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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특집 | 얼어붙는 한반도 ④

외국인들 “채권, 바이 코리아”

주식 팔았지만 안전국가로 인식 … ‘코리아 디스카운트’ 재고 목소리

외국인들 “채권, 바이 코리아”

정부의 대북제재 조치 발표에도 비교적 선방했던 국내 금융시장이 5월 25일 ‘북한군 전투태세 도입설(說)’과 스페인 저축은행 국유화 소식이 겹치면서 크게 흔들렸다. 원화는 팔고, 달러는 사들이는 주문이 일시에 몰리면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70원대로 수직 상승했다. 7분 만에 30원 오른 것. 주식시장도 외국인 매도 공세를 견디다 못해 코스피는 장중 72포인트 급전직하했다. 과거 북한 핵실험과 1차 연평해전 등으로 어느 정도 단련된 국내 금융시장이었지만 이날 맷집은 ‘기대 이하’였다.

다음 날인 26일 코스피 지수는 21.29포인트 오르며(1582.12) 반등에 성공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30원(0.33%) 내려간 1253.30원에 거래를 마쳤다. 소폭 하락으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5월 27일 코스피 지수는 1600선을 회복했고, 원화 환율도 전날에 비해 29.30원 급락하며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이날 미국 다우 지수는 1만 선 아래로 떨어져 먹구름을 드리웠다.

그렇다면 국내 금융시장의 요동과 불확실성은 어떻게 봐야 할까.

많은 전문가는 불안감, 특히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불안감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요인과 유럽 재정 취약국인 ‘PIIGS(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의 재정파탄 우려가 겹치면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에 방점을 찍는다.

남유럽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미 달러 강세 요인이 있었던 데다 ‘북한 리스크’로 원화 약세 요인이 부상하자 원화가치가 폭락했다는 것.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이 대남(對南) 대응조치를 발표했지만 증시가 반등한 것도 ‘북한 리스크’가 소강 국면에 들어간 시그널이라는 분석이 많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주식 출렁’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

‘북한 전투태세 돌입설’이 나온 25일, 스페인 중앙은행인 스페인은행(BOS)이 가톨릭계 지역 저축은행인 카하수르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외신이 타전됐다. 카하수르는 지난해 약 6억 유로 적자를 내 다른 지역 저축은행과 합병 협상을 벌였지만 불발됐고, BOS는 5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때 그리스 다음으로 재정위기에 취약하다고 평가받은 스페인의 위기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퍼졌고, 외국인들은 위험자산(주식)을 처분해 현금 확보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현대증권 오성진 리서치센터장의 말이다.

“스페인 저축은행 국유화 등 남유럽 사태와 북한 리스크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외국인에 의한 오버킬(Over Kill·과매도) 현상이 빚어졌다고 본다. 26일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28일 중국 원자바오 총리 방한으로 투자자들은 북한 리스크의 심리적 조율과정에 들어섰다. 악재도 나올 만큼 다 나왔다. ‘셀(Sell) 코리아’라고 볼 수 없다.”

만약 외국인들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북한 리스크’를 크게 우려했다면 주식과 채권을 모두 팔았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채권을 꾸준히 사들였다. 5월 들어 금융시장 대혼란이 생긴 25일까지 외국인들은 6조 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지만 한국 채권은 7조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정부의 대북 제재가 시작된 24일부터 북한의 맞대응이 발표된 26일까지 3일간의 ‘천안함 랠리’에서도 외국인들은 국채를 2조5000억 원 사들였다(주식은 9200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사들인 채권도 만기 3~5년짜리 장기채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시장에선 오히려 ‘바이(Buy) 코리아’ 현상이 나타난 것.

이젠 코리아 프리미엄 적용할 때

여기에 ‘북한 리스크는 큰 영향 없이 짧게 끝난다’는 학습효과도 이미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 당시 코스피는 2.41% 빠졌고 환율은 1.56% 상승(원화가치 하락)했지만 일주일 뒤 주가는 0.17% 상승했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오 리서치센터장은 ‘북한 리스크’는 25일 이후 정상화 국면에 들어섰고, 주가지수는 1650선대를 유지하다 2분기 실적이 확인되는 7월에는 1800선을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1800선 이상은 ‘PIIGS’의 위기 요인이 해소될 경우, 4분기 혹은 내년에나 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PIIGS’ 5개국의 국채 만기가 6~9월 집중돼 올여름은 지나야 세계 증시의 가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PIIGS의 국채 중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는 총 3493억 유로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2448억 유로의 만기가 6~9월에 분포한다. 위험 1순위로 꼽힌 그리스의 경우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 123억 유로의 약 76%가 7월(44억 유로)과 9월(49억 유로)에 몰려 있다.

PIIGS 5개국의 국채 만기가 여름에 집중된 탓에 ‘7월 위기설’이나 ‘9월 위기설’이 불거지면서 금융시장이 출렁일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PIIGS 5개국이 경제성장과 수출 활성화 등으로 자국 부채를 갚아나가는 방안이 아니라 대부분 긴축정책으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래서 이들 나라의 위기가 유럽 전체의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위기설이 확산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리스에는 이미 2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이 수혈된 상태고, 스페인은 국가부채보다 민간부채가 더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기우로 끝날 수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현수 수석연구원의 설명이다.

“유럽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재정위기 때문에 피해를 본 유럽계 은행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안전자산 선호 현상에 불을 지피면 국내 금융시장도 크게 출렁일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지금까지 다양한 경제위기를 경험하면서 대응 노하우가 쌓였고, ‘위기설’은 실현된 적이 없다. 급박한 위기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유럽발 재정위기와 천안함 사태가 겹친 한국 금융시장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관점은 다르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 리스크에도 외국인들이 한국 채권을 사들이는 것은 한국을 안전투자 국가로 인식한다는 증거고, 한국이 미국발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만큼 글로벌 형평성에 어긋나는 디스카운트 적용보다는 오히려 ‘코리아 프리미엄’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 증시에서 안보문제는 상수(常數)였지만, 지난 10년 동안 대부분 잊고 있었다”며 이번 기회에 안보문제를 집중 분석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Tips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증시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 한국 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불확실성)와 분단 상황의 지정학적 리스크(안보 위험)에서 오는 위험 때문에 외국인들이 한국 주가를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주간동아 2010.05.31 739호 (p24~25)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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