 용량 그대로 추출해 PC에 저장하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CD와 MP3 음원의 차이는 손으로 만지는 물질과 그렇지 않은 파일, 그것밖에 없게 된다.

바로 이 점이다. LP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물질로서의 특화다. 백 마디 감사의 말보다 하나의 작은 선물에 더 기뻐하듯, 인간은 뭔가를 만지고 소유함으로써 실제를 깨닫는 법이다. 이런 점에서 LP는 좀 더 인간적이다. 종이 커버에 크게 인쇄된 아트워크, 그 안에 담긴 까만색 플라스틱 원반, 조심스레 바늘을 판에 얹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과정, 그리고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 뒷면을 재생시켜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이 모든 과정이 더해져 음악을 듣는 행위가 완성된다. 독일 평론가 발터 베냐민이 말한 ‘제의로서의 예술’을 LP를 통해 구현하는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에 출연한 걸그룹 ‘미쓰에이’의 수지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휴대용 CD플레이어를 처음 봤다고 한다. 처음부터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접한 세대가 성인이 된 것이다. 그런 세대에게 LP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음악을 듣는 전혀 다른 방법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LP는 크기가 주는 시각적 쾌감, 재료가 주는 후각적 쾌감, 과정이 주는 제의적 쾌감, 아날로그가 주는 청각적 쾌감이 교차하는 새로운 매체다. 이 모든 쾌감은 CD조차 주지 못했던 것이다. 하물며 하드디스크가 고장이라도 나면 모두 날아가 버리는 마치 바람과도 같은 MP3, 들을 수 있지만 가질 수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청각 외에 그 어떤 감각도 자극하지 못한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CD는 디지털의 출발이었으며, MP3는 디지털의 진행 과정에 서 있다. 그러나 LP는 아날로그의 완성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래 인류는 LP를 뛰어넘는 아날로그 음악 저장매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주간동아 833호 (p72~72)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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