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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RTS

이 망할 놈의 입스 (YIPS) 어찌할꼬

운동선수를 잡는 ‘마음의 병’ … 몸 근육보다 ‘마음의 근육’ 키워야 극복

  •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이 망할 놈의 입스 (YIPS) 어찌할꼬

“투수의 제구력이라는 게 머릿속으로 그린

이미지를 따라가느냐, 못 따라가느냐 하는

문제 아닌가? 오히려 영감(靈感)에 가까운 거

아닐까? 하지만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자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질 않아. 그러니까 일단 톱니바퀴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고치기가 어렵지…

투구 폼은 완벽한데 제구력 난조를 보이는

투수도 있잖아. 그런가 하면 아무렇게나

던져도 훌륭하게 코너에 꽂는 투수도 있고. …

야구를 한 게 20년은 거뜬히 넘었을 거 아냐?

머리는 한순간 잊는다 해도

몸은 확실히 기억하니까 걱정 마라.

너는 머리가 앞서서 몸 움직임을

가로막는 거라고.”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중에서)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에이스 윤석민(24)이 쓰러졌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의 병’을 얻었다. 그는 사려 깊고 세심하다.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깔끔하고 예의 바르다.

그런 그가 지난 8월 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조성환의 머리에 볼을 맞혔다. 조성환은 어지럼증으로 입원했다. 윤석민은 8회부터 마무리 투수로 나왔다. 9회 2사 후 조성환을 맞아 체인지업을 던진다는 게 그만 손에서 볼이 빠져버렸다. 롯데 팬들은 엄청 흥분했다. 그럴 만했다. 이미 지난달 15일 윤석민은 롯데에서 잘나가던 홍성흔의 손등을 맞혀 뼈에 금이 가게 했다. 수위타자를 다투던 홍성흔은 당분간 경기에 나오지 못한다. 롯데 팬들은 “아니, 홍성흔한테도 그러더니 또…”라며 흥분했다. 페트병과 깡통이 경기장으로 날아들었다. 윤석민은 롯데 더그아웃과 1루 관중석 쪽을 향해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조성환 머리 맞힌 윤석민 ‘공황장애’ 증상

윤석민은 입원하고 있던 조성환에게 직접 전화로 사과했다. 윤석민의 어머니도 조성환의 병실을 찾았다. 윤석민은 죄책감에 빠졌다.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말도 없이 멍하니 먼 산만 바라봤다. 결국 윤석민도 이튿날 입원했다. 그러더니 지난달 26일 1군 엔트리에서도 빠졌다. 사실상 올 시즌을 접었다고 할 수 있다.

공황장애는 ‘마음의 병’이다. 극단적인 불안 증상이다. 온몸에 진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다가 급기야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입스(YIPS)라는 게 있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는 데서 유래했다. 어제까지 연주에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돌연 손가락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엑스레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 온갖 검사를 해봐도 이상을 발견할 수가 없다.

골프의 ‘퍼팅 입스’는 잘 알려져 있다. 프로골퍼가 홀컵 50cm 앞까지 붙이는 데 성공했음에도 다음 퍼팅이 안 되는 식이다. 잘나가던 프로골퍼 중엔 이 망할 놈의 퍼팅 입스 때문에 꿈을 접은 사람도 있다.

야구에선 이런 증상을 흔히 ‘스티브 블래스 병(病)’이라고 부른다. ‘잘 던지던 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말한다. 스티브 블래스란 이름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투수였던 스티브 블래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는 1968년 18승을 올린 이후 1972년 19승까지 5년 연속 두 자리 승수(8년 통산 100승)를 기록한 대단한 투수였다. 하지만 그는 1973년 시즌(3승9패 평균자책 9.85)부터 갑자기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1974년 한 경기에 등판, 5이닝 동안 7개 볼넷을 내주며 8실점한 뒤 32세에 은퇴하고 말았다.

척 노블락이라는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2루수도 스티브 블래스 병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척 노블락은 1991년 미네소타에서 데뷔해 공격, 수비, 주루 삼박자를 갖춘 2루수로 각광받았다. 뉴욕 양키스가 1998년 큰돈을 들여 그를 모셔갔다. 하지만 그는 2000년 시즌부터 평범한 2루 땅볼도 상대 더그아웃이나 관중석으로 던져대다 결국 2002년 33세에 옷을 벗었다.

