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6

2010.03.09

마일리지 쌓는다고 인생이 좋아질까?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인 디 에어’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3-04 17:2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마일리지 쌓는다고 인생이 좋아질까?

    ‘인 디 에어’는 사소한 일에 급급한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남자 쿨하다. 1000만 마일리지를 쌓는 것이 목표인 그는 기내 반입용 여행가방 하나에 자신의 삶을 압축한다. 갈아입을 옷, 서류, 세안도구 정도가 전부인 이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소지품은 바로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VIP 컨시어지 카드. 그는 자신의 삶이 바로 공중에 떠 있다(Up in the air)고 말한다. 영화 ‘인 디 에어’는 바로 이 쿨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1000만 마일리지가 어느 정도냐고? 영화를 보면 잠깐 이런 대사가 오간다. “동생 부부가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마일리지가 있어야 하나요?” “50만 마일리지면 충분합니다.” 주인공 라이언은 1000만 마일리지를 쌓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자 자긍심인 사람이다. 1000만 마일리지를 모으기 위한 라이언의 삶은 비행에 적합하게 재편성돼 있다. 부치지 않아도 될 간단한 가방, 가장 빨리 공항검색대를 통과하는 노하우, 빨리 수속을 마치는 노하우 등.

    문제는 1000만 마일리지를 모으려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높은 마일리지가 남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보장해준다고 말한다. 불편함과 기다림이 없는 시간, 이것이 바로 라이언이 말하는 1000만 마일리지의 세계다. 라이언은 역사적인 일곱 번째 1000만 마일리지 주인공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라이언이 높은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해고 전문업체의 직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고라는 말 앞에 공포를 느끼거나 울분을 토로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라이언은 곧 절망에 빠져 어떤 짓을 저지를지도 모를 해고 대기자들을 안전하게 무직자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그는 말한다. “나의 일은 말이야, 죽음의 강 건너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고 배에 태워 어느 정도 간 뒤 강에 밀어넣고, 이제 새 삶을 시작해보라고 말하는 거야”라고. 이 야속한 인물에게는 인생의 덧정이라는 것이 없다. 결혼도, 아내도, 자식도 그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짐가방에 불과하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즐기고, 깨끗하게 정리된 호텔방을 오가는 라이언에게는 편리한 삶이 행복한 삶을 대체해준다. 하지만 과연 편리한 삶이 전부가 될 수 있을까. 라이언의 말처럼 가족은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많은 남자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가 될 때까지 일해서 번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아내, 아이들에게 저당잡힌다. 또 많은 여자가 몸매를 대가로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이런 삶은 분명 라이언의 1000만 마일리지 라이프보다 훨씬 촌스럽고, 답답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답답한 삶의 전투에 자원한다. 가족은 때론 불편하지만, 의미 없는 생애를 붙잡아주는 닻이기도 하다. 무게감은 한쪽에서 생각하면 부담이지만, 다른 쪽에서 생각하면 나를 땅 위에 있게 해주는 중력이기도 한 셈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의 삶은 쿨하지만 허무하다. 지금 당장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남는 것은 쓰지 않은 1000만 마일리지뿐. 영화 ‘인 디 에어’는 눈앞의 목표를 위해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잊고 사는 많은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1000만 마일리지를 달성하고 나면, 승진해서 사장이 되면, 열심히 돈을 모아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나면 결국 무엇이 나아질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