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2010.11.01

STX건설의 수상한 몸집 불리기

강덕수 회장이 계열사 동원 물량 몰아주기, 경영권 승계 기존 수법 따라 하나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10-29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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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X건설의 수상한 몸집 불리기

    STX건설은 그룹의 물량 몰아주기로 최근 몇 년 새 급성장을 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강덕수 회장(작은 사진)의 경영권 승계와 연관 짓는다.

    최근 태광그룹 압수수색에서 보듯 검찰이 기업을 압수수색할 때 가장 먼저 확보하려는 것이 회장실에 비치된 금고다. 금고에는 현금, 주식 등은 물론 계약서 같은 각종 중요 서류가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기업들은 금고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도록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다.

    그럼에도 대기업 금고가 털리는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2007년 4월 16일 금고털이 절도단은 서울 중구 남산 사옥으로 이전을 앞두고 있던 STX 서울 도곡동 본사(현 STX건설) 금고를 턴 것. 이들은 현금, 수표, 주식 등 104억35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8월 25일 절도단이 경찰에 붙잡히기 전까지 STX는 이런 사실을 철저히 함구했다.

    무려 3년 만에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도난당했던 STX건설의 비상장주식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STX 강덕수 회장이 STX건설을 통해 편법 증여를 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곤혹을 치른 탓에, 업계 일각에선 오너 일가가 보유한 상당한 규모의 비상장주식의 존재가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을 STX그룹이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비상장주식 때문에 금고 털리고도 쉬쉬?

    STX건설은 설립 초기부터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STX건설은 2005년 STX그룹의 엔진부품 계열사이던 STX엔파코(현 STX메탈)의 건설 부문을 물적 분할해 설립한 곳이다. 2005년 STX엔파코는 보유한 STX건설 지분 100%를 STX 강덕수 회장이 86.75%의 지분을 갖고 있던 포스인터내셔널(이후 포스아이로 상호 변경해 포스텍에 흡수 합병됨)에 매각했다.



    문제는 미래가 유망한 사업부를 헐값에, 그것도 대주주에게 매각함으로써 회사가 누려야 할 성장의 기회를 그룹 오너들이 유용했다는 점이다. 경제개혁연대 채이배 연구위원은 “2005년 당시에도 STX엔파코 건설 부문은 매출 884억 원, 영업이익 80억 원을 기록한 알짜 사업부였다. STX엔파코 이사회가 이를 24억 원이란 헐값에 매각한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STX건설은 두 차례 유상증자를 거치면서 주당 5000원에 각각 40만 주를 매입한 강 회장의 두 딸이 대주주로 등극했다. 2010년 4월 1일 현재 STX건설은 강 회장이 25%, 그의 두 딸이 각각 25%의 지분을 보유해 강 회장 일가족이 전체 지분의 75%를 차지했다. 그나마 나머지 25%도 강 회장이 지분의 69.38%를 보유한 포스텍이 가지고 있어, STX건설은 사실상 강 회장의 개인회사다.

    일단의 지분 정리가 끝나면서 STX건설은 STX그룹의 전방위적인 지원하에 급속도로 성장했다. STX건설의 전체 매출 규모는 2005년 883억 원에서 2009년 3010억 원으로 무려 24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48억 원에서 541억 원으로, 주당 순이익은 3004원에서 1만6935원으로 증가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STX 총매출액에서 계열사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89%에 달해 그룹 내 계열사 물량 밀어주기가 단연 성장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이에 STX그룹 관계자는 “STX건설이 초기에 그룹 계열사의 도움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건설 역량을 확보하기 전까지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치였다. 이렇게 한 것은 비단 STX만이 아니라 여타 기업도 마찬가지였다”며 “해외건설에 초점을 맞추면서 계열사 물량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전체 매출에서 계열사 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이 2009년 56.5%에서 2010년 36%로 크게 감소했다”고 해명했다.

    강 회장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STX건설을 키운 것을 두고, 업계 일각에선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초 작업과 연결짓는다. 이에 STX그룹은 “STX건설은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며 선을 그었다. STX그룹 관계자는 “STX건설이 가지고 있는 (주)STX의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3.14% 보유). 계열사 하나가 그룹 전체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축이 됐던 모 그룹의 일이 STX에서는 벌어질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태광그룹의 경영권 승계 시도에서 보듯 국내 주요 대기업이 이미 비슷한 수법으로 경영권 승계를 한 바 있다. 예컨대 총수나 오너 2세가 큰돈 들지 않는 비상장 개인회사를 설립한 뒤, 유상증자를 거쳐 기존 주주가 실권을 하면 제3자 배정으로 자녀에게 전량 인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에는 그룹의 일감을 몰아주며 그 회사의 덩치를 키우는데 그사이 종자돈을 축적한 회사는 그룹의 주력계열사 지분 확보에 나선다. 이런 방식으로 삼성, 현대기아차, SK그룹 등 재벌은 증여세 한 푼 내지 않고 경영권을 물려줬다.

    STX건설의 수상한 몸집 불리기

    (왼쪽) 2009년 11월 STX 경영진 회의에서 발언 중인 강덕수 STX그룹 회장. (오른쪽) 2009년 9월 17일 중국 랴오닝 성 STX다롄 생산기지에서 ‘STX 다롄엔진 1호기 공식 시운전’행사에 참석한 강 회장(오른쪽에서 네 번째).

    증시에 상장될 경우 막대한 실탄 확보

    2009년 무죄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을 빚은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I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 건이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정몽구 회장 일가가 대주주인 글로비스를 설립한 뒤 그룹 계열사들이 운송물류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초대형 물류회사로 키웠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이 설립한 SK C·C를 전적으로 지원해 최 회장의 경영권 장악을 도왔다. 정몽구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이렇게 키운 회사를 증시에 상장해 막대한 차익까지 얻었다.

    전문가들은 STX그룹 역시 이런 수법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는 STX그룹의 지배구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STX그룹은 (주)STX가 지주회사 격이다. 2010년 8월 31일 현재 (주)STX는 STX조선(36.17%), STX엔진(33.17%), STX에너지(47.42%), STX리조트(100.0%), STX솔라(20.00%) 등의 최대주주다. 이런 (주)STX의 최대주주가 다름 아닌 포스텍(23.13%)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포스텍은 강 회장이 최대주주인 회사. (주)STX의 2대 주주는 12.99%의 지분을 보유한 강 회장이다. 결국 강 회장은 자신의 지분과 포스텍을 통해 STX그룹 전반을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

    채이배 연구위원은 “포스텍이 (주)STX에 대한 지분을 STX건설에 매각한다면 (강 회장으로부터) 자녀들에 대한 경영권 승계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현대차 글로비스의 사례에서 보듯 비상장 회사인 STX건설이 증시에 상장될 경우 오너 일가는 (경영권 승계를 위한) 막대한 실탄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며 “당장 경영권 승계가 진행되지 않을지라도 다른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 장기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10월 20일 경제개혁연대는 STX그룹이 STX건설에 물량 몰아주기로 계열사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가 의심된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부당 내부거래가 밝혀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총괄과 관계자는 “현재 수직계열화된 그룹이 많은 만큼 물량 몰아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무조건 부당 내부거래라고 할 수 없다. 현저한 규모로 거래해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주는 경우에 한해 부당지원 행위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오너 2, 3세들과 달리 자수성가해 재계 14위 STX그룹을 일궈낸 강덕수 회장. 하지만 그 역시 경영권 승계에서는 다른 재벌의 전철을 밟을 것인지, 아니면 “무조건 가족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도 좋겠다”고 한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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