현역인 릭 앤키엘(애틀랜타)은 데뷔 2년차이던 2000년 세인트루이스에서 투수로 11승(7패)을 올렸다. 하지만 그해 애틀랜타와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3회 한 이닝에만 폭투 5개를 범했다. 이후 그는 자신감을 잃어 2004년까지 고작 2승만 추가했고 결국 외야수로 보직을 바꿨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현역시절 김상진(현 SK 투수코치)과 염종석(현 롯데 재활코치)은 1루에 악송구가 많았다. 투수 앞 평범한 땅볼을 잡고도 1루에 던질 땐 늘 불안했다. 이를 잘 아는 상대 팀에선 이들 투수가 나오면 기습 번트를 대기 일쑤였다. 고교시절 1루에 송구를 잘못해 호된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불안감’으로 뿌리내린 것이다. 최근 3년여 만에 기아로 다시 돌아온 김진우도 비슷한 경우다. 김진우는 우람한 체격에 시속 150km대 광속구를 뿌린 기대주였다. 하지만 2002년 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마무리로 나와 두들겨 맞은 이후 흔들리더니 스스로 무너져버렸다. 3년 동안의 재야생활이 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잡초처럼 강하게 단련됐을까? 그것은 실전 마운드에 올라봐야 알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두려운 운동

이 망할 놈의 입스 (YIPS) 어찌할꼬

공교롭게도 롯데의 3번 타자인 홍성흔이 윤석민으로부터 사구를 맞아 부상을 당했다.

군대 제식훈련 때 오른발과 오른손이 동시에 올라가는 사람이 꼭 한두 명은 있다. 교관은 그들을 따로 불러내 고쳐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자세는 엉망이 된다. 왼팔과 왼발이 동시에 올라가고, 오른팔과 오른발이 또 같이 올라간다. 평상시 걸을 땐 아무 이상이 없는 그들이 왜 그럴까? 그렇다. 수십 년 동안 잘해오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설고 두려워’진다. 뭔가 자꾸 뒤가 켕기고 피하고 싶어진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어느 종목이든 그 기술을 완전히 익히는 데 최소 10년은 걸린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3세 때 훈련을 시작했고 6세 때 토너먼트 경기에 출전했다. 15세 무렵엔 주니어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토너먼트 출전에서부터 첫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 10년 정도가 걸렸다.

그렇다면 세계 1인자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 그것은 기술을 완전히 익힌 뒤 10년은 돼야 한다. 마이클 조던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유망주 때부터 1991년 시카고 불스에서 NBA 우승 때까지 10년이 걸렸다. 결국 운동을 시작해 20년쯤 돼야 세계 1인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즈는 21세 때 세계랭킹 1위가 됐는데, 3세 때 시작했으니 19년 만이다. 베이브 루스 19년(7세 시작~26세 홈런왕), 펠레 20년(5세 첫 경기~25세 최고선수), 랜스 암스트롱 18년(10세 첫 우승~28세 투르 드 프랑스 우승) 등도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세계 최고 스포츠 스타는 평균 8세 때 운동을 시작해 17세 무렵 기술을 완성한 뒤, 25세쯤 세계 최고가 된다”고 말한다.

기술을 완전히 익히면 그때부터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생각이 개입되면 근육에 익혀놓은 기술이 자꾸 흐트러진다. 강을 다 건너면 배(생각)를 버려야 하는 것과 똑같다. 스포츠 스타 중에선 훈련을 열심히 할수록 더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의식과잉이 근육에 저장된 무의식 본능과 부딪치기 때문이다. 생각이 본능을 뛰어넘은 것이다. 너무 많이 노력하면 자신의 뜻과 반대되는 결과를 부른다.

이 망할 놈의 입스 (YIPS) 어찌할꼬

잘하던 투수가 갑자기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고 헤매는 ‘스티브 블래스 병’. 한국 프로야구에도 현역시절 김상진(현 SK 투수코치·오른쪽)과 염종석(현 롯데 재활코치)이 고교시절의 기억 탓에 1루에 악송구를 많이 했다.

