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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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혼욕? 눈 씻고 봐도 없다

원칙적으로 혼욕 금지 철저히 시행 … 수영복 착용에 사전예약 가족탕이 전부

  • 도쿄=김동운 통신원 dogguli@hotmail.com

    입력2011-11-28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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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혼욕? 눈 씻고 봐도 없다

    혼욕시설 입구.

    성에 대해 자유로운 나라, 이것이 일본에 오기 전 필자가 가졌던 이곳의 이미지였다. 젖가슴을 드러낸 여성 사진이 일간지 지면에서 불쑥 튀어나오거나, 심야에 TV를 켜면 전라의 여성이 내지르는 육욕의 소리를 들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의 발칙한 상상이 깨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즈니스호텔의 ‘유료 어덜트 비디오(AV)’면 모를까,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정규방송에 전라의 여성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스포츠신문에서야 가끔 야한 사진과 그림이 나오지만, 역시나 일간지에서 야한 그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콤비니(편의점의 일본식 발음) 또는 전철에서 야한 만화를 보는 직장인이나 츠타야(TSUTAYA)같은 렌털 비디오숍 한쪽에 진열된 AV의 가짓수에 문화적 충격을 받기는 했지만 말이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다 묘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혼욕온천세계, 3년 만에 벳푸에서 개최’라는 제목으로, 일본 오이타현(大分縣) 벳푸시(別府市)에서 열리는 예술축제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2009년 이후 3년 만에 벳푸시에서 다시 열리고, 유명 아티스트 8개 그룹이 참여한다고 했다. 기사를 다 읽고 나서 실소가 나왔다. ‘혼욕’과는 상관없는 ‘아트페스티벌’관련 내용도 그렇지만, 단어 하나가 주는 이미지에 홀려 기사를 읽은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혼욕온천 알고 보니 아트페스티벌

    일본 시코쿠 지역 도쿠시마현(德島縣)을 여행할 때 일이다. 한 온천을 방문했는데 온천시설을 안내하는 지도가 입구 한쪽에 걸렸고 이곳에 혼욕(混浴)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남탕과 여탕 외에 ‘혼욕탕’이라 적혔으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곳임이 틀림없었다. 혼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상상을 하며 혼욕탕에 들어갔다. 그러나 혼욕탕이 맞긴 맞는데, 혼욕을 즐기는 사람이 없었다. 나중에 주인에게 물어보니 “이름만 혼욕탕이지 주로 가족탕(가족이 함께 사용하는)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제법 많은 온천에 가봤지만, 진정한(?) 의미의 혼욕을 할 수 있는 곳을 여태 찾지 못했다. 야마나시현(山梨縣)의 한 시골 온천 혼욕장은 수영복을 입어야 입장 가능했다. 기후현(岐阜縣) 게로(下呂)온천에서는 대형 수건으로 몸을 친친 감은 어르신들이 혼욕탕을 지키고 있었다. 일본 전역에서 혼욕장이란 간판을 내건 온천 대부분이 아마도 이와 비슷할 터. 남녀가 알몸으로 목욕하는, 진정한 의미의 혼욕탕을 일본에서 찾기란 쉽지 않다.



    일본에서는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혼욕이 과거부터 행해졌다. 대중목욕탕인 지금의 센토(錢湯)가 존재하지 않았던 에도시대 이전에 남녀가 공동목욕탕에서 함께 목욕했던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혼욕의 기원이다. 그런데 남녀가 함께 탕을 쓰니 다양한 문제가 생겼다. 특히 혼욕장에서 매춘을 알선하는 전문 조직이 등장했고, 풍기문란이 심해졌다. 성 매매가 벌어지는 지금의 터키탕이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다.

