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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불멸의 세포 ‘헬라’에게 생명윤리를 묻다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불멸의 세포 ‘헬라’에게 생명윤리를 묻다

불멸의 세포 ‘헬라’에게 생명윤리를 묻다

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512쪽/ 1만8000원

죽지 않는 인간세포 ‘헬라’를 아는가. 헬라세포는 그동안 소아마비 백신, 항암치료제, 에이즈치료제 개발은 물론, 파킨슨병 연구와 시험관 아기 탄생 등 의학 발전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1951년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절, 이상 출혈과 체중 감소로 존스홉킨스병원을 찾은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가 바로 헬라세포의 주인이다. 담배농사를 짓던 가난한 여인 랙스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치료에 들어갔지만, 4개월 만에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사망했다.

그의 세포가 살아 있는 것은 불법과 우연의 결과였다. 존스홉킨스병원 의사가 환자나 가족의 동의 없이 랙스의 난소에서 세포를 채취했고, 그 세포는 몇 주가 지나도록 성장을 멈추지 않은 채 증식했다. 이전까지 인간세포는 쉽게 배양할 수 없었는데, 랙스의 세포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였다. 랙스의 성과 이름에서 각각 두 글자씩 탄 헬라(HeLa)세포는 그렇게 탄생했으며 텍사스, 뉴욕, 인도, 암스테르담, 칠레 등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동안 햄스터나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과 신약 개발을 해왔던 의학계에 신기원이 열린 것이다.

저자는 강의실에서 인류를 구원한 불멸의 헬라세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한 여인의 일생과 세포주, 남겨진 가족의 삶에 의문을 갖게 됐다. 헬라세포를 둘러싼 진실을 밝혀내려고 10년 동안 사명감으로 추적에 나섰다.

“어머님의 몸 일부가요, 그게 아직 살아 있대요!” 1973년 어느 날 랙스 유가족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접했다. 25년여 전 사망한 어머니의 일부분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놀람과 기쁨도 잠시, 존스홉킨스병원은 유족을 불러 자궁경부암 유전 여부를 검사해야 한다는 구실로 혈액을 채취해 각종 검사를 실시했다. 가족은 불안에 떨어야 했고, 의사들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헬라세포는 증식을 거듭해, 몸무게 5000만t으로 불어났으며 지구 세 바퀴를 덮고도 남을 정도로 퍼져 나가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족은 헬라세포에서 나온 이득을 배분받기는커녕, 기본적인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거리와 교도소를 전전하며 빈곤층으로 살고 있었다.



세포는 인간의 몸 안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양 상태에서도 변화한다. 세포가 화학물질이나 태양광선, 또는 다른 환경에 노출되면 DNA에 어떤 변화가 유발될 수 있다. 이러한 DNA 변화는 세포분열을 통해 다음 세대의 세포에 전달된다. 헬라세포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이유는 암세포에 있는 텔로머라아제가 똑딱 시계의 태엽을 계속 되감았기 때문이다.

랙스 가족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중요한 이유는 생명윤리와 밀접하게 관련됐기 때문이다. 인간 몸에서 채취한 신체조직에 대한 소유권과 통제권을 둘러싼 법적 논쟁은 아직도 뜨겁다. 오늘날에도 일반적인 피검사를 하거나 점을 제거할 때, 또는 수술을 받을 때 일부 신체조직이 병원 어딘가에 보관된다. 물론 환자에겐 알리지 않는다.

“‘사전 동의’ 없이 우리 몸의 일부가 채취되고 보관되며 연구되는 현실은 헨리에타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생명과학 연구가 궤도에 오른 지금이야말로 의학계의 가장 큰 스캔들을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주간동아 833호 (p76~76)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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