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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암 백신 더 연구 다양한 암 잡을 겁니다”

‘타임’ 선정 ‘영향력 … 100인’ 래리 곽 박사 “암도 당뇨처럼 관리하는 시대”

“암 백신 더 연구 다양한 암 잡을 겁니다”

“암 백신 더 연구 다양한 암 잡을 겁니다”

뉴욕 맨해튼 타임워너센터에서 열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선정 기념식(5월 4일)에 아내와 함께 참석한 래리 곽 박사.

“한국에서 저의 수상 소식을 알고 계시다니 고맙습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 래리 곽(51) 박사가 있었다. 더글러스 시와전트러버(Douglas Schwartzentruber·53) 박사와 암 백신을 개발해 암 치료의 새 지평을 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는 그의 음성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쳤다. 곽 박사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아쉽게도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 기자는 의학 전문용어의 정확성을 위해 e메일 인터뷰를 제안했고, 그는 질문마다 충실 그 이상의 답변을 해주었다.

낭포성 림프종 백신의 힘

▼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된 소감은.

20여 년 동안 암 백신 개발에 헌신한 것을 인정받아 기쁘다. 언젠가 환자가 “당신은 하느님의 도구”라고 말해줘 그 뒤부터 헌신하는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는데, 이번 일도 그런 계기가 될 것 같다.



▼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나.

림프종과 골수종 분과 과장(Chairman)으로 있다. 미국의 최고 암센터로 선정된 곳에서 일하는 것에 늘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실험실의 발견을 환자에게 적용하는 전환과학(translational research)에 관심이 있는데, 현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암 백신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 이번에 개발한 암 백신이 일반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통상 화학요법으로 암을 치료했다고 해도 암세포까지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만일 백신을 통해 암세포의 재생 속도를 떨어뜨린다면, 암을 확실히 치유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국립암센터의 지원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해, 암세포가 사라진 환자들에게 낭포성 림프종 백신을 맞혔는데 44개월 동안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반면 똑같이 암세포가 죽었다 해도 그 백신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는 30개월 동안만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낭포성 림프종 백신을 투여하자 암세포 발생을 14개월 늦출 수 있었다.(암 백신이 발전하면 당뇨처럼 암도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재까지 우리가 개발한 백신은 한정된 범위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암에 맞는 백신들을 개발할 것이다.

▼ 어릴 때도 의학에 관심이 있었나.

어린 시절에 줄곧 캔자스대학(캔자스 주, 로렌스)이 있는 동네에서 자라 대학의 자산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에서 선행학습할 기회가 있어 그것을 계기로 의학 리서치도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멘토가 “암과 싸울 면역체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아이디어에 매료돼 지금까지 그 면역체계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너 자신이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면 그 일은 짐이 아니다”라고 충고한다.

▼ 그 후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나의 열정이 의학자나 과학자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최종 목표는 실험실에서 의학적인 발견을 해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보통은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0~12년이 걸리지만 노스웨스턴대학에서 학사·석사·박사 통합과정을 통해 7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그 뒤 내과 수련의를 거쳐 스탠퍼드대학에서 종양학 펠로십을 마치면서 내게 의사, 과학자라는 두 가지 직업이 적합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국서 살지만 한국의 유산 자부심”

“암 백신 더 연구 다양한 암 잡을 겁니다”
▼ 연구하다 보면 여유를 느끼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취미는 무엇인가.

아내와 아이들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다음 세대를 길러내고, 가족에게 개인적인 성취를 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은 심지어 내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내게는 17세, 18세, 23세인 세 아들과 15세인 딸 하나가 있는데, 4명을 기르는 데 나 또한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스포츠팀 코치도 했고, 아이들 음악활동에 거의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성장했기 때문에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것이 취미다.

▼ 부모님의 교육방법이 큰 힘이 됐다고 들었다.

난 훌륭한 한국적 배경에서 자라났다. 외할아버지(오정수)는 한국인으론 처음 MIT를 졸업한(1927) 분으로, 후에 한국에 돌아가 상공부 장관을 지내셨다. 아버지(곽노환)는 1952년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와 터프츠대학에서 1962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캔자스대학에서 40여 년간 물리학을 가르치셨다. 어머니(오창숙)는 경기여고를 1952년에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와서 전액 장학금을 받아 음악 분야의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받으셨다. 부모님은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10% 노력하는 것의 기쁨을 알려주셨으며 다양한 교육적 기회를 주시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유럽에 방문교수로 계실 때 난 빈에 있는 독일계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덕분에 세계적인 시야를 갖게 됐다. 당시 그곳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뒤 ‘뛰어남이 주는 만족감’도 맛보았다. 내가 사회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일을 추구하도록 언제나 격려해주신 분도 부모님이다.

▼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나.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의 유산에 대해 크나큰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한국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고, 한국말을 배우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의대에 다니는 큰아들은 지난여름 한국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 언어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 차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함께 한국 드라마를 보고 밥과 김치도 자주 먹는다. 미국의 주요 의학기관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나는 매일 도전에 직면하고 그 도전을 해결하고 있지만, 역할모델인 한국인을 만났다는 점에서 행운아다. 홍완기 박사는 미국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 종양내과 부장(Head)으로 미국 암 전문의 최고 영예인 국립암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분이다.

▼ 당신만의 삶의 모토가 있나.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이 성경 구절을 지금껏 실감하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짓지 않으시면,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된다.”(시편 127:1)



주간동아 2010.05.24 738호 (p62~63)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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