    일본은 혼욕? 눈 씻고 봐도 없다

    도쿠시마현의 한 온천지도에 써 있는 혼욕 표시, 혼욕시설 입구, 혼욕시설 내부(왼쪽부터).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를 거쳐 혼욕을 금지하는 조례가 일본 전역에서 발표됐고, 혼욕이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졌다. 현재 도쿄도에서는 혼욕탕을 이용할 경우 수영복 착용을 의무화했다. 도치기현( 木縣) 등 4개 현에서는 12세 이상의 혼욕을 원칙적으로 금한다. 또한 아오모리현(靑森縣), 아키타현(秋田縣) 등 7개 현에서는 10세 이상의 혼욕을 금지했다. 두메산골 작은 온천에 혼욕할 수 있는 곳이 일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젊은 남녀가 함께 들어가는 혼욕장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일본을 여전히 혼욕 천국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본에서 촬영한 한 유명 드라마에서는 다른 입구로 들어간 남녀주인공이 혼욕탕에서 만나 얼굴을 붉히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인터넷에서도 혼욕을 즐기고 왔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는 실제로 혼욕이 별로 없는데,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의 혼욕 정보가 넘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온천은 지정된 시간에 남탕과 여탕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남탕과 여탕에서 바라보는 경치와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온천을 방문한 손님에게 이 두 곳 모두 경험하도록 한 온천 측의 배려다. ‘매일 지정된 시각에 남탕과 여탕이 바뀐다’는 알림판을 남탕과 여탕 앞에 설치해놓거나, 체크인할 때 직원이 해당 소식을 알려준다. 하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관련 정보를 모르고 이성이 있는 탕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긴다. 이것을 혼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일본은 혼욕? 눈 씻고 봐도 없다

    1 시즈오카현의 한 노천탕. 후지산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2 기후현 게로온천의 한 노천탕. 탕에 몸을 담그고 불꽃놀이를 즐기는 호사를 누렸던 곳이다. 3 이즈반도의 한 노천탕. 노천탕이 하나밖에 없어 예약제로 운영한다.

    지정된 시간에 남탕과 여탕 교체

    일본에서는 노천탕을 예약제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로텐부로(露天風呂)라 부르는 노천탕은 실외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탕이다. 규모가 큰 온천의 경우 노천탕을 남탕, 여탕 따로 운영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은 온천은 노천탕이 하나밖에 없고 이를 이용하려면 예약이 필요한 때도 있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경우에도 매일 남탕과 여탕이 바뀌는 것처럼 해당 내용을 소개하는 알림판을 놓거나 직원이 체크인할 때 알려준다. 물론, 이를 모르거나 잘 확인하지 않고 노천탕에 들어간다면 벌거벗은 이성의 고함을 듣게 될 수 있다.

    또한 일본에는 온천탕을 통째로 빌려 쓰는 대실 문화가 있다. 이를 일본에서는 카시키리부로(貸切風呂)라고 한다. 주로 가족이나 연인이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천욕을 즐기고자 할 때 이용한다.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지만 가족이 함께 욕탕에 들어가는 경우가 일본에서는 종종 있다. 필자의 아내(일본인)와 처가속이 몇 년 전 규슈지역으로 온천여행을 다녀왔는데, 카시키리부로를 신청해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모두 함께 탕에 들어갔다고 한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연인끼리 카시키리부로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일본의 대표적 호텔예약 사이트인 ‘자란’이 혼욕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남자 64%, 여성 46%가 연인과 혼욕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카시키리부로를 혼욕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시키리부로는 남녀가 함께 이용한다는 점에서 혼욕은 혼욕이다. 하지만 특정 다수가 함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혼욕은 아닌 셈이다.

    일본에는 여전히 혼욕이 존재하지만, 일본 전역에서 혼욕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혼욕은 극히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본에 처음 온 여행자가 벌거벗은 여성의 신음소리를 들으려고 심야에 정규방송 채널을 돌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처럼, 전라의 이성과 함께 목욕할 수 있는 혼욕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일본은 이제 더는 혼욕의 나라가 아니다.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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