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23

2010.02.09

자유민주주의는 ‘반증’을 먹고 자란다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Ⅰ, Ⅱ’

  • 입력2010-02-04 16: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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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주의는 ‘반증’을 먹고 자란다
    칼 포퍼는 그의 대표작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펴냄)이 마르크스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이유로 ‘매카시적 반공주의자’로 분류된 지식인 중 한 사람이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읽고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서’ 혹은 ‘반공주의 지식인의 자기 선언’으로 해석할 아둔한 집단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나치와 파시즘이 횡행하고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자와의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에 이 책이 어떤 시각으로 읽히고 또 이용당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의 키워드는 ‘반증’이다. 포퍼의 철학은 ‘반증’이라는 개념을 핵심으로 하는데, 그는 “과학은 ‘반증’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고 말한다. 즉, 과학과 다르게 종교와 전제적 이데올로기는 ‘필연’을 전제한다. 종교에서 오류는 존재하지 않으며, 결정론적 철학은 이미 그 자체로서 과학이 아니다. 포퍼는 발전과 발달은 새로운 이론의 확립과 그에 대한 반증에 기초한다고 믿는다.

    이 점에서 일반화를 바탕으로 한 귀납적 사유는 과학이 아니다. 예를 들어 ‘돌은 물에 가라앉는다’는 명제를 보자. 우리는 경험에 의존해 이 명제를 법칙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화산지대에는 물에 뜨는 돌 ‘부석(浮石)’이 있다. 이 경우 ‘돌은 물에 가라앉는다’는 명제는 폐기된다. 다음 절차는 ‘왜 그 돌이 물에 뜰까?’에 대한 연구. 그 결과 화산폭발 때 돌에 형성된 기포가 돌을 물에 뜨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질학 연구의 새로운 실마리가 제공된 것. 이것이 과학적 입장이다. 하지만 종교는 다르다. 오류는 부정되고 믿음은 무조건적이다. 그리고 이는 발전을 가로막는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 철학자가 바로 이 책에서 논박의 대상이 된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상정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거대한 건축물일 뿐이고, 건축물은 이상의 세계를 흉내 낸 것이다. 물론 이 건축물이 신의 설계도로 디자인되고 신의 감리를 통해 정교하게 건축된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종교다.

    헤겔과 마르크스 역시 마찬가지다. 헤겔은 역사 발전의 법칙성을 주창하고,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을 바탕으로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논지를 펼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고, 단지 공산주의로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예언자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예언자는 반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당장 무엇을 행하든 결국은 역사가 정해놓은 방향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포퍼의 논증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특히 플라톤과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은 반증할 엄두를 내기 힘들 정도다. 이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 그는 전제주의를 반대한다. 포퍼에 따르면 나치, 파시즘, 마르크시즘을 막론하고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닫힌사회’이며 발전 가능성이 없다. 반면 개인의 자유가 허용되고 반박과 반증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사회는 ‘열린사회’이며, 무한한 발전과 진화의 가능성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반증’을 먹고 자란다

    박경철<br> 의사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를 근간으로 하며 자유의 핵심은 ‘비판의 자유’일진데 우리는 과연 비판의 자유를 누리는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에 ‘재벌이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독점체제를 구축하고 무한확장을 할 수 있는 자유’ ‘정치권력이 다수결을 바탕으로 소수를 배제할 수 있는 자유’ ‘언론이 지면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마음대로 주입할 수 있는 자유’ ‘이념과 사상을 앞세워 타인의 생각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유’ ‘평화를 명분으로 타국에 군대를 파견하고 전쟁을 치르는 자유’까지 포함되는지, 혹은 ‘그에 반대할 자유’와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자유’는 포함돼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끝없이 꼬리를 문다. 지금 이 책이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비판과 반박, 반증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열린사회’인지, 아니면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닫힌사회’인지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http://blog.naver.com/donodo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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