축구에선 페널티킥을 못 차는 선수가 의외로 많다. 보통 징크스로 얼버무리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이것도 입스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차범근 전 수원삼성 감독도 현역시절에 페널티킥을 차라면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차 감독이 넣은 골은 98골. 놀랍게도 모두 필드골이다. 단 한 골도 페널티킥으로 얻은 골이 없다. 차 감독 자신이 얻은 페널티킥조차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범근 감독은 순둥이다. 분데스리가 10년 동안 한 번도 퇴장을 당한 적이 없다. 경고도 딱 한 번 받았을 뿐이다.

인간의 생각은 늘 근육에 저장된다. 근육은 하드디스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근육은 수천, 수만 번 되풀이해서 가르쳐야 비로소 기억한다. 운동기술을 처음 익힐 때는 왼쪽 뇌가 작용한다. 왼쪽 뇌는 동작을 이해하고 분석한 뒤 근육에 알게 모르게 그것을 저장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피나는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이때 기본기를 잘못 배우면 큰일 난다. 나중에 고치려면 몇 배 더 힘들다. 더디 가더라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근육은 한번 기억하면 평생 잊지 않는다.

최고 스타들은 ‘아무 생각 없이도 플레이할 수 있을 때’까지 운동기술을 몸에 익힌다. 그들은 ‘무의식 본능’으로 플레이를 펼친다. 오른쪽 뇌를 쓴다. 오른쪽 뇌는 근육에 기억된 기술을 직감적으로 자연스럽게 펼친다. 그 순간 몸짓은 정말 아름답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무의식 본능에서 이뤄진다. 펠레는 수많은 연습을 통해 자신의 무의식 본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무의식 본능으로 공을 찼다. 본능이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자재로 발휘됐다. 무의식 본능(무아지경, 완전 몰입, 집중)이 작동하면 의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우즈는 “퍼팅 때 옆에서 폭탄이 떨어져도 난 모를 것이다. 그 정도로 집중한다”고 말한다.

야구장에서의 일 야구장에서 끝내야 한다

한국 스포츠 스타 중엔 ‘몸의 근육’만으로 운동을 하는 선수가 많다. ‘반쪽 선수’인 셈이다. 10년 동안 몸 근육에 기술을 새겼다면, 그 후 10년은 정신 근육을 키워야 한다. 생각을 끊고 ‘무의식 본능’을 길러야 한다. ‘의식 과잉’으로 엉뚱한 움직임이 나오면 안 된다. 생각이 많아 근육에 저장된 무의식 본능이 발휘되지 못하면 끝이다.

보통 머리 좋은 사람은 큰돈을 못 번다. 왜일까? 그것은 그들이 이런 경우, 저런 경우 등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평소 잘하던 것도 어느 날 갑자기 ‘난 왜 이렇게 못할까’라며 시무룩해진다. 10명 중 9명이 칭찬하고 1명이 비난해도 그 1명의 비난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 어쩌다 맞은 홈런 한 방에 투구 폼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과 똑같다.

윤석민은 지난 6월 중순 로커 벽을 내려쳐 손가락이 부러졌다. 자신의 투구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은 투수의 생명이다.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물론 8월 팀에 돌아와 마무리 투수로서 팀의 4강행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을 것이다.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중압감이 지나쳐 볼이 마음대로 뿌려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마무리로서의 중압감, 상대 중심타자인 두 선배를 맞혔다는 죄책감, 그리고 팬들의 항의 등이 그를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압박했을 것이다.

기아는 “윤석민이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고 언제 훈련을 재개할지 알 수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한 정신력을 겸비하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선동렬 삼성 감독은 “윤석민이 죄책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야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몸쪽 공을 다시 던질 수 있고 자신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로이스터 롯데 감독의 말 역시 마찬가지다.

“야구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당시 윤석민의 투구에 고의성이 없었음을 알 것이다. 윤석민은 조성환에게 미안함을 넘어 정말로 마음 아파하는 것 같은데,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다. 문화의 차이다. 물론 힘들겠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자리로 되도록 빨리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다. 야구는 야구장에서 끝내야 한다. 조성환은 말한다.

“나는 괜찮다. 윤석민이 걱정이다. 투수가 몸쪽 공을 못 던진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타자인 나 역시 몸쪽 공을 쳐내야 한다. 그게 야구다. 야구장에서 일어났던 일은 야구장에서 끝내야 한다.”



주간동아 2010.09.06 753호 (p68~70)

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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